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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Jul 09. 2024

발 없는 말이 슬퍼

슬픔을 고양시키는 것은 사실

슬픔이라는 감정은 폭발시킬 때보다 담담히 서술할 때의 파괴력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감정보다 슬픔을 고양시키는 것은 사실 그 자체다. 슬픔을 표현하는 그 어떤 감정의 언어보다 현상을 기술할 때, 나는 더욱 슬펐다.


글의 분위기와는 안 어울리지만, 무한도전의 이 짤이야 말로 내가 생각하는 슬픔을 가장 정확히 보여준 경우가 아닐까 싶다.



발없는 말은 아프고, 달리지 못해서, 슬프다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가장 슬픈가요?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 노래를 꼽겠다. 근데, 꼭 김창완이 부른 산울림의 버전이어야 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헤어짐 이후의 슬픔, 그 정서를 가장 극대화시키는 노래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이 노래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땐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네.

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서 있던 거지.
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산울림, <회상> 中)




특히 후렴구보다 이 도입부 가사가 내겐 훨씬 슬프고 애달프다. 작중 화자는 그냥 길을 걸었을 뿐이다. 갑자기 스산하다. 몇 초 안에 바람이 온도와 습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꾸었을 리는 만무하다. 같은 온도와 습도로 불어온 바람이 문득 차가워졌다고 느끼는 순간, 이별을 실감한다.


어디에도 떠난 사람에 대한 미련, 안타까움, 슬픔의 정서가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본인의 슬픔을 달빛에게 떠넘겨버렸다. 누가 이 전가를 무책임하다 하겠는가. 그저 슬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아끼고 참는 것일 뿐.


너 없인 안돼, 다시 돌아와 주라

매일밤을 술로, 눈물로 지새

어떻게 해야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라고 말하지 않아도 훨씬 슬프다. 여기에는 김창완 특유의 담백한 읊조림이 한몫한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 (대가에게 정말 무례하고도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노래를 못하면 더 와닿는다.






<응답하라 1988>의 OST로 삽입된 산울림의 <청춘>을 기억하는가. 산울림의 <청춘>을 김필이 다시 불렀고, 2절에는 원곡자인 김창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노래를 부르는 테크닉은 단연 김필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곡 전반에 걸친 정서와 끌고 가는 힘은 2절에 있다. 지나버릴 청춘에 대한 안타까움을 부르던 스물여덟의 김창완보다, 지나버린 청춘에 대한 회한이 담긴 환갑 이후의 김창완의 보컬이 더욱 큰 울림을 주는 것만 같다. 울부짖지 않고 읊조릴 때 더욱 슬프다. (물론 이 노래에서 김필의 정서 역시 폄하할 생각은 1도 없다)




유재하의 앨범이 명반으로 평가받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 같겠지만 훌륭한 가창력은 노래 자체의 감동을 반감시킬 수 있다. 유재하의 유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에 수록된 모든 노래가 시대와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누가 불러도 좋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많은 커버가 있지만, 원작자인 유재하가 부른 버전이 가장 좋은 이유도 유재하가 훌륭한 보컬리스트가 아니라는 역설에 있다. (대표곡 <사랑하기 때문에>가 가왕 조용필의 앨범에 먼저 실렸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힘을 빼고 덤덤하게, 담백하게 부르는 트랙리스트 전곡이 한 편의 영화처럼, 그리고 전설로 남은 그의 삶과 겹쳐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남긴다. 일렁이는 마음의 파장은 크지 않지만, 깊고 진하다.






이 글이 누군가의 슬픔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으로 읽혔다면 몹시 미안한 마음이다. 글을 써놓고 보니 슬픔이 어떻게 하면 더욱 슬프게 받아들여질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누군가 그랬다, 슬픔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만 한다고. 이 글이 그저 슬픔에 대한 단상으로 읽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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