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만큼 아주 작은 세상의 역학을 '알갱이 역학'이라고 하죠.
우리에게 물리는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수정구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계 모든 행성의 운동에 대해 한 치의 오차 없이 물리학은 기술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로 한정 짓더라도 현재의 위치와 속도만 알면 일 초 후, 한 달 후, 더 먼 미래인 일 년 후 지구의 위치를 물리학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명료하게 설명해 낼 수 있습니다. 조금 크기를 줄여서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는 것도 물리학입니다. 더 크기를 줄여 야구공의 속도와 위치도 같은 방식의 계산으로 알아냅니다. 심지어 모래밭에 있는 모래 알갱이 하나까지 동일한 물리 법칙을 따릅니다.
통계가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을 이해하는 공부라면 물리 법칙은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체에 적용하여 설명해 낼 수 있는 공부입니다. [1] 지구 밖 행성에서 로켓, 야구공, 모래 알갱이까지 크건 작건 서울에 있건 저기 뉴욕에 있건─왜 F=ma인지는 모르지만─'F=ma'에 따라 위치와 속도가 결정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크기를 줄여서 모래 알갱이를 원자 안에 있는 '전자 알갱이' 하나로 줄이겠습니다. 어느 정도로 줄인 거냐면 지구 크기에서 모래 알갱이로 줄인 만큼입니다. 이렇게 축소하면 모래 알갱이 하나가 대략 전자 알갱이 하나쯤 됩니다. 이 미시 세계로 왔더니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까지 모든 물체를 설명할 것만 같은 물리 법칙'이 고장 나버립니다.
그 이유는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리학자는 그저 신들이 두고 있는 체스를 바라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들이 두는 체스판 위에서 폰의 움직임을 보고 폰은 오직 앞으로 한 칸만 이동할 수 있다는 걸 배웁니다. 간혹 예외가 생기기도 하는데 갑자기 두 칸을 움직이는 걸 보고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내 물리학자는 침착하게 신이 두는 수많은 체스판을 살펴보고 '처음 움직일 때는 예외적으로 앞으로 두 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신의 규칙도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폰의 예외와 유사하게 전자 알갱이 세계에서도 예외가 발생했습니다. 큰 것에서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착착 들어맞던 물리 법칙이 조금씩 무너지게 됩니다. 전자 알갱이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딱딱한 그 알갱이가 아닙니다.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지구의 크기에서 모래 알갱이까지 잘 작동하는 역학을 '덩어리 역학'이라고 하겠습니다. 전자만큼 아주 작은 세상의 역학을 '알갱이 역학'이라고 하죠.
알갱이 역학은 전자 하나를 바라봅니다. 하나라고 하지만 이 미시 세상에선 하나라는 개념조차 모호해집니다. 왜냐하면 전자 하나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물리학자는 엄밀하게 전자의 위치를 확률로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알갱이 역학에서 전자는 확률적으로 존재합니다. 전자 하나가 아래에 있으면서 ‘동시에’ 위에도 있는 이상한 세계를 덩어리 역학 세계 언어로는 표현할 재간이 없습니다. 여전히 전자 알갱이 하나는 그대로 전자 알갱이 하나입니다.[2]
알아들을 수 없어 잠시 '알갱이 세상'을 떠나 '덩어리 세상'으로 돌아와서 연못에 큰 돌멩이 하나를 던집시다. 돌이 튀긴 주변에 물결이 생깁니다. 이 모습이 바로 전자 알갱이 하나가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돌멩이는 원자의 중심에 있는 핵이고 그 주변에 출렁이는 물결이 바로 전자입니다. 전자 알갱이는 높은 부분에도 존재하고 낮은 부분에도 동시에 존재하는 방식은 물결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결은 위로 아래로 출렁이는 속도가 있습니다. 또한 큰 돌멩이를 하나 던졌을 때 그 지점이 이 물결의 위치라고 하면 위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출렁이는 속도가 일정하게 존재하면 이제 큰 돌멩이가 연못 아래로 가라 앉아서 더 이상 물결의 위치는 알지 못합니다. 반대로 돌멩이가 던져진 때에 위치는 존재해도 속도는 다시 알지 못합니다. 결국 속도를 알면 위치를 알 수 없고 위치를 알면 속도를 알 수 없습니다.
‘덩어리 역학’에서 위치와 속도만 알 수 있다면 우주 만물의 법칙을 알 수 있었던 전제를 채울 수 없는 불확실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이 ‘알갱이 역학’세계의 법칙입니다.
이 미시 세계의 언어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한다는 말에 의아한 거시 세계의 물리학자는 순간 카메라로 전자 알갱이 하나를 찍습니다. 놀랍게도 높은 곳 혹은 낮은 곳, 둘 중 한 곳에서만 전자 알갱이는 존재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등을 돌려 보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전자 알갱이는 다시 높은 곳과 낮은 곳에 동시에 존재합니다.[3][4]
역시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도 인간의 두뇌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내가 저 달을 보지 않으면 저 달은 존재하지 않다고 말할 것인가“ -아인슈타인 솔베이 회의* 중[5]
덩어리 역학과 알갱이 역학 사이에 관계는 도저히 이어질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하늘에 있는 저 달이 보이고 달은 그대로 존재합니다. 뒤돌아 섰다고 해서 달이 없다고 어떻게 말하겠습니다. 설령 눈을 질끈 감고 "없습니다"라고 말할지라도 옆 사람이 달을 보고 있다면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한계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로서는 비겁한 말이지만 과학에서 조금 벗어난 종교적인 언어로 그저 '믿는 것' 뿐입니다.
덩어리 역학과 알갱이 사이 경계는 신이 두는 체스를 보고 물리학자가 나눈 것입니다. 옳은 구분일 수도 있고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합쳐질 수도 있겠죠.
"우주는 전체가 동일한 물리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하나의 운동법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우주의 책임이 아니라 과학자의 책임입니다." -슈뢰딩거
"빛은 때로는 파동처럼, 또 때로는 입자처럼 행동합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은 각각으로는 빛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지만, 함께 사용하면 비로소 빛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6]
'덩어리 역학'은 자신 있지만 고백하건대 '알갱이 역학'은 잘 알지 못합니다. 어설프게나마 참고문헌을 발췌하고 공부해서 정리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오류가 있더라도 소설을 읽으셨다고 생각하시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완벽히 틀렸다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친절한 물리학자 파인만 씨 말대로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라고 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을 이해하는 공부가 통계인 것처럼 큰 물결로부터 작은 원자 알갱이하나를 이해한 것도 통계입니다. 지금 당장 답할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통계와 확률을 가져다가 쓰는 그런 식의 사용이 아니라 무엇보다 엄정하고 깨끗하게 물리 현상을 기술하기 위한 확률로 답하는 그런 '통계 물리학자'의 꿈을 세 번째 주사위 면에 담습니다.
[6] 아인슈타인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 위키피디아
1. 근면하게 글쓰기: 5~9화
2. 채집하는 글쓰기: 10~15화
3. 고립되어 글쓰기: 16~25화
4. 감사하며 글쓰기: 26~34화
5. 주사위에 글쓰기: 35화~ (연재 중)
*솔베이 회의(1927): 가장 유명한 솔베이 회의는 1927년에 열린 다섯 번째 회의다. 여기에서는 양자역학의 기초 개념들이 논의되었다. 이 회의에는 아인슈타인, 드브로이,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 당시 물리학의 거장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고 이 회의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