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꾸준히 방문하는 우리의 맛집들
스위스에 살면서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먹을게 별로 없다는 것이었는데, 유럽에 산지 20년이 넘어가니 그것도 넘어섰는지 이제는 이곳의 제철음식, 봄이면 아스파라거스, 가을이면 호박 수프와 트러플, 겨울에는 퐁듀와 라클렛.. 이곳의 음식을 즐기게 되었다.
그간 다시 찾아갔었던 식당들의 사진을 모아놓고 보니 어쩜 이리 스위스 음식점은 하나도 없는지.. 다들 아시아 아니면 이태리, 스페인 음식인걸 보니 스위스 쿠이진이 나에겐 굳이 찾아가서 내 돈 주고 사 먹을 만한 음식은 아닌가 보다. 고급진 미슐랭 식당도 좋아하지만, 사실은 국밥에 소주파, 아재 입맛인 스위스 아주미의 취향저격 식당인 걸 감안해서 루체른 왔을 때 먹프로그램을 짜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뭔가 비장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써보련다. ㅎㅎ
시작하기 전에 아래 첫 번째 사진 설명: 지난 글에도 언급했었던 윗집 친구 슈테판. 며칠 전에 또 애들 재워놓고 한잔 하러 가서, 내가 요즘 글을 쓰는데 너희 얘기도 한 번씩 나온다 했더니, 자기 사진을 찍어 올리라며 급하게 식탁 정리를 하길래 찍은 사진. 이 부부는 와인에 진심이어서 이 집에 가면 항상 맛있는 와인을 마시고 오는데 이날은 왜인지 맥주가 땡겨서 나만 맥주로 짠! 슈테판, 우리 등산 언제 가?
본론으로 들어가서 앞으로 소개할 곳들은 약 10년간 때 되면 찾았던 곳들로, 사진첩에서 사진을 찾아보니 결혼 전, 애들 없던 신혼 때, 라헬 임신했을 때, 아멜리 태어난 후.. 우리의 세월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는 한편, 나도 남편도 젊었었다! 현타가 오기도 했다.
1. Khoua Vientiane
Kauffmannweg 7, 6003 Luzern
https://www.facebook.com/pages/Khoua-Vientiane/151345038238054?_rdr
이름을 발음할 수 없어 Astoria Hotel뒤에 베트남 쌀국숫집이라 불리는 이곳은 내가 처음 루체른에 온 2011년부터 꾸준히 쌀국수 먹으러 가는 곳으로, 애들 임신해서 입덧했을 때도, 몸살감기가 걸려서 아플 때도 먹었던 나의 soul food로 가면 항상 소고기 쌀국수, 오리 바질 요리(Ente Basilikum, 칠리 1개), 도미 튀김 요리(버섯 소스) 이렇게 시켜 먹는다.
우리 부모님 스위스 오셨을 때도 한번 포장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음. 점심시간에는 아시아인, 현지인들로 붐벼서 뜻밖의 합석을 강요당하기도 해 눈 둘 곳 잃은 유러피언들이 허공을 보며 국수를 먹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방문하는 곳. 그전에는 남매가 운영하다가 요즘에는 누나 부부가 운영하는데 TMI 하나, 화장실을 가려면 주방을 통해서 가야 하는 특이한 구조라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을 훔쳐볼 수 있다. ㅎㅎ 봤다고 따라 할 수는 없다는 슬픈 끝맺음.
2. Phanat Thai
Schlossergasse 7, 6004 Luzern
이곳은 루체른 Altstadt(구시가지) 허름한 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타이 음식점으로 몇 년간 지나만 다니면서 저긴 뭔데 저리 허름해? 밖에서 들여다보기만 하다 아시아 전역을 여행한 맛. 잘. 알 럭셔리한 인도 친구의 추천으로 가봤다가 메뉴 번호 18번에 빠져, 요즘도 혼자 쇼핑하다 후딱 점심 먹을 때 들르는 곳이다.
다른 것은 먹어봤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갈 때마다 시키는 메뉴 18번은 뭔가 꼬리 한 감칠맛이 매력적이다. 먹고 나면 오후에 물 벌컥벌컥 당첨인 것 감안해서 서양 음식에 질린 한국인 관광객들 한 번쯤 혀를 리셋시킬 필요를 느낄 때 추천함.
이곳의 최대 단점은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인데, 전에도 등장했던 내 친구 Andrea의 엄마 Pia와 그녀의 이모는 이곳에서 식사 시에 가방 속에 작은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넣어와서 몰래몰래 컵에 따라 마신다! Andrea 가 그렇다고 얘기했을 때 설마 했었는데 남편과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실이다!! Pia 브라보!!
장사가 잘되었는지 바로 옆에 좀 더 신경 쓴 술도 파는 레스토랑을 열었는데(주방은 같이 씀) 그곳에서 먹으면 그 맛이 안남.
3. Jialu
Haldenstrasse 4, 6006 Luzern
이곳은 셀 수 없이 많이 간 곳으로, 루체른 호숫가에 있는 5성 호텔 Grand Hotel National 안의 호텔 중식당이다. 5성 호텔 안 중식당이면 되게 비싼 거 아냐? 사루비아님 좋아하시는 (이 분이 누군지 모르신다면 지난 글들을 읽어주세효) 신라 호텔 팔선을 생각하신다면, 그 정도는 아니고 스위스 치고는 비교적 무난한 가격에 난 중국을 안 가보았지만 중국인이 하는 식당인 관계로 꽤 authentic 하다.
스위스는 외식 시에 동네 식당의 최저가격은 비싼데 비해 오히려 5성급 비싼 곳으로 가면 우리나라보다는 가격의 격차가 크지 않은 경우가 있다. 특히 차와 케이크만 먹을 경우에는 특급 호텔에 가도 시내의 카페와 별반 가격차이가 나지 않으니, 그동안 스위스 물가에 치여 상처받은 마음 추슬러 차 마실 땐 겁내지 말고 당당하게 5성급 호텔 문을 두드려도 좋다. 쫄지 말자!
Jialu의 오너는 Jiayen이라는 베이징 녀자와 Lucas라는 스위스 남자 부부인데, 그들의 아들이 우리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데, 그래서는 아니고 진심으로 계급장 다 떼고 맛있어서 자주 간다. 거의 전 메뉴를 다 먹어봤는데 다 무난하니 맛있다. 베이징 덕은 우리 라헬 훼이보릿!
4. Banh Mi Pho Luzern
Furrengasse 15, Lucerne, Switzerland
https://www.facebook.com/banhmipho.lu
이곳은 꽤 최근에 발견한 곳으로, 베트남식 반미를 파는데 무엇보다도 바게트빵을 직접 만들어 구워서 오전에 가면 줄 세워 놓은 뽀얀 바게트 빵 반죽을 볼 수 있다. 나는 베트남을 안 가보았지만, 혹자는 베트남 현지에 비해 빵이 너무 부드럽다지만, 씹다가 턱관절에서 소리 나는 이곳의 바게트 샌드위치 먹다가 부들부들 밀가루반 공기반으로 빚어진 바게트가 내 입맛에는 맞다. 삼겹살을 넣은 반미가 우리 훼이보릿!
5. Song Pi Nong
Sternenpl. 6, 6004 Luzern
위의 2번 phanat thai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타이 음식점 Song Pi Nong. 혼자 후딱 점심 먹어야 할 때 Phanat Thai와 둘 중에 고민하다 어쩔 때는 이곳이, 어쩔 때는 Phanat Thai가 이기는데, 이곳에서는 언제나 Pad Thai를 시킨다. 눈치채셨겠지만, 전 늘 먹는 것 위주로 파기 때문에 아쉽게도 다른 메뉴는 기억이 많이 없는데 그만큼 팟타이가 맛있다는 것일지도. 팟타이를 시키면 주는 소스 3종 세트 중 식초 고추 절임을 곁들여서 먹으면 달고 짜고 매콤 새콤 한국인들이 원하는 맛이 다 있다! 점심시간이면 이 근처 은행들에서 슈트 차려입은 이들이 한 젓가락 하러 오는 곳. 나는 태국을 안 가보았지만(왜 이렇게 안 가본 곳이 많은 것이냐! ) 태국에 간다면 제일 먹어보고 싶은 메뉴.
6.Waipo
Zürichstrasse 28, 6004 Luzern
이쯤 되면 루체른은 아시아 음식 투어 하러 와야 하는 곳인가?! 6번째 식당도 아시아 음식점이라는 사실에 잠시 현타가 왔지만, 맛있는 걸 어쩌란 말이오. 서양 음식들 분발하시오!
여기는 생긴 지 1년 됐으려나? 나의 금요일 워킹 파트너 크리스티나가 추천해서 가본 후에 맛있어서 친한 사람들 다 데리고 갔던 요즘 꽂힌 중국 음식점이다. 공심채, 꿔바로우 맛있고, 다른 메뉴는 차차 더 먹어볼 예정. TMI 그러고 보니 이 집 딸도 우리 애들이랑 같은 학교인데, 루체른 중국 식당 연맹에서(그런 것 없음) 우리 동네가 유명한가 보오.
7.Grottino
Industriestrasse 7, 6005 Luzern
드디어 유러피언 식당! 이곳은 Trip advisor에 루체른 식당 치면 한동안 1위를 차지했던 곳으로(2024 현재 검색해 보니 11위임, 참고로 위의 Jialu가 10위) 이탈리안 가정식 스타일로 한 끼 푸짐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주말에는 예약이 무지 어려운 곳이다. 분위기도 편안한데 또 로맨틱해서 내가 지금 썸남과 데이트를 할 장소를 골라야 한다면, 무조건 이곳은 한번 찍고 갈 것이다! 나의 영원한 썸남 토마쓰와도 한 번씩 데이트하러 가는 곳이다. 저녁에는 메뉴가 없고 3 코쓰를 주는 대로 먹는 묻지 마 메뉴인데, 수프, 샐러드, 파스타, 고기 메인으로 이어지는 메뉴가 맛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음. 나는 이탈리안 할머니가 없지만 있었다면 이렇게 요리를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캔들 라이트에 반짝이는 액세서리들이 예뻐 뭐라도 주렁주렁 달고 가는 곳.
8.Manora Restaurant
Weggisgasse 5/5. OG, 6002 Luzern
https://www.manor.ch/de/u/manora
가성비라는 말 스위스에서는 적용되는 경우가 잘 없는데, 이곳은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곳임. 단, 분위기가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음. 오전에 가면 커피와 6가지 메뉴가 7.3프랑, 커피 한잔 가격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골라 먹는 재미도 있고, 일단은 가격이 착해서 스위스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득템 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 모시고 갔더니 매일 여기로 아침 먹으러 오자고 하심. ㅎㅎ
9. Asociación de Inválidos y Pensionistas Españoles de Lucerna
Güterstrasse 20
이곳은 아멜리 대부님이 소개한 곳으로, 아는 사람만 가는 간판도 없는 스페인 식당이다. 우리 부모님 내가 스위스 사는 10년 동안 스위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오셔서 맛있는 곳 많이 모셔갔는데, 그중에 거기 한번 더 가자. 하셨던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 간판도 웹사이트도 없는(위의 웹사이트는 본인들이 만든 것이 아닌 어느 날 누군가가 만들어 생겼다는 미스터리의 웹사이트) 스페인 아주머니가 현금만으로 장사하시는 곳인데, 나는 스페인 할머니가 없지만, ㅋㅋ 있었다면 이렇게 요리해주지 않았을까 싶은 가정식 음식점.
그동안 나와 친한 사람들 다 데려간, 새우 감바스의 감칠맛이 미친, 스페인 친구 크리스티나도 한 번씩 가서 먹는다는 최근 들어 제일 자주 간 음식점. 철을 잘 맞춰가면 스페인에서 아주머니가 공수해오신 정어리 구이도 주는데 그 맛이 마치 가을 전어, 넘나 맛있는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음.
화이트 와인 필수!
분위기는 굉장히 편안한 운동화 신고 가는 분위기이고 사람이 많을 때에는, 특히 스페인이 축구 경기라도 하는 날에는 스페니쉬 커뮤니티가 모여서 응원을 해 매우 시끌벅쩍하다.
이상, 우리가 10년째 꾸준히 가는 식당들을 되돌아보자니 그동안 참 많은 이들과 많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구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나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윤슐랭 맛집요정으로 통하는데, 앞으로도 더 열심히 먹고 마시며 맛있는 데를 뚫겠다는 공약을 끝으로 이 대장정을 마치려 한다. 반응 좋으면 루체른 스위스, 프렌치 식당도 몇 곳 풀어볼 터이니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