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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Jun 25. 2024

저는 80의 100을 하는 편입니다만...*

완벽한 것은 오직 완벽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보통 돈 받고 하는 일은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하나가 퀄리티(또는 완성도), 다른 하나가 납기다. 둘 다 중요하지만 내게는 납기가 좀 더 우선이다. 그 근거는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보통 회사에서 일을 끝마치는데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납기에 대한 중요도는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절.대. 그럴 리 없다. 대체로 하루에서 사흘의 텀을 두고 업무지시를 받은 편이었는데 운 좋게도 금요일 저녁 일을 받아 월요일 아침에 보자는 상사는 없었다. 그래도 당일 오전에 받은 일을 당일 오후 2시 안에 해야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누구나 혼나는 일은 싫을 것이다. 두렵지 않은 것과 별개로 싫은 건 싫은 거다. 경험상 내용의 완성도가 부족했을 때보다 납기를 지키지 않았을 때 훨씬 크게, 자주 혼났다. 여기에는 촉박한 납기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디스카운트도 포함된다.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도 분명히


아, 이건 좀 무리겠는데?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일을 시키는 사람 역시 더 윗사람에게 그 일을 하명받았을 확률이 높고, 가이드는 급하게 맡기느라 소홀했을 가능성이 높다. 본인의 검토시간을 제하고 데드라인을 준 것이니 완성도에 대해선 진짜 뻘소리만 적어놓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 양해해 줄 수밖에 없다. (물론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같은 결과 다른 반응?


퀄리티와 납기의 간단한 매트릭스다. 여기서 퀄리티에는 또 하나의 함정이 숨어 있다. 바로 '상대성'이다. 퀄리티는 주관적이며 상대적이지만, 납기는 객관적이며 절대적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누가 봐도 확실한 기준으로 질책을 받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잘 없다.


그런데 나의 혼신을 다한 100%가 상대방의 기대 수준을 100% 만족시킬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았거나,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안을 상사가 더 좋게 생각한다면 아무리 애를 써봤자 부족할 뿐이다. (물론 능력 있는 상사라면 비록 원하는 방향과 달라도 고민의 흔적과 깊이를 높이 평가할 것이다.) 결국 퀄리티 측면에서 100%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순 없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일을 받으면 80%(퀄리티)의 100%(납기)를 추구하는 편이다. 여기서 100%는 납기가 될 수도 있고, 완성도의 목표치가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최선의 완성도를 80%로 설정하고 여기에 모든 에너지와 리소스를 100% 쏟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웬만해선 납기를 어기지 않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80%의 완성도는커녕 30%도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반복으로 숙련 가능하다. 가벼운 오탈자부터 논리적 구성력에 이르기까지 연차가 쌓이다 보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어느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사의 숨은 의도까지 파악하느라, 더 좋은 표현을 찾아내느라, 단락 간격을 맞추느라 숙고하고 검토하는 행위 자체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납기를 넘기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때로는 상대성이 행운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드물지만 나의 80%가 상대방 기대 수준의 100%를 넘어설 때도 있는 것이다. 상사 입장에서는 일도 잘하는데, 납기도 완벽히 지키는 팀원이자 후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욱 과감하게 밀어붙여볼 필요가 있다. 숙고가 필요하다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방향을 잡았으면 일필휘지, 파죽지세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상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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