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틀리는 것보다는 대충이라도 맞히는 편이 낫습니다
글쓰기를 하나의 문제로 바라보는 공학이 내게 도움을 준 것처럼 글쓰기도 '나의 공학'에 도움을 줍니다. 이를테면 내가 생각하는 공학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디언의 지혜처럼 달리는 말 위에서 쉼 없이 내 달리기만으로는 내 영혼이 쫓아올 수 없습니다. 글쓰기 전에 내 영혼은 온대 간데 없이 달리기로 일관했습니다. 내 영혼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글쓰기는 나에게 그런 '기다림'입니다. 분야를 딱히 가릴 것 없이 이것저것 읽고 괜찮은 메시지는 메모하고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다림을 배운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답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공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조금 멋있게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고—내가 공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의 '세계관'을 이제 답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확하게 틀리는 것보다는 대충이라도 맞히는 편이 낫습니다" -워런 버핏 [1]
보자마자 눈을 감고, 앉아 있던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서는 '아'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기다림에 대한 내 영혼의 보답과 같은 선물입니다. 풀리지 않을 때마다 무언가 꽉 막혔을 때마다 엔지니어로서 나는 '만트라'처럼 속으로 되뇌이고 암송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엔지니어는 정확하게 틀리려고 무진장 애씁니다. 나를 포함해서 문제에 가까이 있을수록 정확하게 틀리고 있습니다. A를 푸는데 안 풀리면 B를 가져다가 옆에 '탁'하고 붙입니다. 또 안되면 'C가 없어서 안 풀렸나' 하고 C를 또 B 옆에 슬며시 가져가서는 '이제는 풀리겠지' 기도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다가 형형색색 덩어리로 뭉치면 우선 이전보다 커졌고 보기에도 좋으니까 이 형형색색 문제 덩어리에서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인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틀리는' 방법입니다. 오히려 문제를 줄이고 더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단순할 때 그 문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정확하게 틀리려면 덧셈을 하고 대충이라도 맞추려면 뺄셈이 글쓰기나 공학이나 공통으로 통하는 원리인 것 같습니다. 비본절직이고 이곳저곳에서 정보가 쏟아져도 뺄셈 하여 차원을 줄이고 줄이는 것입니다. 덜어 내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단단해서 더이상 쪼개지지 않는 문제의 본질입니다. 이 본질을 찾는 사람이 엔지니어고 나의 엔지니어 주사위 면에 아예 못 박았습니다.
'대충 맞추기'는 내가 아직 갖지 못한, 앞으로 내가 엔지니어 주사위 면에 깊게 새기고 싶은 정신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할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훌륭한 엔지니어의 자질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 치의 오류 없이 깨끗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맞춰야 하는 순수 수학이나 과학만큼이나 대충이라도 맞춰야 하는 공학 또한 만만치 않게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한 빈틈은 허용하되 과도한 틈새는 철저히 막는 유연함이 대충이라도 맞추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보이는 그 오묘한 영역에서 의사결정 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주사위 두 번째 눈에 꼭 담아야 할 정신인 것입니다. 무지개 찾는 소년이 되어도 좋습니다. 내게 허락된 엔지니어 여정 동안 '나의 공학'을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길을 뚜벅뚜벅 걷고 싶습니다.
짧은 나의 경험으로 예상컨대 나의 주사위를 붙들고 걸어가다 보면 분명히 예상치도 못한 과제와 직면하게 될 겁니다. 그것은 엔지니어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아주 큰 물리적 구조물을 다루다 가도 눈에도 보이지 않는 화학적 미세 조직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필요하면 무엇이든 만들어 실험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 컴퓨터 공학자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어느 하나에 깊게 다이빙했다가 금세 수면 위로 나와서 지식의 넓이를 넓혔다가 또다시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가끔은 학자로 빙의해서 논문도 씁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 엔지니어들이 마치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이 자연스럽게 이런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카멜레온처럼 주변에 의해 자신의 색을 바꿀 수 있는 매력적인 업이 내 주사위 한 면을 차지하고 있어 나는 든든합니다. 가장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나의 업이기에 가장 소중한 것도 사실입니다. 내 일을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짧다면 짧은 십 년 엔지니어 커리어에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나의 양동이가 고물이 되어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을 때까지 나는 계속 내 일을 하고 싶습니다.
1. 근면하게 글쓰기: 5~9화
2. 채집하는 글쓰기: 10~15화
3. 고립되어 글쓰기: 16~25화
4. 감사하며 글쓰기: 26~34화
5. 주사위에 글쓰기: 35화~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