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사무실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커피를 내립니다. 뒤에 순서를 기다리는 분이 없으면, '+샷추가'해서 투샷을 받고 물조절 들어갑니다. 아침 뇌를 깨우려면 물은 조금만 넣어 볼드함을 유지합니다. 한 때는 얼죽아였기에 얼음에 냉수를 넣었지만 지금은 여름이라도 아침엔 따듯한 커피가 당깁니다. '혈'에 '기'가 조금씩 빠지나 봅니다.
아침 등원 전쟁을 치르는 지금,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던 모습은 온대 간대 없습니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얼른 샤워를 해야 합니다. 출근하지도 않고─아무도 관심 없겠지만─집에서 쉬는 남자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아이들이 한 명씩 깨면 원하던 원치 않던 모닝 뽀뽀로 아침 인사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뭐라도 먹여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 남자가 줄 수 있는 아침은 누룽지 한 그릇뿐입니다.
누룽지를 끓이면서 아이들 입을 옷을 준비하고, 옷을 입히면서 누룽지도 먹이고, 먹이다가 흘리면 다시 옷을 갈아입히고, 다 먹었으면 0.5미리리터 단위로 세미 컨트롤하여 시럽 약을 제조합니다. 큰원은 그래도 잘 먹는데 작은원에게는 넘기지 않을 수 없도록 고개를 컨트롤 해가며 입에서 나왔다가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고문 아닌 고문입니다. 한차례 고문이 끝나면 다시, 양치와 세수를 시키고 로션도 발라줍니다.
등원 가방에는 물기를 말린 수저통과 턱받이, 물통, 고리수건을 챙깁니다. 단순해 보여도 매 번 하나씩 빠트리는 건망증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키즈노트에서 선생님의 상냥한 숙제 검사를 받고 나서야 실수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정신없이 '두 원'을 등원시키고 나면 고카페인이 당깁니다.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서 커피 대신 남자의 생명수, 레드불을 찾습니다. 시원한 청량감에 타우린 특유의 인위적인 향에 남자는 매료됩니다. 마치 엔진의 연료처럼 자신을 하얗게 불태워서 극한의 도전정신에 추앙하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요. 그 대상은 F1 일수도 있고 자신의 일, 업, 공부, 사업, 글쓰기 그리고 빠져서는 안되는 가상 세계 속 게임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육아도 빠질 수 없겠죠.
레드불 정신을 추앙하기에 레드불을 사고 싶지만 손은 자연스럽게 그보다 저렴한 '핫식스'로 향합니다. 게다가 핫식스는 '1+1'행사도 자주 합니다. 하나는 당장 카페인 충전에 쓰고 나머지 하나는 와인을 키핑 하듯 스터디 카페 냉장고에 키핑입니다. 와인을 키핑해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단골 바에 가서 키핑 한 와인을 마시는 성공한 남자의 로망을 꿈꿔봅니다. 아무튼 지금은 스터디 카페 냉장고에 '1+1'으로 받은 핫식스 키핑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나 말고도 많은 '스카(스터디 카페의 줄임말)' 냉장고엔 핫식스가 키핑 중입니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공부에 지쳐서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지만 육아하는 남자는 육아에 지쳐서 마신다는 점입니다. 효과는 확실합니다. 내일 에너지를 끌어당겨서 쓰는 부작용이 있지만 지금 당장, 시원함과 청량함 그리고 특유의 그 인위적인 박카스 향은 제정신 차리기엔 최고의 선택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아내에게 이 사실은 비밀이라는 점입니다. 언제나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이기 때문에 아내에게 보이지 않게 핫식스를 키핑 할 곳은 ‘스카’가 제격입니다.
덕분에 1년은 당겨서 살았지만, 그 때문에 1년 빨리 하늘나라에 갈 수도 있으니까 끊기는 끊어야겠습니다. 육아휴직이 끝나는 날, 핫식스에게도 안녕이라는 인사를 남길 수 있기를요.
※ 두 아들의 아빠입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X원입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Y원. 그래서, 첫째를 '큰원'이라고 부르고 둘째를 '작은원'이라고 부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