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망가져서는 안 돼.
뒷목을 얼얼하게 마비시키는 듯한 통증이 심해졌다. 송곳으로 찌르는 것만 같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힘껏 당기는 것 같은 통증이 이어지다 종내는 그것이 손끝까지 타고 흘러내렸다.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서던 다섯 개의 손가락을 자잘한 모래알갱이들이 휘감았다. 등골이 서늘하게 식었다.
내가 나를 너무 함부로 다루었던 걸까. 그러한 의문에 나는 말을 잃었다. 낡은 샷시 틈으로 구물구물 기어들어오던 이른 봄의 바람이 얼마나 차가운지 느낄 수 없었다. 하얗게 식은 목덜미와 어깨, 팔과 손끝에서 묵직한 통증이 배어 나왔다. 본능적으로 나 자신의 뼈대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한 며칠 전 겪었던,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통이 떠올랐다. 단 것을 먹으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던 그것. 어쩌면 그것이 경고장이었을까.
그렇게나 자신의 붕괴를 바라던 나는 정작 균열 앞에 섰을 때 초연해질 수 없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나의 몸이 멈추게 된다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말과 단어를 가지런히 정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아직 올해의 행복을 담지 못했다.
하얗게 피어난 봄꽃을 넋 놓고 바라보지 못했으며, 새파란 하늘을 마음 편히 올려다보지 못했고, 청량한 단내를 풍기는 여름의 수박을, 반들반들 검은 씨가 박힌 그 붉은 속살을 베어 물지 못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만들어내는 따스한 빛무리 속에 몸을 잠그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곧게 피어날 사랑을, 어느 때보다도 눈부시게 피어날 사람을 두 눈 속에 담아내지 못했다.
백여 편의 글을 집필하며, 나는 단 한 번도 보드라운 행복을 온전히 담아본 적이 없다. 설탕물에 절여진 과일처럼, 가끔 입이 심심할 적마다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그것처럼, 나는 내가 꺼내 먹을 달큼한 기억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 감정의 맛이 유독 옅게 느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희게 부스러지는 찬란한 햇살 속에서 배어 나오는 포근한 향기를 검은 활자에 담아내지 못했다. 찬란한 기억을, 아직 풋내가 남은,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싱그러울 기억을 부스러뜨리고 재로 만들어 새벽 속에 흘려보냈다. 옷깃을 스치고 가슴을 파묻었던 사랑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으며, 오후 네 시 즈음의 황금빛 들판을 내달리던 사랑스러운 반려견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했다. 캐러멜의 색과 꼭 닮은, 촉촉한 행복을 가득 머금은 그 눈동자를…….
짜고 쓴맛이 가득한 기억을 곱씹어본들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이 몸이 잿빛으로 물든다면 씁쓸한 짠맛은 질리도록 느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에게 와닿지 않더라도 내가 꺼내먹을 위로의 간식은 만들어 넣어둬야 하지 않을까. 끝까지 먹구름 속에서 살다 간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내가 그리 믿지 않도록.
그러니까, 나는 아직 멈춰서는 안 돼.
나는 아직 죽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