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만큼은 잘 먹여주는 직장입니다. 육아휴직 전에 아침과 점심, 심지어는 저녁까지 모두 직장에서 먹었으니까요. 끼니를 거를 일은 없었죠. 요즘, 육아휴직하는 남자에게 아침과 점심을 모두 챙겨 먹는 건 사치입니다. 아침 겸 점심, '아점'을 때우러 편의점엘 갑니다. 편의점만큼 남자에게 편의를 주는 곳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작은 공간에 없는 게 없는 것도 참 신기합니다.
큰원과 작은원 등원시켜놓고 나면 오후를 위한 충전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핫식스'를 집습니다. 마실 것은 정했으니까 먹을 것으로는 스터디 카페(스카)에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걸 찾습니다. 냄새나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에너지바를 택합니다. '괜히 이름에 에너지가 있겠는가'란 생각에. 그리고 계산대 앞에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미니약과도 간식으로 집습니다.
이렇게 세 개를 택했는데 내 손에 든 건 모두 여섯 개입니다. 핫식스도 그렇고 에너지바도 그렇고 미니약과도 모두 '1+1'이기 때문입니다.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1+1 상품입니다."라는 청량한 포스기 음성이 세 번 들리는 동안 민망함은 ‘1+1의 덤’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아웃렛 가서 옷은 1+1만 찾고 커피 음료는 ‘2+1’입니다. 타이어는 ‘3+1’으로 해야죠.
육아휴직하고 소비를 줄이게 되는 요즘입니다. 육아휴직을 하고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매 월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이 멈춘 것입니다. 멈춘 월급만큼 내 소비도 멈췄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과 점심은 아점으로 줄이고 하나의 값으로 두 개를 얻는 1+1 소비는 늘었습니다. 처음 육아휴직을 고민할 당시에 가장 큰 걸림돌 역시 월급이었죠. 육아휴직을 주저하는 남자들 역시 이 남자와 같은 종류의 고민이리라. 짧게는 6개월일지라도 남편이, 그리고 아빠로서 돈을 벌지 못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괴롭습니다. 아내는 감사하게도, 이 남자 대신 출근하고 아무런 불평과 불만이 없지만, 이 남자는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기 스스로 불안 걱정 근심 조급함을 느낍니다.
돈이란 게 그런 것 같습니다. 원시 시대에는 바깥에 호랑이며 공룡이 생명을 위협했다면─내 가족의 생명까지도─지금은 평화롭고 안전한 바깥세상으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 아래 돈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니까요. 종류는 다르지만 이런 생명의 위협은 이 남자의 선택지를 좁힙니다. 아내와 아이와 있을 때는 그러지 않지만 혼자 있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아침과 점심을 '아점' 하나로 줄이고, 1+1 상품들 중에서 고르는, 이런 사소한 것까지요.
그렇지만, 하늘은 공평하리라 믿습니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법. 월급이 멈춰서 선택지는 좁아졌지만 대신, 자유로운 시간이 선물해 준 풍성한 경험을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두 원을 모두 등원시킬 수 있을까' 부담이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두 원과의 등원이 즐거운 요즘입니다.
날씨는 화창하고 하늘은 맑아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등원하는 길이 아름다운 요즘입니다.
그 길에는 작은 천이 흐르고 따스한 햇볕 아래 꽃들은 우리 부자(父子) 지간을 세상의 아름다움을 소유한 부자(富者)로 만들어 주는 요즘입니다.
빨리 아이를 맡기고 출근길에 나서야 하는 조급함이 없어서 두 원과 개미를 괴롭히는 여유도 부릴 수 있는 요즘이고요.
큰원이 “이제 어린이집 갈래.”라고 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서 마음이 좋은 요즘입니다.
이 남자는 이런 요즘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