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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스 아주미 Mar 05. 2024

42% 일해요

42%만 일하는 나는 1주일 중 목요일과 금요일만 출근을 해서 월, 화, 수요일은 가정주부의 신분이다. 으잉? 그게 무슨 소리야, 42%?라고 생각할 거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스위스는 만약 full time job이 100%라면 그걸 쪼개서 자기가 얼마나 일하고 싶은지에 따라 20%, 30% 혹은 70%등등의 일을 구하는데, 보통은 직장을 구할 때 그 일이 몇%의 일인지 알고 시작하며, 일단 일을 구하고 나면 분위기 봐서 어느 정도 조정도 가능하다. 참 스위스답게 하는 일에 다르긴 하지만, 디테일하게 43% 74% 등등 언뜻 보면 오타인가? 싶은 퍼센티지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스위스에는 맞벌이라는 개념이 없고(보통은 엄마들도 다들 조금이라도 일하기 때문에), 서로

'넌 몇 프로 일해?' 하는 질문이 자주 오간다. 보통 여자들은 100% 일하던 사람도 자녀가 생기면 어느 정도 아이들이 클 때까지 20~40% 정도로 줄여서 일하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 정도 들어가면 다시 비중을 올려서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물론 일을 20%로 줄이면 그만큼 월급도 주는 건 당연한 이치. 돈도 좋지만 엄마가 필요한 어린 시절에 엄마가 집에 있어주자 하는 주의다. 꽤 훌륭하고 꽤 보수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 출신 스위스 아주머니(저요)의 월~수요일 삶은: 아침에 애들 학교 보내고 집 치우고, 운동하고 씻고 점심준비하면 12시경 애들이 점심 먹으러 집에 온다. 네, 제대로 읽으셨습니다. 애들이 점. 심. 먹. 으. 러. 집에 온다. 두둥!

처음에 스위스 와서 아이가 없던 학생시절, 11시 30분경부터 13시 30 즈음까지 길거리 등하교 하는 듯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은 참 학교도 일찍 끝나네.' 했었다. 그땐 내가 아이가 없었으니, 관심도 없었거니와 그냥 '길에 애들이 많이 있네' 했었는데, 그게 지금 보니 아이들의 점심시간으로 그 아이들은 집으로 엄마가 해 준 밥을 먹으러 가거나 돌아오는 것이었다.


네? 애들이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오다니요? 급식은요? 도시락은요?

대답은 그런 거 없음이다.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한 5년 전부터 Mittagstisch(직역하면 점심식탁, 점심식사 정도의 의미)라고 해서 엄마, 아빠가 일하는 집들은 학교에 딸려있는 부대시설을 이용, 신청할 수가 있는데 보통 스위스인이 아닌 부모들에게는 인기 폭발이고(그 좋은걸 왜 안 보내?), 대다수 스위스 가정들은 부모가 맞벌이 시에 하루는 할머니가 와서 밥 차려주고 가고, 하루는 이모, 삼촌, 사돈의 팔촌이라도 와서, 나머지 날들은 부모가 번갈아가면서 (주로 엄마가) 집에서 점심을 차려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스위스 아주미의 전형적인 하루를 살펴보면, 7시 30분쯤 애들과 바이바이 등교를 시킨 후에 집 치우고 간단한 집안일 후 운동하고 씻고 하다 보면 어느새 12시경 점심 먹으러 올 아이들 점심 준비하는 그런 식이다. 여느 나라와 같이 애들 없는 오전 시간에 차 마시러 만나는 어머님들로 루체른 카페가 바글바글한데, 다들 11시경 애데렐라 혹은 밥데렐라마냥 밥 하러들 집에 간다.

우리 딸들의 등하굣길, 저 길따라 쭉 걸어가면 학교가 있다.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집에 오는 동네아이들



어떻게 생각하면 자기주장 강한 서양 사람들이 반발을 안 하네? 싶은데(여성의 인권 운운하기에는 좀 오버스럽지만 이런 학교 시스템이 기혼 여성의 사회 진출에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하다), 일단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스위스는 여성의 선거권이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부여된 보수적인 나라이다. 마지막까지 버티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선거권이 부여된 주도 있으니(헉!) 우리나라에서 88 올림픽 다 치르고 서태지 오빠가 난 알아요를 외칠 때가 되어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100% 주어진 것이다.

혹시라도 스위스 이민을 생각하는 어머님들 싸던 짐 얼른 푸시길.


얘기가 길어졌는데(항상 이 점심 관련 얘기만 나오면 얘기가 길어진다. 우리 엄마들은 이에 관해 할 말이 많다!!!) 그래서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오면, 일 안 나가는 뭘, 화, 수요일에는 아이들이 점심 먹으러 집에 온다. 점심 먹여 오후반이 남아있는 큰애를 다시 학교에 보내고 작은 애랑 간단히 장을 보거나 이웃들과 만나서 차 한잔 하는 게 오후 일정이다. 이렇게 하루 일과가 학교 시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니 엄마들이 일 스케줄을 여기 짜 맞추기가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2~30% (일주일에 하루 이틀) 일하면서 그날만큼은 조부모님 학교급식에 도움을 청하고 온전히 일하는 시간을 버는 시스템이 생겨난 듯하다.


말씀드리는 순간 시계를 보니 슬슬 점심 시작할 시간이네. 그럼 난 바빠서 이만 뿅.

점심 준비해야 하는 이유 구구절절 이리 길어질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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