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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Oct 05. 2024

동료들의 해고와 이직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잡마켓과 경제상황, 그리고 우리 회사의 상황도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을 때 그리고 두 번째 취업을 할 때에는 미국의 잡마켓 상황이 정말 좋았다. 특히나 엔지니어의 경우 미국 회사들에서 없어서 뽑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덕분에 나도 두 번째 취업을 할 때 여러 개의 오퍼를 받아 직장을 골라 갈 수 있었다. 우리 회사의 상황도 아주 좋아서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충원되었고 태평성대와 같은 날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이어졌다.


그런데 내가 취업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잡마켓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수많은 기업에서 대량 해고가 진행되기 시작했고 내가 다니는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나는 닥치기 전까지 이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로 즐겁게 일을 하고 많이 배우며 하루하루를 보람되게 사는 중이었다.


그렇게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흘렀을 무렵 어느 날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실험실로 갔더니 나와 친한 한 동료가 이야기 들었냐 라며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회사가 하나의 부서를 통째로 없애기 위해 그 부서의 대다수의 사람을 해고하겠다고 이제 막 발표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회사의 해고를 바라보며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내가 저런 상황이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또한 밀려왔다. 물론 이것은 예고편 정도에 지나지 않음을 모른 채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는 또다시 출근하자마자 실험실로 향하고 있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매니저와 엔지니어가 복도를 지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던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는데 그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실험실로 향했다. 알고 보니 그날은 몇몇 팀에서 해고 대상자로 정해진 사람들이 해고되는 날이었고 내가 마주친 그 사람들은 당일 해고 당사자와 해고 통보를 한 매니저였다. 그렇게 나의 옆자리 사람도 해고되고 말았다. 이번 해고는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줬다. 한 팀이 어쩔 수 없이 통째로 해고되는 게 아니라 팀에서 몇 명만 골라져서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더 흘러 회사를 다닌 지 2년이 훌쩍 지났을 때 나는 세 번째 해고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때에도 몇몇 팀에서 해고 대상자가 골라졌고 그렇게 그들은 회사를 떠났거나 아니면 곧 떠날 예정이 되었다. 그렇게 이전 내 옆자리 사람이 해고된 후 새롭게 온 내 옆자리 사람은 또 해고대상자에 오르고 말았다. 희한하게도 내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계속해서 해고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멘탈이 붕괴될 것 같았다. 급기아 나의 상사에게 가서 나도 해고 대상자에 오를 수 있느냐고 물어봤고 내 상사는 걱정 말라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상사인 자신보다도 내가 더 안전하다고 말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 왠지 회사에 높은 사람을 만나면 나를 보는 눈빛이 어떠한지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차례 해고가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몇몇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충격적 이게도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오랜 시간 정말 좋은 엔지니어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평가받던 엔지니어들이 자발적으로 이직해서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해고가 지나가고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해고를 두려워할까? 사실 미국에서의 해고는 큰일이 아니었다. 해고를 당한 엔지니어들도 금세 다른 직장을 손쉽게 찾았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재취업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 또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첫 직장생활을 하고 두 번째 직장을 손쉽게 찾았다. 그럼에도 나는 해고를, 조직에서 내쳐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원인은 이것이었다. 나는 해고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나쁜 평가를 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었다. 해고 대상자로 오르는 것이 마치 나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인 것처럼 생각되어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사실 해고는 실력이 좋던 나쁘던 모두에게 일어났다. 팀이 갑자기 없어질 수도, 정말 실력이 좋아도 운이 나쁘면 해고 대상자에 오르는 것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는 해고 대상자에 올라버린 엔지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실력이 뛰어난 엔지니어라고 평가하는 실력자였다. 해고는 그 사람의 가치를 대변하기 못한다. 심지어 정말 실력이 좋은 우리 팀의 팀원 중 한 명은 그가 가는 팀마다 그 팀이 없어지거나 해고되는 해프닝을 겪어서 그 일화를 웃으면서 나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회사에서의 나에 대한 평가는 진정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평생동안 10번을 넘게 이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곳에서 회사는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다. 나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회사가 아니라 나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회사에 맡겨버리고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그래서 그토록 해고를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엔지니어에게는 겨울이 있다. 내가 갈고닦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직까지는 세상에서 별 쓸모가 없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수도 있고, 경기가 나빠질 수도 있으며, 일시적으로 공급 과잉으로 인해 고비를 겪어야 될 수도 있다. 지금 세상을 바꾸는 AI기술도 오랜 시간 겨울과 같은 시간이 있었다. 그 겨울과 같은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세 번의 해고를 목격하면서 엔지니어로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 한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바로 쓸모없는 잡음을 꺼버리는 능력이었다. 해고, 경기하락, 잡마켓의 악화 이런 것들은 모두 쓸모없는 잡음이다. 진정으로 내가 살펴야 하는 것은 정말 내 것이라고 할만한 지식과 실력을 갖추느냐 하는 것이었다. 진짜 실력을 갖추면 기회는 널려 있는 곳이 이 미국이라는 땅이다. 그리고 나만의 실력 갖추기 위해서는 아무리 크고 시끄러운 잡음이라도 그것을 꺼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을 잡음으로 여기고 그것을 꺼버리자고 결심한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망각하는 것, 그것은 바로 잡음을 제거하고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쯤 되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뭐 한번 해고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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