엄마는 좀처럼 품을 내어주지 않았다.
무르고 잘 다치던 다섯 살 아이에게도 엄마는 무심했다. 아예 자식에 대한 정이 없다기보다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잘 모르는 것에 가까웠다. 뒤뚱거리며 걷다 땅바닥에 무릎을 박거나 엉덩방아를 찧어도 엄마는 먼저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어떤 것도 그려지지 않은 얼굴 뒤에 무엇이 있을지, 나는 홀로 상상해야 했다.
일어나.
내가 엎어진 채로 자지러지게 울면, 짐승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한숨 뒤로 단단하게 굳은 한 마디만이 따라왔다. 아무리 울고 떼를 써도 엄마의 손은 고목처럼 굳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몇 번은 엄마의 손을 억지로 떼어 잡으려고도 해 봤지만 어린 나뭇잎처럼 약한 어린아이의 손으로 작정하고 버티는 어른의 손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얼굴이 붉어지도록 힘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너 대체 왜 그러니.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해. 바라는 게 있으면 말로 해야지, 징징거려서 될 일이야? 엄마는 몰라. 넌 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난 집에 갈 거야.
사람들이 이쪽을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마디가 짧은 어린아이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서, 삼십 대 초반의 여자가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아주 보지 않겠다는 듯이, 완전히 질렸다는 듯이, 몰려드는 인파 속에 등이 집어삼켜진다. 돌아보지도 않고 멀리멀리 굽이치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의 술렁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엄마의 향기를 좇으며 집을 찾았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머리가 산발이 되고 신발의 앞코가 닳아도 괘념치 않았다.
지독하게 바보 같은, 뼈에 새겨진 사랑이었다.
엄마는 조숙한 사람이었다. 일을 나가신 외할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에게 밥을 해 먹이고, 어른처럼 돌보고 챙겼다. 엇나가지 않고 올곧게 자란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응석을 부리거나 기대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자식들의 투정이, 특히 자신과 같은 성별인 딸의 모습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품을 비집고 들어가면 엄마는 밀어냈다. "더워, 네 자리 가서 자." 하며 손을 들어 옆자리로 옮겼다. 그래도 다시 안겨들면 그때는 말없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 손길이 좋아서, 영원히 그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빌기도 했었다.
엄마는 말 대신 행동으로 미지근한 사랑을 표현했다. '부모가 너무 부드럽게 대하다간 지나치게 의존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언젠가, 내가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맨발로 쫓아낼 때는 "난 너 같은 거 몰라. 넌 내 딸 아니니까, 다른 집 가서 살아." 하다가도, 화가 누그러지면 "이제는 그러지 마." 하며 등을 쓰다듬었다.
잔뜩 혼이 나고 쫓겨난 날, 새카맣게 먼지가 묻은 발을 동동거리며 현관문 앞을 서성이다, 서럽게 울며 현관문을 두드리면 엄마는 단 한 마디로 응대했다.
"누구니?"
나는 정말, 엄마가 나를 잊어버린 줄로만 알았지.
겁에 질린 채로 울음을 삼키다 보면 또 어느샌가 문이 열렸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늦은 저녁밥을, 미리 해두고 온기가 식지 않도록 잘 덮어둔 밥을 말없이 내밀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은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나서도 엄마의 무뚝뚝함은 물러지는 법이 없었다. 내가 더 자라면 조금 더 유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엄마의 성격은 어째 더 무뚝뚝하게 변했다. 유일하게 눈에 띄도록 부드러웠던 적은 동급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중학교 시절뿐이었다. 그때 엄마는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운 채 서럽게 울던 나를 나무라지 않았고, 식은땀에 젖은 머리칼을 넘기며 끌어안고 달래주었다. 이번만큼은 혼이 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삼시세끼 밥을 짓고, 주변을 청결하게 관리하고, 새 옷을 개어 삼단 서랍에 넣는 엄마의 행동으로 단단하고 미지근한 사랑을 느꼈다. 엄마는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사랑이라 했기에 -확실히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긴 했다.- 나는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엄마의 입에서 나를 인정하는 말이 나왔으면 했었다. 언젠가 내가 엄마에게 칭찬을 해달라고 아양을 떨었을 때, 엄마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또 한 마디만을 던졌다.
"네가 너한테 그런 말을 해줘야지, 왜 자꾸 남한테서 그런 말을 듣길 바라니?"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이, 아주 등을 돌리고 누운 엄마를 등지고 거실로 나와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줄곧 병원 신세를 지면서 돈이나 깨지게 했던 못난 딸이었을까? 매번 우물거리고 우유부단하게 굴어 속을 뒤집는 답답한 딸이었을까? 나는 정말 엄마를 망치는 사람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런 못난 딸의 머리카락을 왜 넘겨주었을까. 지저분하게 얼굴을 내달리는 눈물을 왜 닦아주었을까. 왜 영원히 보지 않을 것처럼 쫓아내고 문을 잠그다가도 다시 집안에 들여 밥을 주었을까. 엄마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훗날 내가 엄마가 되면, 조금은 이해하게 되려나.
"선생님, 저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몇 년 전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또 허공을 보며 그런 말을 내뱉었다. 아마 그날도 엄마와 대판 다투고 나왔을 것이다.
선생님은 말없이 뻣뻣한 다리의 근육을 풀어주시다, 조용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어머니가 너에게 사랑을 주셨다고 생각하니?"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려던 것을 애써 집어삼켰다.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생각한다면, 사랑을 숫제 받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돌아갈 집이 있고, 부족함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부모가 행하는 사랑이라고 엄마와 아빠는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따뜻한 말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을 뿐 밥은 제때 먹으며 자랐고 가끔은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러니 마냥 사랑을 받지 않았다고 하기에도 모호했다.
"그렇죠, 받았죠."
어쩐지 가슴 한쪽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끼며 힘겹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너도 네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보고 배운 것이 있으니 말이야. 너희 어머니께서 너에게 사랑을 주셨고, 네가 그걸 느꼈다면 너도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 거야."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으로 두 눈을 가려도 불그스름하게 돌아오는 햇빛처럼, 무언가 명확하지 않았던 사랑을 제대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언젠가 태어날지 모를 자녀에게는 말로써 이루어진 명확한 사랑을 보이겠다고 다짐하며 긴 겨울을 매듭지었다.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뚜렷하게 두 귀와 눈에 담을 수 있는 빛을 보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