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바라보고 그 역도 성립합니다: 통계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장래희망으로 ‘통계 물리학자’를 버킷에 담습니다. 많은 순수 과학 중에서 왜 통계와 물리여야 하는지 세 번째 주사위 면에 새깁니다. 우선 통계인 이유입니다. 통계(Statistics) 어원은 이탈리아 스테티스티코(Statistico)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는 국가와 정부를 의미하는 라틴어 스테터스(Status)로부터 유래합니다.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로마 제국 군주는 통계학을 필히 익혔습니다. 작은 자가 큰 국가를 바라보는 방법이 통계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금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공부가 통계입니다. 노트에 무심하게 주먹 크기의 감자 하나를 그려 넣습니다. 펜을 종이에 대고 그리기 시작해서 끝에 다달아 연결만 시키면 됩니다. 하나 그려졌다면 '계' 하나가 생겼습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단순해졌습니다. 감자만 바라보면 그 자체로 모집단이 됩니다. 가장 큰 덩어리가 된 것이죠. 주먹 만한 감자 모양 모집단에 가로선 하나 세로선 하나를 그으면 네 등분이 됩니다. 네 영역의 넓이를 재기는 쉽습니다. 고작 네 개뿐이니까요. 이제 마구잡이로 선을 그어서 개수를 늘립니다. 선이 늘어날수록 영역은 많아지고 모든 영역의 넓이를 재는 것은 점점 버거워집니다. 이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열 개에서─인내력이 있으시다면 스무 개─를 아무거나 골라서 넓이를 재면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알기 위한 '샘플링'을 한 것입니다. 마치 한 사람의 인사성 하나를 보고 열을 아는 원리입니다. 작은 샘플로부터 큰 모집단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통계의 본질입니다.
보잘것없는 감자 계에서 빠져나와 세상으로 눈을 돌리면 무수히 많은 것을 '계'로 묶을 수 있습니다. 가령 대통령 선거에서 천 명의 출구 조사로 오천만 명의 투표를 미리 봅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면 감히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있을까 싶은 우주 공간에서 별을 세어 볼 수도 있습니다. 관찰 가능한 한정된 공간에서 바라본 별을 세고 나머지 우주 공간에도 이만큼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그 수는 '1' 뒤에 '0'이 23개에서 24개쯤 되는 숫자입니다.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바라보는 통계이기에 가능한 대답입니다.
흥미롭게도 통계는 반대도 합니다.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을 바라보는 것이죠. 과거로부터 수집한 가능한 많은 자료를 큰 덩어리로 뭉치면 하나의 계산기가 생깁니다. 이제 작은 조각을 계산기에 두드려 넣으면 계산이 되어 조각에 새겨진 의미를 얻는 과정입니다. 예컨대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서 새로운 문제를 푸는 것과 같습니다. 크기를 좀 더 키워 보면 기상 예보를 할 수도 있고 더 키워보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AI 라지 랭귀지 모델*도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을 처리하는 통계적 작동 방식을 따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도 같은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흔적을 모아다가 미래의 비전을 상상하는 행위는 단연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을 바라보는 통계적 예측입니다. 누구도 태초의 시작을 알 수 없기에 과거는 무엇과 비교해도 한 없이 길고도 영원합니다. 그것에 비해 내 삶은 한 없이 짧고도 유한할 뿐입니다.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통계가 주는 지혜입니다.
더 큰 것으로부터 앞에 있을 조막만 한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흔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작은 나의 존재로 한정 짓더라도 과거의 방대한 시간이 지금을 살고 있는 작은 나를 설명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통계인 이유입니다.
우리의 삶이 통계인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삶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삶을 조금이라도 확실함으로 바라보고 싶어서 통계의 유혹에 빠지는 것 일지도 모릅니다. 어렵더라도 왠지 알고 싶고 알면 좋을 것 같은 그 느낌은 통계만이 가진 매력인 것입니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확실히 답할 수 없는 질문에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은 확률이 답합니다. 따라서 언제든지 그 답은 바뀔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것입니다. 무한히 큰 값─무한대─와 인간의 기준으로는 너무나도 작아 느슨하게나마─무한소─로 아무리 뻣어나가도 백 퍼센트 확률은 허상입니다. 이것만 받아들여도 '세상이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라는 생각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던 아인슈타인의 말도 물리 세계에선 통할지 몰라도 현실 세계에선 '누군가' 매일 내 주사위를 던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디폴트인 것이죠.
삶의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내 삶은 확실한 신념이 생깁니다. 아래 글은 나의 신념이 흐릿해져 불확실해질 때마다 꺼내 읽는 과학자용 '주기도문'같은 것입니다. 고전 물리학에 아이작 뉴턴이 있다면 현대 전자기학엔 제임스 맥스웰이 있습니다. 23살 청년 맥스웰의 일기입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오늘 하는 일이 자신의 인생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영원의 작업을 구현하는 사람이다. 그는 무한대의 일부가 되었기에 신념이 흔들리지 않으며, 현재를 완전히 소유하고 있기에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의 신성한 과정을 가능한 한, 비슷하게 흉내 내면서 유한과 무한을 결합하는 데 힘써야 한다. 단명할 존재라며 자신을 가볍게 여겨도 안 되고 시간의 신비를 영원히 밝히지 못할 것이라며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제임스 맥스웰 [1]
1. 근면하게 글쓰기: 5~9화
2. 채집하는 글쓰기: 10~15화
3. 고립되어 글쓰기: 16~25화
4. 감사하며 글쓰기: 26~34화
5. 주사위에 글쓰기: 35화~ (연재 중)
*라지 랭귀지 모델(LLM): 챗GPT나 Gemini와 같은 AI 대화형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