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그 애 03화

3. 12살짜리가 말하는 징크스

by 차태주

그 애는 정말 교활하고 영특한 애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나뿐인 게 문제였지만. 생각해 보라. 고작 12살짜리들이 악수를 왼손으로 하든 오른손으로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리고 징크스? 그런 단어를 아는 꼬마가 대체 몇이나 될까.





그날 그 애는 해피가 밥 먹는 걸 보고 싶다며 끈질기게도 따라붙었다. 불안한 예감이 실현된 것이다. 마법 같은 애였다.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아 그냥 집에 데려가기로 결정했을 땐 그 애도 분명 처음 보는 어른을 불편해할 테고 집에 계시는 할머니와 엄마를 보고 곧 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그 애는 할머니와 엄마한테 명랑하게 인사하며 자기 소갤 했다. 그리고 믿기지 않을 만큼 금세 친해졌다. 어떻게 처음 보는 어른들과 저렇게나 얘길 잘할 수 있는 건지. 넉살 좋게도 그 애는 할머니가 내오신 튀밥강정을 맛있게도 먹으며, 저가 서울에서 살았던 얘기와 시골에 내려와 느낀 것들을 유쾌하게 늘어놨다. 집이 너무 깔끔하다는 둥, 두 분 다 너무 미인이시라는 둥 뻔하지만 누구나 좋아할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저 애가 진짜 12살짜리가 맞기는 한 걸까라고 생각하며 마루에 걸터앉아 해피를 쓰다듬었다. 못마땅했다. 뭔가가 잘 못 돌아가고 있다. 해피 밥 먹는 거 보고 싶다더니, 어느새 안방을 차지한 채 저러고 앉았는 것이다. 저런 애가 옆집으로 이사 오다니. 그냥 현우같이 조용하고 겁 많은 머심애나 하나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녁이 다 될 때까지도 셋의 수다는 끊이질 않았다. 무슨 얘길 그렇게 재밌게 하는 건지, 할머니와 엄마는 그 애의 언변에 연신 까르르 웃었다. 이러다 우리 집에서 저녁까지도 얻어먹고 갈 기세였다. 아니, 할머니가 은근히 저녁도 먹고 갔으면 하는 눈치셨다. 할머닌 애들이 잘 먹는 걸 정말 좋아하셨으니까. 다행히도 우리 집은 저녁을 조금 늦게 먹는 편이라, 곧 옆집 할아버지께서 그 애를 데리러 오셨다. 아마 엄마가 옆집에 그 애를 데리고 있다고 미리 전화해놓은 걸 거다.

그 애가 돌아가고, 기분이 언짢아져 시무룩한 채 마루에 앉아 있으려니, 엄마가 다가와 좋은 친구가 생겼다며 머리와 뒷목을 쓰다듬었다. 읍에 나갔던 아빠가 돌아오자 엄마는 옆집 애가 그렇게나 착하고 총명하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아빤 맞장구치며 앞으로 친하게 지내게 해야겠다며 좋아했다. 당사자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 애와 같이 등교하기 시작한 건 이틀 뒤였다.

“그래서 어제는 학교도 가보고 우리 동네로 오는 버스도 타봤어, 버스 타는 거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근데 동네에서 학교로 가는 건 첨이야”

정말이지 너무 시끄러웠다. 그 애는 정말 시끄럽고 성가신 애였다. 집 앞에서부터 정류장까지 걸어오는 동안 쉬지도 않고 재잘대더니, 버스에서까지 이렇게나 떠드는 것이다.

“나 지금 되게 설레, 여기 애들은 어때? 선생님은? 여긴 반이 몇 개 없어서 애들끼리 되게 친하겠다 그치? 그런데 너는 몇 반이야? 나는 삼 반인데”

너무 시끄러워서 버스에 탄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건 둘째치고, 제발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질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답을 하려고 하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지니, 얘는 당최가 대화를 하자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저 혼자 들떠서 아무 얘기나 막 떠드는 건지. 결국엔 대꾸하길 포기하고 그저 잠자코 듣고만 있는 중이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해 30분마다 마을 입구를 거쳐 가는, 하늘색 줄이 가로로 주욱 그어진 베이지색 시내버스는 그 연식만큼이나 투박하고 요란스러웠다. 엔진이 연신 힘을 내며 황소의 그것처럼 우렁찬 울음을 냈고, 달구지 같이 뒤뚱대는 뒷바퀴로 이른 새벽에도 집을 나선 부지런한 군민들을 이고 아침의 고개를 넘는다.

버스가 달리는 2차선 도로는 마을 정류장들을 이으며 읍으로 향했다. 깔린 지 꽤 오래된 그 길은 군데군데 홈이 파이고 깨져 누더기마냥 아스팔트가 여기저기 덧대어져 있었고, 노란 중앙선은 긁히고 지워져 거의 유명무실해져 있었다. 길옆엔 겨우내 한창 얼었다 녹은, 밑둥만 남은 벼들의 흔적이 저어 먼데 산밑까지 이어진 들판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간혹 들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인가들과 돼지나 소를 키우는 축사, 산을 끼고 자리 잡은 사과나 배 밭 등이 보이기도 했다. 이따금 구불한 도로가 산허리를 타고 돌 때면 군에서 설치한 낙석 방지 울타리가 긴 잔상을 남기며 지나가곤 했다. 그러다 경로상의 정류장을 만날 때면, 검거나 파란, 간혹 빨갛기도 한 기와지붕의 한옥들이 참 정겹게도 큰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다.

아침의 버스는 매일이 부산스럽고도 조용했다. 그날도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집을 나선 사람들이 그 부산한 버스를 맞이하러 각자의 정류장에 모였다. 그 정류장들은 마을 길을 한참이나 걸어 나오는 곳에 있었고, 논길과 밭길을 기우뚱거리며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고, 또는 너무 멀어서 자전거라도 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머언 거리에 있기도 했다.

버스는 곧 다음 정류장에 멈춰 섰다.

고추를 빻으러 읍내로 나가는 옆 마을 고 씨 아주머니와 무언갈 꽁꽁 싸맨 보자기를 머리에 이고 이제 막 버스에 오른 건넛마을 최 씨 아주머니는 서로가 반가워 수선스레 안부와 소식들을 나누었다. 약간은 색이 바랜 초록색 새마을운동 모자를 대충 걸치고 팔짱을 낀 채 좌석에서 잠들어 계시는 수염이 꾀죄죄한 할아버지. 찹쌀인지 메밀인지를 반쯤 채운 곡식 자루를 바닥에 턱 하니 내려놓더니 그 위에 앉아 졸고 계시는 할머니와, 그 할머니를 깨우며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단정한 교복의 중학생 누나. 당시엔 생소했던 미니 카세트에 연결된 유선이어폰을 귀에 꽂고 무언가에 심취한 듯 작게 흥얼거리며 서 있던 고등학교 교복의 형. 그리고 제 몸만 한 책가방을 뒤로 메고 무릎보다 높은 버스 계단을 힘겹게 밟아 오르는 우리보다 어린아이들. 버스의 요란한 울음과 그 부산함 속에서 사람들은 아침의 피로함을 침묵으로 때우기도 했다.

“사실, 나 버스 타는 거 어제가 처음이었다, 이사 오기 전엔 아빠가 학교에 태워주거나, 아니면 운전사 아저씨가 태워주셨는데, 근데 난 버스가 더 좋은 거 같아, 이렇게 친구랑 같이 등교할 수도 있고..........”

그 와중에 그 애는 발전된 선진문물을 누리던 도시의 이방인답게, 한눈에 봐도 다른 애들이랑은 매우 다른 고급스런 옷을 입고 세련된 서울말을 또랑또랑하게 구사하며 버스의 부산함을 더했다. 아니 요란함을 더했다.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할 때마다 버스는 더욱 힘을 내려 엔진을 울려댔고, 그러면 그 애는 시끄러운 엔진소리에 자기 목소리가 묻힐까 더 큰 소리로 재잘대는 것이다.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나는 이렇게나 괴로운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 분명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여 이 애를 째려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오산이었다.

서로 반갑게 소식을 주고받던 고 씨 아주머니와 최 씨 아주머니는 언제부턴가 그 애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이 깊게 들어 보이던 새마을운동 모자 할아버진 잠들었던 자세 그대로 그 애의 얘기에 귀 기울이다 이따금 껄껄 웃기도 하셨다. 곡식 자루를 갖고 타신 할머니도, 그 중학생 누나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던 고등학생 형도, 그리고 주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밝은 표정으로 그 애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모두 이 애의 간교한 술수에 홀려버리기라도 한 걸까.

문득 창밖에서 딸딸 소리를 내는 경운기가, 훤히 드러난 짐칸에 마을 사람들을 태운 채 도로 한 귀퉁이를 달리고 있었다.

어느 정류장에 섰을 때였다.

한진규. 별로 친하지 않은 같은 반 녀석. 얄팍한 허세와 허풍이 일상인 모리배 자식. 작년 가을 운동회 때 빌려 간 500원을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2배로 갚겠다더니, 아마 동전 뽑기로 모두 꼴은 거겠지.

놈은 매일 이른 버스를 타고 학교에 일찍 가기로 유명한 애였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지 우리 동네에서 8시에 출발한 같은 버스를 타게 된 것이다.

버스에 올라선 놈이 나를 발견하곤 친한 척 다가왔다.

“야아! 짜식, 반갑다, 우리 버스에선 처음인 거 같다?”

아니다. 오늘처럼 놈이 간혹 늦게 가거나, 내가 당번인 날 일찍 버스를 탔을 때 몇 번 마주친 적 있다. 놈도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놈은 TV에서나 볼 법한 중년의 멋진 사내들이 저들끼리 쓰는 말투를 보고선 어쭙잖게 따라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모습이 같잖다고 생각했다.

“간만에 본다 야, 안부 좀 묻고 지내자 임마”

쪼꼬만 놈이 내 어깨를 툭 치더니 낄낄거리는 것이다.

머저리 같은 놈. 우린 같은 반이다. 어제도 봐놓고 뭘 간만에 본다는 건지. 대체가 얜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허세를 부리는 걸까.

“안녕, 너도 우리 학년인가 보구나? 나 오늘 전학 왔어, 반갑다 얘, 너는 몇 반이니? 나는 삼 반인데”

그 애가 내 옆에 선 진규를 넘어 보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놈에게서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더니,

“오, 전학생! 반갑다, 나는 일 반에 한진규라고 해, 우리 학년에서 전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맡고 있어”

으웩... 전학생의 길잡이? 그런 게 있을 리도 만무하거니와, 이 자식 지금 그 애의 서울말을 어설프게 따라 하고 있다.

“응? 여기 학교엔 그런 것도 있니? 그건 정확히 뭐 하는 거야?”

그 애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 놈이 어깨를 으쓱대며 거들먹거리는 것이다.

“아, 넌 잘 모르겠구나? 설명하자면 길어, 교장 선생님이 특별히 내게 부탁한 것이지, 너는 그냥 나만 믿고 편하게 학교생활 하면 돼, 다시 한번 반갑다 야”

그러곤 놈이 악수를 청하며 내 앞을 가로질러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놈이 내민 손을 내려다본 그 애 표정이 아주 짧은 순간 굳어졌다. 이내 다시 평소처럼 활짝 웃어 보인 그 애가,

“아, 미안해서 어쩌지? 난 왼손으론 악수 안 해, 징크스 같은 게 있어서”

그러고는 놈에게서 고갤 돌려 딴 곳을 쳐다보는 것이다.

푸흡 하고 웃음이 터졌다.

별안간 펼쳐진 예기치 못한 그 애의 반응에 놈이 당황해하며 내민 손을 거뒀다.

진규자식, 원래 악수는 오른손으로 하는 거지만, 서 있는 위치상 저 편하려고 왼손을 내민 것이다. 온갖 잘난 척에 허풍을 있는 대로 부리더니, 그런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놈이 돼버린 순간이었다.

이후 놈은 읍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발을 옮길 땐 볼일이 있다며 먼저 달려가 버렸다. 물론 그 애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여전히 쉬지도 않고 재잘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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