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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스 아주미 Jun 03. 2024

동양인 관광객은 서양인을 킹 받게 하는가?

인종차별이라고 하기 전에!

나는 사람 구경 하는 걸 좋아한다. 루체른 구시가지의 스타벅스 2층은 스위스에서는 보기 힘든 아. 아 한잔 하면서 창밖으로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얽히고설켜 각자의 행선지로 각각의 템포로 저마다의 아리아 또는 레치타티보를 부르며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스타벅스는 한국인에게 무슨 의미일까? 뭔데 내 나라를 떠나 있는 이곳에서 미국인도 아닌 나에게 한 조각의 향수를, 고향의 맛을 선사하는가? 대단히 맛있는 커피를 유럽에서 많이 마셔봤지만, 이 묽고 흐리멍텅한 차가운 커피가 나에겐 찬란했던  20대를 생각나게 한다. 뾰족구두신고 한국에서 대학 다니던 시절, 미자본주의의 절묘하게 짠 각본대로 이보다 더 완벽하게 놀아날 수 없었을 만큼 나는 학교 앞에 있던 우리나라 1호점 스타벅스에 용돈의 절반을 충성스럽게 갖다 바쳤다. 우리 아부지, 이럴 거면 용돈을 스타벅스로 바로 입금하겠노라는 농담을 하시기도.

카펠교가 보이는 루체른 구시가지의 스타벅스,  라헬과의 스타벅스 데이트

2000년대 초반 막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여대생들 사이에서 헐리웃 스타들의 패션이 유행했었는데, 파파라치 샷 속의 린제이 로한, 패리스 힐튼의 손에는 언제나 무심한 듯 스타벅스 커피가 들려있었다. 그녀들의 손에 들린 커피에서 나는 트렌디함과 여유, 당당함을 보았으니(맛은 보지 못했다 한다) 스타벅스는 맛으로 보다는 멋으로, 우리 아부지 말씀대로 똥폼으로 마신 게 맞는 듯하다고 20년이 흘러서 고백해 본다.




웬즈데이 마틴이 쓴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를 읽고선, 뉴욕 최상류 층의 특이 습성을 마치 실험실 쥐(이 경우엔 실험실 원숭이인가?)를 연구하듯 그려낸 걸 참 발칙하고도 기발하다 생각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이 되어보니 다른 습성을 가진 각각의 인종들의 다른 행동양식이 눈에 잘 들어온다.

나의 눈에 띄는 두 부류의 그룹은 내가 동양인이다 보니 동양인과 내가 살고 있는 유럽의 유러피언 무리인데, 그동안 항상 느껴왔던 동양인과 유러피언(서양인)의 행동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문제) 다음 두 상황을 읽고, 양쪽의 입장 차이를 설명하시오.

상황 1.

루체른 구시가지의 호숫가, 단화를 신고 목적지를 향해 바삐 직진 중인 한 유러피언 여성이 있다. 여성은 멀찌감치에 무리 지어 있는 아시아 관광객들을 보고 속도를 줄여 최대한 그들에게 부딪히지 않기 위한 동선을 머릿속에 짠다.


동양인들도 갈길이 바쁘긴 마찬가지다. 이 아름다운 알프스 산도 눈에, 카메라에 다 담아야 하고, 사자상에  갔다가 퐁듀도 먹어야 하고 맛있다는 스위스산 촤컬릿도 사야 하고.. 느무느무 바쁘다. 너무 바쁜 나머지 다가오는 유러피언 여성은 아웃오브안중, 속도를 올려 계속 바삐 전진한다.


드디어 지나치는 순간. 여성은 어떻게든 그들을 피해 가려해 보지만 신나는 이야기를 하며 가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던 그들이 여성을 지나치는 순간 무리 중 한 명이 여성의 어깨를 툭 친다. 툭 치고도 별말 없이 바삐 지나치고(우리들은 바쁭깨) 여성의 얼굴에서 잠깐이지만 불쾌한 심기를 읽을 수 있다.

서울 거리와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동네길


상황 2.

루체른 기차역의 슈퍼마켓. 휴일이면 가게들이 문을 일찍 닫는 관계로 주말에 유일하게 여는 기차역의 슈퍼마켓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미처 장을 보지 못한 현지인과 관광객, 사람으로 얽혀서 발 디딜 틈이 없다.

중심가 금싸라기 땅에 있는 슈퍼마켓이라 슈퍼 안은 정말로 비좁고, 어떤 구간은 누군가가 지나가면 반대편 사람은 서서 기다려줘야 하는 one way 일방통행 구간(내가 만든 구간임)도 있다.


사과를 사려고 기다리고 있는 한 유러피언 남성이 있다. 기다리는 이유는 사과 코너에서 누군가가 사과를 봉지에 담고 있기 때문. 다가가서 사과를 고르기에는 이 공간이 너무 좁다는 판단에서이다.


갑자기 그의 옆으로 어느 동양인 관광객 여성이 밀착하여 남성 쪽으로 팔을 뻗어 맛있는 사과를 고른다. 여성의 팔이 뻗은 곳 주변에 있던 남자의 머리가 당황한 듯 여성의 팔에게 자리를 내어준다(팔에서 되도록 멀어지려고 목을 꺾어 피한다). 이 남자는 상황 1. 의 여성보다는 더 노골적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불쾌함을 드러낸다. 내 눈엔 그의 깊은 빡침이 보인다.




이상은 내가 유럽에 20년 넘게 살면서 수도 없이 목격한 상황이다. 심지어는 우리 부모님과 함께 다닐 때 다른 유러피언들이 우리 부모님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는 상황에 내가 더 당황한 기억도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유럽에 오래 산 동양인으로서 나는 양쪽의 입장이, 심정이 공감된다.


유러피언 입장(동네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소!)

이들은 개인의 공간을 굉장히 중시한다. 본인의 공간을 침범하려는 자를 인지하는 더듬이라도 있는지 인지하는 순간,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공간을 침범하지 않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공간 침범 최악의 시나리오가 몸과 몸끼리의 부딪힘인데, 부득이하게 이런 충돌이 생기는 경우에는 우리가 아는 그 특유의 외국인 제스처, 두 손을 앞으로 들어 미안함을 (주병진 아저씨마냥 손바닥이 보이게) 표하는데 보통은 쌍방에서 당신의 공간을 침범해서 미안하게 됐소, 가벼운 쏴뤼(sorry) 사과를 해온다. 이런 그들이니, 누군가가 내게 너무 가까이 너무 빠르게 다가오는 걸 무례함을 넘어선 위협으로 느낄 법 한데, 그걸 자주 범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우리들 아시안!


이 정도 거리면 그만 다가와도 될 것 같은데 예고 없이 훅 들어와 팔꿈치를 툭, 서서히 속도를 줄여야 할 것 같은데 아랑곳없이 빠르게 다가와 앞으로 쌩 지나가는 아시안들이 이들에게 무례하게 느껴질 것임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스위스로의 입국심사를 하기 위해 늘어선 줄에서 자꾸 너무 가까이 다가와 내 가방을 자꾸 치는 뒤에 서 있던 한국인 아저씨가 나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느끼는 것을 이제는 나도 느낀다.


이쯤에서 들려올 원성: 스위스 아주미야,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유럽물 좀 오래 먹었다고 동양인들 무례하다 그러고 이러기냐? 그러는 너는 동양인 아니냐, 사대주의냐 뭐냐! 뷁!


생각하셨다면 진정하시라. 안 그래도 나를 포함한 피고(?) 아시아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려 했었다.


동양인들의 입장(우리도 할 말 있다우!)

일단 동양의 우리가 아는 도시들은 유럽에 비해 인구밀도가 굉장히 높다! 나는 도쿄도, 베이징도 방콕도 안 가봤으므로 내가 잘 아는 서울을 예로 들어보아도 출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내 반경 80cm 개인 공간을 존중해 주세요. 난 소중하니께. 옆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가는 저 여자 뭐래니, 됐고 옆으로 좀 붙어서라 그래. 전국민적으로 2호선 무개념녀, 왕따 안 당하면 다행이다.


예중, 예고를 다닌 나는 5호선 지하철이 생기기 전까지 출근 시간에 좌석버스를 타고 30분가량 먼 거리 통학을 했는데, 내릴 때쯤 되어 통로에 다닥다닥 몸을 맞대고 서 있는 사람들을 뚫고 내릴 생각을 할 때면 15세 인생 최대의 난제, 한숨이 푹푹 나오곤 했었다. 악기라도 가져가는 날이면, 악기를 안고 여기 치이고 저기 치여 내려서 보면 교복 똑딱단추 한두 개 정도는 풀려 있기 일쑤였다.


이렇게 개인의 공간 지켜주기 자체가 사치인 도시에서 자란 우리들은 누군가가 훅 다가오는 게 익숙하고,  익숙하니 딱히 미안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것이 그에 대한 허용치가 큰 것이다. 입장이 이해가 간다.


아이들은 personal space 지키기에서 제외


개인 공간, personal space ,독어로는 distanzzone가 철저히 무시되는 인간 부류가 있으니, 그것은 아이들! 이곳에서도 아이는 아이다울 권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순수함은 철저히 존중해 준다. 우리 아멜리 유치원 하원 시에 친한 친구와 입에 뽀뽀하는 걸 보고 다들 귀여워하는데 엄마인 나만 오마이! 혼비백산했다는. ㅎㅎ


그럼, 여기도 이해되고 저기도 이해되고 모두가 이해되는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옆으로 오면 비켜주고 갈길이 겹쳤을 때 잠깐 1초 멈춰 서서 먼저 가시라고 양보하는 쪽을 택하겠다.

20년을 그렇게 살아보니 그렇게 해도 딱히 안 늦고 서로 기분도 좋아지고 좋은 게 좋은 거다 싶다. 상대방도 그런 예의를 지켜주면 최고의 시나리오 아닌가!


특히, 관광객이라 함은 잠깐 그 나라를 방문하는 사람들,  남의 나라에 갔으면 그 나라의 문화, 예절 정도는 사전에 알고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게 내 상식이다. 누군가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기 전에 잠깐, excuse me 양해를 구하자. 그거면 충분하다. 그 excuse me에 담긴 의미는  지금 내가 너의 공간으로 잠시 들어갈 터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오. 쯤 될 것이다.


유럽에 휴가온 한국인들이 인종 차별을 받았다는 글을 여기저기서 보게 되는데, 혹시 상대방의 개인 공간을 침범해서 받은 눈살 찌푸림을 인종 차별이라 오해한 것은 아닌지? 유럽에 오래 산 스위스의 한 아주미가 안타까워하며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께 전하라 하셨다는 얘기를 끝으로 언젠가는 한국인을(저요) 짱나게 하는 유러피언 편으로 또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난 바빠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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