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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Aug 10. 2024

미국에서의 첫 취업 그리고 실패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는 한 유명 미국 반도체 회사였다. 나는 그곳에서 전력반도체 일을 하면서 나의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이 회사는 내가 박사 학위를 하는 동안에 인턴을 했던 회사였다. 코로나 때문에 이 회사의 인턴 기간 내내 재택근무를 했었다. 인턴 기간 동안 한 업무는 재미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가장 좋았던 것은 이제까지는 주로 DC-AC 컨버터의 연구를 한 반면 이 회사 인턴을 통해 처음으로 DC-DC 컨버터에 관한 일을 해보았다는 것이다. 보다 큰 하드웨어의 설계역량이 요구되는 DC-AC 컨버터보다는 보다 작은 크기의 DC-DC 컨버터가 나와 더 잘 맞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이때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의 내용이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이 조직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인턴을 할 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었는데 첫 번째로 이상함을 느낀 부분은 관리자를 제외하면 이 회사에서 전력전자를 전공하고 전력반도체 일을 하는 인원의 상당수가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아주 젊은 엔지니어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미국 회사의 특성상 나이가 많은 엔지니어들 중에 높은 퀄리티의 엔지니어들이 상당수 있는 편인데 이 회사에서는 그렇게 경력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엔지니어를 적어도 나는 찾을 수 없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경력과 실력이 뛰어난 엔지니어는 이 팀에 오지 않을 정도로 이 팀의 무엇인가가 나쁘다는 뜻이었다. 두 번째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윗사람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너무 많이 노력하고 애쓴다는 것이었다. 윗사람이 요구한 발표양식과 보고서 양식을 맞추고 발표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며칠 동안 모두 모여 애를 쓰는 모습은 안쓰럽고 때로는 한심스러워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엔지니어들이 실제 일을 잘하는 것보다 발표를 하면서 윗사람에게 지적당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인생 목표인 것처럼 보였다. 인턴 후에 정규직으로 오퍼를 받더라도 이곳은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서서히 굳어졌다. 내가 이전에 인턴을 했던 미국 회사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지만 인턴이 끝날 때쯤 졸업하고 이 회사에 입사하라는 리턴오퍼를 줬고 인턴까지 하고 오라고 오퍼까지 줬는데 가는 게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인턴의 거의 마지막날 함께했던 사람들과 화상으로 인사를 할 때는 그 이전에 딱딱하고 각박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사람들이 꽤나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는데 어쩌면 재택이라서 이 팀의 문화에 대해 오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이런 순진한 생각으로 이 회사의 정규직 오퍼를 받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첫 출근한 오전부터 나는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첫날 첫 만남부터 나의 상사는 마치 시비를 걸듯 나에게 첫인사를 했고 이런 그의 태도는 내가 회사를 다니는 내내 지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직은 정말이지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조직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자주 이 사내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다. 가령 다른 엔지니어가 나에게 무언가를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고 그대로 해가면 상사 앞에서 자기는 이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며 나를 곤란에 빠뜨리는 그런 식이었다.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내 상사 또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를 노골적으로 하곤 했다. 그때부터 뒤로는 여기저기 다른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니고 앞에서는 또 회사일을 열심히 하는 척하는 희한한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미국의 잡마켓에서 너무 순진하게 굴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정말로 순진하게도 인턴까지 하고 정규직까지 줬으면 당연히 가는 게 예의가 아닌가 하는 황당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프로페셔널한 엔지니어로서 이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인턴 이후에 리턴 오퍼를 줬다고 하더라도 거절 후에 더 나은 직장을 찾아야 했고 그것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당연한 권리였다. 실제로 정규직으로 입사를 하고 나자 내가 인턴을 하면서 느꼈던 이상한 느낌이 정확히 맞았다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서 이 팀은 이미 굉장히 나쁜 팀으로 이미 잘 알려진 팀이었고 인터넷 검색 몇 번만으로도 이 팀의 실체에 대해서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이 자발적으로 이 팀을 떠난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생활은 완전한 실패로 끝이 났다. 두 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한 가지는 나는 프로페셔널한 엔지니어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 하고 싶은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한 나의 권리이자 나의 의무라는 점이었다. 두 번째로 배운 중요한 점은 나의 느낌과 직관은 생각보다 잘 맞으며 그것을 애써 부정하지 않고 따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은 이직이 굉장히 활발하며 또 이직할 회사가 워낙에 많기 때문에 첫 직장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미국 인더스트리에서 성공하겠다는 일념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새 직장 찾기를 지속할 수 있었다. 


과연 나의 미국 도전기는 첫 직장의 실패로 이렇게 그냥 막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더 나은 직장을 찾아 내가 꿈꿨던 미국 엔지니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재취업은 아닌데 그렇다고 이직이라고 불리기에도 애매한 나의 이직 겸 재취업 도전기에 나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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