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은 두 물결(≈)의 학문이고 과학은 등호(=)의 학문입니다.
대충이라도 맞추기 공부는 '나의 공학'에 대한 철학이고 두 번째 주사위 눈에 새겼습니다. 공학 공부와 다르게 완벽하게 결점 없이 진리를 맛보고 싶은 마음을 세 번째 주사위 면에 담고 싶습니다. 내가 이해하는 세계관으로서는 '순수 과학'이 세 번째 주사위 면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공학과도 어찌 보면 유사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만 제외하면 공학과 과학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공학은 두 물결(≈)의 학문이고 과학은 등호(=)의 학문입니다.
'≈'은 근사치를 의미합니다. '두 물결'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두 물결은 A와 B가 거의 같아서 우리 사람의 오감으로는 그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하다는 의미입니다. 공학이 두 물결을 쓰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공학은 실용 학문이라서 경제적 이윤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모든 공학 기술의 반대편엔 '기술'과 항상 줄다리기하는 '비용'이 있습니다. 이 줄다리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두 물결 세계관 안에서 공학은 작동합니다.
'='는 등호를 의미합니다. '두 직선'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두 직선은 A와 B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엄밀하게 같다는 의미입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평행선 공리 "평행한 두 직선은 만나지 않는다"와 그 꼴이 같은 게 우연은 아닌 것 같이 보입니다. 절대로 어떤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두 직선은 순수 과학이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의미처럼 보입니다. 의지보다는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이 전혀 없다는 표현이 옳은 것 같네요. 그저 깨끗하고 선명하게 증명된 공리 체계 안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것이 순수 과학입니다.
돌이켜 보면 내 가슴 한 켠에도 공리 체계 안에서 자유로움을 맛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고3 진학 상담에서 "수학과나 물리학과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한 걸 보면─학생의 세계관이라야 학교 과목이 다이니까─순수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순수 학문을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한번 하고 싶었던 공부였나 봅니다. 현실적으로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워딩 그대로 "공대에 가라. 입에 풀칠은 해야지." 그때 짧은 진학 상담에 큰 저항이나 고민 없이 '나는 공대에 가야겠다'라고 어렵지 않게 결정했습니다. 맞습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니까 다시 주사위에서 꿈꿀 수 있는 여유도 부려보는 것이겠죠.
어른에게 낯설게 들리는 '장래 희망'을 다시 떠올려 보는 건 마치 창고 정리를 하다 까마득이 잊고 있었던 소중한 물건을 발견하는 기쁨입니다. 뒤적뒤적거리다 보면 뜻밖에 선물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 구석진 곳에 있었던 지라 먼지도 수북하게 쌓였지만 그때의 감정은 그대로 전해집니다. 지금은 그저 바라볼 뿐이고 먼지 쌓인 '순수 과학'을 언제 꺼낼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순수 과학'을 탐독하고 싶습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겠지만 내가 탐독하고 싶은 순수 과학은 '통계 물리학'입니다. 통계는 신이 만들어 놓은 법칙에 불완전한 인간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통계가 우리를 매료시키는 건 불확실성 그 자체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작은 일상 속에서는 당장 내일만이라도 미리 예측하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그보다 더 작은 양자 세계에서는 더 이상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운동 법칙을 이해하는 방법도 불확정성을 받아들임으로 가능해졌습니다. 특정 전자를 특정 시간에 특정 위치를 알 수는 없지만 정확히 몇 퍼센트의 확률로 그곳에 존재하는지는 엄밀하게 현대 물리학과 통계가 답할 수 있습니다. 이 알갱이 물리는 우리가 물체에 대해 완벽하게 지식을 알 수 없다고 증명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진정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헤아릴 수 없이 큰 별들 세계에는 여러 입자들로 이루어진 시스템이 있습니다. 약 10에 23승만큼 존재한다고 현대 물리는 추정합니다. 이렇게 집단으로 있는 특성을 기술하고자 할 때도 통계와 물리학이 필요합니다.
당시의 물리학에 두 갈래의 법칙이 있었다는 점을 고찰해 보자.
하나는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물체들이 매우 육중한 규모(별들의 세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기술한다.
다른 하나는 양자론으로, 매우 작은 규모(아원자 세계)에서 물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기술한다. 어쩌면 깔끔한 분업처럼 보일지 모른다. [1]
1. 근면하게 글쓰기: 5~9화
2. 채집하는 글쓰기: 10~15화
3. 고립되어 글쓰기: 16~25화
4. 감사하며 글쓰기: 26~34화
5. 주사위에 글쓰기: 35화~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