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인 시어머니와 나와의 관계
시어머니가 오셨다. 다음 주에 매우 바쁠 나와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시러 오셨다.
어머니가 오시는 날, 그날도 나는 하루종일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학생들 레슨에.. 집은 엉망진창, 손님방 침대 시트도 우리 애들 자고 난 그대로이고,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 악기만 들고 집에서 뛰쳐나왔다.
전부터 벌인 일이 있어 다음 주에 애들을 케어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딸들에게,
"엄마, 아빠가 일주일 일 때문에 바쁜데, 저녁 먹고 잘 때 베아트리스 (베이비시터) 오라 할까 아니면 할머니 오시라 할까?"
물었더니, 망설임 없는 아이들 대답: 할머니 오라 그래.
참 신기하다. 우리 어머님, 특별히 애들이랑 놀아주는 스타일도 아니신데 애들은 그래도 할머니가 편한가 보다. 한 번씩 오는 좋아하는 베이비시터 언니도 마다하고 할머니 오시라 하는 것 보니.
"바쁠 때 시어머니 오시면 더 바쁜 거 아냐?"
친구의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는 남편과 나도 의견이 같기에 77세 어머님에게 S.O.S를 치기로 한 것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라는 게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엄마, 내 아들과 가장 가까운, 아들을 쥐락펴락하려는 여자사람, 뭔가 어려운 관계이다.
결혼 11년 차인 나에게도 시어머니와의 관계란 서로 보면 반갑고 헤어질 때 더 반가운 그런 관계이다(남편 눈감아! 한글 배우지 마!).
어머님과의 11년 동안 꽤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시기를 나누자면 다음과 같다.
1기: 서로를 알아가던 밀당기
처음 전 남친 현 라헬아부지 토마쓰를 만나서 연애하던 시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나는 진상여친이었다. 내 진상의 몇 가지를 열거하자면, 친구들 앞에서 남자 친구한테 화내고 삐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툭하면 헤어지자 하기, 같이 파티에 초대받아 가서 문 앞에서 싸우고 집에 가버리기 등등 지금 생각해도 나 너무했네, 싶은 많은 행동들을 했었다.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게 이 남자한테는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속에 왠지 이 남자랑 결혼할 것 같은데, 나의 밑바닥을 다 보여도 나를 좋아해 줄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네가 이래도 나랑 결혼할래? 뭐 이런 거랄까?
이런 나의 진상짓이 당시 남친 부모님을 만났을 때도 새어 나와 남친 부모님 앞에서 토마쓰한테 까칠하게 짜증내기도 여러 번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우리 남편 보살이었네 싶다.
결혼하고 나서 토마쓰한테 아주미들의 단골 질문, 나 왜 사랑해? 하고 물을 때마다
남편은 주저 없이
너 좋은 사람이니까라고 대답한다.
그게 다야? 예를 들면 예쁘고 섹시하다던가.. 라고 아무리 정답을 얘기해 줘도 한결같이 매번 같은 대답이다.
"내가 결혼 전에 진상 짓할 때 뻥 좀 차주지 그랬어."
"너 일부러 그런 거잖아. 나 시험하려고. "
헉. 그것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단 말이야?!
남편은 나를 꿰뚫어 봤지만 시부모님은 안 그러셨는지, 나의 까칠한 모습을 보신 두 분은,
쟤, 성격 있네.
하셨을 거다. 결혼 후 몇 년 후 까지도 나를 좀 무서워하시는 느낌을 받은 건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걸로(물지 않아요).
2기: 라헬 태어난 후 갈등기
라헬이 태어나고 난 후 조리원이 없는 스위스에서 신생아를 데리고 고군분투할 딸이 걱정된 사루비아님(a.k.a 마이 마덜)은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와서 살림과 신생아 케어를 도맡아줄 산후조리사 요정님을 보내주었다.
모르는 이가 집에 같이 지내면서 우리를 돌본다고 하니 처음에는 불편할 것 같다는 둥 의심쩍어하던 토마쓰도 둘째 임신 확인하자마자 부모님께 알리기도 전에 이모님한테 연락하자고 했다는 ㅎㅎ
그리하여 우리 라헬, 그리고 또 4년 후 아멜리까지 돌봐 주신 오여사님은 살림이면 살림, 우리 애들 케어, 매일매일 나의 발 마사지까지 척하면 척, 말씀드리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 적절히 눈치껏 조용히 나타나셔서 해결해 주시고는 사라지시는 평생 고마울 나의 은인이다.
그런 오여사님이 집에 가시고는 사루비아님과 어머님께서 교대로 오셔서 애들도 보시고 살림도 도와주셨는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신생아를 키우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정말 집착하게 되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잠!
밤이면 몇 시간마다 한 번씩 깨서 수유를 해야 하는 아가와 지내다 보면 점점 좀비가 되어가니 그때의 나는 아기가 낮잠이라도 자면 모든 걸 올 스톱하고 침대로 다이빙해서 누워있고 싶었다.
어느 날 토마쓰는 출근하고 라헬을 재우려 같이 누워있는데, 어머님께서 방문을 똑똑 노크하신다.
아기가 바깥공기를 쐬면서 자면 좋으니 당신이 라헬을 유모차에 태워서 나가 산책하고 오시겠단다. 우리 어머님, 어디에 한번 꽂히시면(언어 죄송 ㅎㅎ) 해결될 때까지 그 말씀만 하시는데, 내가 한국식으로 아기를 집에만 데리고 있으니 신선한 바깥공기를 쐬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더니, 며느리가 꿈쩍도 안 하니 본인이 가셔야겠다 생각하셨나 보다.
그 순간 너무 난감했다. 당시 우리 집이 있던 동네는 경사진 언덕이 많은 곳이었고, 어머님이 그리 순발력이 있는 스타일도 아닌 데다, 유모차 작동법도 모르실 텐데.. 그때까지 남편과 나 말고는 누구에게도 아이를 맡겨 본 적이 없었던 초보 엄마는 마음이 놓이지가 않았다.
"라헬 낮잠 자고 일어나면 유모차 태워서 같이 나가요."
그날따라 어머님도 물러서지 않으셨다. 저 며느리가 내 손녀한테 바깥공기도 안 쐬어주려 하나 싶으셨는지,
"자고 있어. 내가 데리고 나가서 재워서 돌아올게."
하시는데, 으악!!! 잠이 오겠냐고요.
결국은 나도 옷 주워 입고 라헬도 옷 갈아입혀서 유모차 태우고 같이 산책하는데 라헬이 잠이 든 순간, 같이 누워서 눈 붙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어머님이 얼마나 밉던지. 지금 생각하면 덕분에 운동도 하고 됐네, 싶은데 그때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또 한 번은 아이한테 비타민 D가 부족하지 않게 햇빛을 쐬여야 한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더니, 틈만 나면 아이를 집안에 해가 잘 드는 곳에 데려다 놓으시는 거다. 해만 보면 그늘로 피해야 한다는 사상의 아시아인으로서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착한 사람 귀에만 들리는 노래) 아이 눈부시게 땡볕에 두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머님이 라헬 아기의자를 빛이 잘 드는 곳에 데려다 놓으시면 나는 다시 그늘로 밀어 넣고, 톰과 제리마냥 왔다리갔다리 라헬둥절, 이 엄마랑 할머니가 뭐 하나 싶었을 거다.
그 이후에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알게 된 유럽의 양육방식에 진짜로 해를 많이 쬐게 해 주고 바깥공기에서 재운다는 걸 알게 된 후에 아, 그때 어머님이 그래서 그러셨구나. 이해가 되었다.
나도 어머님도 본인이 아는 방식 안에서 라헬에게 최선을 다 했던 것이다. 방식이 달랐을 뿐.
3기: 현재 안정기
11년간을 알아온 현재는 서로에 대해 많이 배우고 이해하게 되어 이제는 연세 드시는 게 짠하고 남편이 부모님에게 애틋해지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처음에 결혼해서 우리 집에 오셔서 한국 음식을 해 드렸는데, 한국 음식은 고추장이지 뻘건 닭도리탕을 끓이는 과정에서 집을 가득 채운 매콤한 공기에 벌써 기침을 해 대시던 어머님, 아버님께 이제 와서 심심한 사과를 드리고 싶다. ㅎㅎ (벌칙 아님, 일부러 그런 거 아님) 이제는 알아서 고추장 빼고, 계급장 다 떼고 ㅎㅎ 양념 자극적이지 않게 소금 간 정도만 해서 요리를 해 드리면 맛있다고 잘 드셔서 어머님, 아버님 오시면 먹는 메뉴 리스트가 있다. 미역국, 달걀찜, 라자냐, 카레라이스는 다 좋아하시는 메뉴이다.
11년 차 며느리로서 느낀 점이 있다면, 나를 위해서, 내 위주로 하자이다. 스위스 아주미 너 굉장히 이기적이구나.라고 하셔도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런데 뭐든 누구를 위해서 한다는 생각보다는 나를 위해서 한다는 생각을 하니 모든 것이 즐거워졌다. 예전에는 내가 당신들을 위해 이렇게 해줬는데, 돌아오는 게 없으면 서운하기도 하고 야속하게 느낀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 애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가족의 정을 경험하여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으로 자라는 게 내가 바라는 일이니, 이 모든 일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휴가에 폴란드에서 시부모님과의 여행을 계획했는데, 내 취향대로 내 좋은 곳으로 숙소를 잡았다.현명한 며느리가 되기 위한 길이다!(믿어주세효)
얼마 전, 남편이 아이들과 폴란드 부모님을 방문했을 때, 아버님이 뜬금없이 토마쓰에게 말씀하시길,
"라헬 에미(저요)는 볼수록 애가 현명하고 좋은 사람이야."라고 하셨단다.
앞의 1기 밀당기 때의 까칠했던 나를 기억에서 지우기가 어려우셨나?
제가 좋은 사람인지 11년이 지나서 깨달으셨군요, 아버님. 저 원래 이런 사람인디유.라고 허공에 대고 외쳐본다(거기 누구 없소)!
그럼, 현명한 며느리는 앞으로도 나를 위해, G 좋은 대로 살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이만 저녁 준비해야 하므로, 바빠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