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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마감하는 두 번째 방법.

2025년 1월 29일

by 호앙 Jan 30. 2025

침구가 바뀌어서인지 일어나자마자 뒷목이 뻐근했다. 

잠자리 탓할 것은 아니고, 작년 7월 앞에 있던 재규어 차량이 풀악셀로 후진하며 나를 들이받으면서부터 쭉 그랬다. 당시 일이 바빠 연락처만 교환하고 그냥 보낸 것이 실수였다. 당일 저녁부터 목이 아파 대인보험 관련하여 다시 연락을 하자, 재규어의 변호사가 나를 나일론 환자 취급하며 딱따구리처럼 쏘아붙였다. 그 변호사는 듣는 법은 못 배운 것 같았다. 괘씸해 경찰에 신고를 할까 하다 푼돈 몇 푼으로 이미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까지 상할까 봐 관뒀다. 내 탓이지 뭐.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뒤, 부모님의 힘내라는 말을 뒤로한 채 도망치다시피 다시 집으로 향했다. 힘내라는 말은 이제 정말인지 듣기 힘들다. 내 실패가 전제로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란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니발 한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들었고 나는 기교를 부리며 급정거를 했다. 사과는 받았지만 때문에 엄마가 싸주신 반찬이 엎어지며 국물이 샜다. 그걸 보니 눈물이 난다. 요즘 들어 한 번 터진 눈물은 쉽사리 그치지 않는다. 


반찬통을 물티슈로 대충 닦고 집에 와 대청소를 했다. 그래도 새해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마도 없을 희망을 기대하며. 냉장고도, 세탁기 밑도, 화장실도 솔로 벅벅 문댔다.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쓰지 않을 물건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러 패딩을 다시 입었다. 자전거를 탈까 하다, 칼바람에 기권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내가 기다리던 버스는 어떤 이유에선지 10분이 넘게 오지 않았다. 목적지가 다른 버스들이 바람을 내며 내 앞을 세차게 달려 나갔다. 


나는 몇 번이고 뛰어들까 하다 두 다리를 겨우 말렸다. 방법은 확실하겠지만 새해 첫날부터 버스 아저씨는 무슨 죄랴. 자유의지의 철학으로 평생을 구차하게 버텼는데, 방종한 죽음으로 철학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허무한 블랙코미디는 없을 것이다. 이제 가진 것이 이름뿐이라, 이름마저 더럽히면 내가 세상에 남기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망할 재규어라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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