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말이야, 여러분이 쌤 국민학생 시절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어, 선생님은 말이야, 단 한 번도 전교에서 일 등을 놓쳐본 적이 읎어요, 오죽했으믄 쌤 담임 쌤이, 야야 의섭아, 니 공부 좀 그만해래이, 니 때문에 우리 반 아아들이 몬따라 간다 아이가”
그 옛날, 우리 담임 선생님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주셨다는, 선생님의 국민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을 옛날 어른의 목소리로 모사하시는 정의섭 선생님의 표정은 퍽 진지했다. 늘 끼고 다니셨던 그 가느다란 금빛 테의 안경이 번쩍일 정도였다.
내가 5학년 때 담임이셨던 정의섭 선생님은 잔소리가 참 많은 분이었다. 원래라면 한두 마디면 끝날 것을 선생님은 최소 열 마디 이상은 하셨던 거 같다.
“수업 시간에 수업은 안 듣고 딴짓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누군지 내가 말은 안 하겠어, 지금도 봐! 샘이 이래 말하는데도 자꾸 옆 사람하고 장난치제!”
그러자 아이들이 일제히 선생님이 노려보는 방향으로 고갤 돌렸다. 어딘지 몰라 그저 두리번거리는 애도 있었다.
“선생님 국민학생때는 말이야, 으뜩하믄 선생님 말씀 한마디라도 더 알아들을까, 이래, 이래 보믄서 수업을 들읐다고, 수업 시간에 딴짓하고 마 그런 건 꿈도 몬 꿌어, 그라니까네 선생님이 전교에서 일 등 한 거 여러분도 알고 있죠?”
이런 얘길 할 때면 선생님은 습관처럼 교탁 주변을 왔다 갔다 하다가, 갑자기 맨 앞자리 애에게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다.
이거 때문에 다른 반에 비해 수업 진도가 고질적으로 늦다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을까. 선생님의 투머치토크가 그 애와 달랐던 점은, 팔 할이 자기가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 바르게 행동하던 모범 학생이었는지에 관한 회고였다는 점이다. 선생님의 국민학생 시절이 실제로 어땠는진, 그 시절 50대에 가까웠던 연세를 생각하면 우리로선 확인할 길도 없었지만, 어쨌든 정의섭 선생님만큼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도 없던 거 같다.
선생님의 끝날 줄 모르는 그 투머치토크는 종례 시간이면 정점을 찍었다.
“여러분은 이제 열두 살이지요, 열두 살이믄, 엄마가 해라 해라 안 해도 스스로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럴 나이 아입니까, 선생님 열두 살 때는 말이야, 새벽끄치 일어나가! 학교까지 두우 시간을 걸어갔어요, 그래가 청소도 하고, 미리 칠판 정리도 하고! 그때는 마 칠판도 이래 좋은 긋도 읎읐으!...............”
학교 일정이 끝나고 종례마저 마친 다른 반 애들이 복도로 우르르 몰려나와 우리 교실 옆을 지나칠 때까지도 선생님의 어릴 적 회고를 동반한 잔소리는 쉬이 끝날 기미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결론은 항상,
“선생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다 잘되길 바라니까! 이런 얘기도 하는 거지, 내사 여러분한테 관심도 없으므는 뭐 타러 이런 얘기도 합니까, 안 그래요?”
이런 얘길 할 땐 항상 구부정한 자세로 우릴 훑어보며, 얼른 동의 해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곤 하셨다.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성격인 난, 선생님의 종착할 줄 모르는 기나긴 얘기가 얼마나 길어지든 별 상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봤었고 별로 어렵지도 않더라는 그 애가 어쩐지 집에 갈 때마다 우리 교실 앞에서 날 기다리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애가 있는 3반 선생님은 조회는 물론 종례마저 거의 안 하기로 유명한 주순자 선생님이었다.
“자, 그럼, 여러분 오늘 집에 가면 뭐 해야 돼요?”
드디어 마무리가 시작됐다.
우린 다 같이,
“‘손 씻고 발 씻고 숙제합니다’”
라고 제창한다.
종례의 마무리가 시작되면 선생님은 교탁 주위를 돌며, 우리가 대답할 때마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셨다.
“그렇죠, 밥 먹은 다음엔 뭐 해야 합니까?”
“‘양치하고 바로 눕지 않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애들이라지만 12살이다. 집에 들어가면 손과 발을 씻거나 밥 먹은 뒤엔 양치를 하거나 하는 것들을 가르치기엔 조금 늦은 나이다. 어쩌면 선생님은 어떤 의미에서 우릴 과보호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토요일이라고 밖에서 늦게까지 놀지 말고 웬만하면 일찍 집에 들어가세요, 그리고 집에서 부모님껜 어떻게 합니까?”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효도합니다’”
선생님은 만족하신 듯 흡족하게 웃으며 양손을 들어 흔드셨다.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봅시다”
평일에는 내일 봅시다로 끝난다. 어쨌든 종례는 매일 이 말을 끝으로 우린 자리에서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우리 반 아이들이 단합이라도 된 듯 단체 대답하는 걸 무척이나 흡족해하셨던 선생님이 의외로 반장에게 단체 경례는 시키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선생님께 인사하고 싶은 아이만 다가가서 인사하면 그만이었다. 난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선생님의 종례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건 꽤 큰 고민거리였다. 그 애 반이 종례를 먼저 마치는 한 자꾸 그 애와 같이 집에 가게 될 것이었다.
처음엔, 날 기다리고 있던 그 애가 버스를 혼자 타는 게 겁나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터미널로 가는 길에서 그 애는 나를 무슨 혼자 집도 못 찾아가는 얼치기를 대하는 양, 이 버스는 타면 안 되고 저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저 버스는 몇 시에 출발하니 몇 시까지 터미널에 도착해야 한다는 둥, 건널목을 건널 땐 항상 좌우를 잘 살펴야 하지만 지금은 자기가 있으니 저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는 둥, 신나서는 저 혼자 떠드는 것이다. 1학년 때부터 치면 내가 버스를 적어도 몇천 번은 더 타고 다녔을 텐데, 정말이지 그 뻔뻔함에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다.
그래서 종례만 끝나면 그 애를 피해 달아나려 그 수고를 떨었던 것이다. 아이들 틈에 섞여 기척을 숨겨도 보고, 교실에 숨어있다 제일 마지막에 나가도 봤다. 어제는 그 애를 못 본척하며 있는 힘껏 달려 나가다가 가방을 뒤로 붙잡히고 말았다. 정말 어이가 없던 건, 그 애 달리기가 머심애인 나보다도 빨랐다는 것보다, 어떻게 기집애가 저가 싫어 도망간다는 머심애를 쫓아가 붙잡을 생각을 한 건지. 그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가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니면 정말 날 얼뜨기로 보기라도 했던 걸까.
“오늘은 너희 선생님이 좀 많이 늦으셔서, 버스 바로 타려면 좀 서둘러야겠다”
그 애가 우리 학교에 오고 처음 맞이하는 토요일. 그날은 얼른 집에 가서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 굳이 그 애를 피해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저에게 순순히 합류하는 날 보며 싱긋 웃는 그 표정이 얄밉긴 했지만.
“집에 가면 뭐 할까?”
저가 집에 가서 뭘 하든 나랑 무슨 상관인지. 그저 실없는 소리로 치부하고 잠자코 걸었다.
“넌 집에서 뭐 하고 놀아?”
내가 집에서 뭘 하든 저랑 무슨 상관인지. 그냥 대충 대답했다.
“그냥 티비 보는데...”
“에이, 티비 말고 뭐 재밌는 거 없어? 서울에 있을 땐 장난감 같은 거 많았는데, 비디오도 있었고”
은근히 자랑하는 거 같아 오기가 생겼다.
“내 방에도 비디오 있는데”
그러니 그 애가 걸음을 멈추더니 놀랍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것이다.
“진짜? 우와 잘됐다, 나 서울에서 가져온 테이프 몇 개 있거든, 할머니 집엔 비디오가 없어서 못 보고 있었는데”
어쩌란 건지. 설마 내 비디오를 빌리겠다는 건가. 하! 꿈도 크지.
“아... 나도 오늘 비디오 봐야 돼서...”
“응! 그럼 오늘은 네 걸 보고, 내일 내 걸 보자”
어? 뭐라고?
그 주부터 그 애는 주말만 되면 우리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 애 주장으론 내가 모르는 사이 엄마가 저한테 언제든 놀러 오라 하셨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화가 났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 애와 놀아줄 것도 아니면서.
그 애가 처음 내 방에 놀러 왔던 때가 기억난다. 집에 도착하니 그 애는 자기 집에 가방만 내려놓고 우리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엄마에게 배신감이 들어 인사도 하지 않고 원망스런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으니, 엄만 시큰둥하게 왜 그러냐고 묻곤 마당에 빨래를 마저 널었다. 곧 내 뒤로 그 애가 달려오는 게 보이자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주고는, 나도 아직 들어가지 않은 내 방 문을 마음대로 열어 들여보내는 것이다.
나의 안식처, 나의 자유, 나의 주말. 한순간 그 모든 걸 뺏긴 난 그저 절망한 채 마당 한 가운데 서 있을 수밖에.
잠시 뒤 내 방에서 그 애가 흥분한 듯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와! 너 비디오 진짜 많다!”
흠칫 놀라 급히 방으로 가려 마루로 올라서려니, 쟁반에 두유와 간식을 챙겨 든 엄마와 부딪혀 밀쳐지고 말았다.
방문을 열고 쟁반을 건넨 엄마는,
“아직 밥 안 먹었제? 일단 이거 먹고 있으라이, 금방 챙기주께”
“감사합니다, 헤헤”
둘이 아주 죽고 못 사는 것이다.
그 애는 내 방에서 제 마음대로 책상의 물건들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서랍들을 열어보거나 책꽂이의 책들을 하나둘씩 꺼내 보기도 하면서 자꾸 질문 해댔다. 그중 절반은 내 대답은 듣지도 않는, 그저 저 혼자 떠드는 거였지만.
“와아, 네 방엔 없는 게 없구나? 어 무지개링? 나도 이거 옛날에 갖고 있었는데, 와 네 연필깎이 되게 특이하게 생겼다, 자동차 모양이네? 내 건 기차 모양인데, 연필 어딨어? 한 번 깎아보자, 필통 축구게임이네? 나 이거 잘해, 내 건 아이스하키야 히히, 서랍엔 뭐 들어있어? 열어봐도 돼? 오! 어린왕자 이 책 나도 갖고 있어, 넌 이거 다 읽었어?..............”
그나마 다행인 건, 저가 만지거나 꺼내 본 물건들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놨다는 것이다. 그거마저 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쫓아냈을 거다. 진짜다.
이것저것 구경하던 그 애가 내 옷 서랍을 열기 시작할 때였다. 3개의 여닫이로 구성된 3단 서랍엔, 맨 밑에는 바지가, 두 번째엔 상의가, 그리고 맨 위엔 양말과 속옷이 들어있었다.
“어! 거기...”
무심코 맨 위 여닫이를 열던 그 애가 흠칫 멈췄다. 그리곤 슬그머니 닫더니,
“아, 미안, 헤헤”
살짝 열린 틈으로 안을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창피함이 일었다. 멋쩍게 웃는 그 애 표정 때문에 더 그런 거 같았다. 그때 난 기분이 언짢다 못해 거의 울 거 같은 표정이었을 거다. 그러니 그 애가 무안해하며 얼른 비디오로 화제를 돌린 거겠지.
“우리 비디오 볼까? 내가 틀게, 어떤 게 재밌어?”
그 애가 내 눈치를 살피며 책꽂이 맨 위 칸에 진열된 10여 개의 비디오테이프 중 하나를 덥석 꺼내 얼른 비디오에 넣었다.
그 애가 고른 건 몇 년 전 개봉한 터미네이터2,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다. 기분이 상한 상태였지만 그 애를 추궁하는 것보다 황금 같은 자유시간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더 컸기에, 그저 체념한 채 저 하는 대로 따라 주었다. 비디오라도 보면 시끄러운 그 애가 조금은 조용해질까 하는 기대감도 있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