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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 대신 주말병을 얻다

by 머신러너

일요일 저녁에 방영했던 개콘(개그콘서트)*의 엔딩은 주말의 끝을 알렸습니다. 개그 프로였지만 그 끝은 직장인에겐 구슬픈 멜로디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80-90년 생 직장인이라면 공감해 주시리라.) 공중파 방송 시절엔 같은 시간에 같은 방송을 보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개인화된 작은 스마트폰 화면의 크기만큼이나 분화되어 자신만의 채널이 있습니다. 제겐 유튜브 '슈카TV'가 예전 개콘의 엔딩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 슈카TV 라이브 방송이 끝나면 실질적인 월요일의 시작입니다. 월요병에 걸릴 것을 알기에 어느 요일보다 긴장하며 잠자리에 들곤 합니다.

육휴남(육아휴직하는 남자)이 된 후엔 불치병으로만 알았던 월요병이 나았습니다. 그 대신 새롭게 '주말병'을 얻었습니다. 금요일 오후 작은원을 하원할 때 '낮잠 이불'을 건네받는 순간 시작입니다. 이 ‘낮잠 이불’ 건내 받기는 하나의 의식과 같은 것입니다. 낮잠 이불을 받는 순간 실질적으로 48시간 육아전쟁 준비 태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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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식사 시간엔 아내와 주말 작전이 한창입니다. 두 아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담기에는 턱없이 작은 집이기에 밖으로 나갈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시립 과학관이나 서울형 키즈카페, 구립 도서관 투어를 합니다. 요즘 같은 더위가 기승일 땐 선택할 수 있는 카드도 많이 줄어듭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향하는 곳이라야 대형 복합 쇼핑몰 정도입니다.

첫째, 큰원만 키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아 난이도도 올라갔습니다. 둘째, 작은원이 2살이 되면서 의지를 가지고 모두 자기가 하겠다고 난리입니다. 그 작은 몸에서 그렇게 강한 의지가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런 난리가 쌓이고 쌓이면, 이 남자는 '고함 대신 침묵'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첫째를 키울 땐 없었던 반응입니다. 큰원과 작은원, 두원을 키우면서 생겨난 이 남자의 몹쓸 침묵입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고함보다는 침묵이 낫다며 위로를 건넵니다. 그 위로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아내의 말처럼 침묵은 분명 고함보다 외적으론 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이를 감당하지 못해 자포자기한 한 남자의 백기 투항과 무력감이 담겨 있습니다.

두원의 마찰음이 커질수록 침묵은 더 깊어져서 잠시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는 상상도 해봅니다.(이런 증상이 혹시 우울증 초기 증상이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잠깐 사라졌다가 두원의 마찰음이 사라질 때, 평화가 올 때 다시 나타나고 싶다는 수동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런 증상이 육휴남이 된 후로 새롭게 앓고 있는 '주말병'입니다. 안타깝게도 백신은 없습니다. 머리까지 아프면 고통 완화제로 타이레놀 한 알 먹는 게 다입니다. 육아전쟁 전우를 챙기는 의미에서 아내에게도 "한 알 먹을래?"라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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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아이들이 잠드는 순간, 아이들이 가장 예뻐 보일 때입니다. 머리도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아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뽀뽀도 해줍니다. 잠자고 있을 때만큼은 확실히 '천사'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주말병'도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고요한 밤이 되어서야 재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에게 가슴으로 미안함을 전합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꿈나라에서 이 아빠의 사과를 받아주기를.



*개그콘서트: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시즌 1로 방영되며 한국 공개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2023년 11월 시즌 2로 부활해 2025년 현재(25/7/10)도 방송 중입니다. 시즌 2는 전통적인 공개 코미디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관객 참여형 코너, 디지털 플랫폼 연계와 같이 시대 변화에 맞춘 새로운 시도를 도입했습니다. 시청률은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고정 팬층과 온라인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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