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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스 아주미 Mar 17. 2024

우리 집에 놀러 와

스위스에서 손님초대

스위스는 친한 지인들끼리 만날 때 주로 집으로 초대를 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초대하는 게 아니라(그럴 리가요) 친해졌다 생각되면 마지막 관문 정도로 생각되는 저녁 식사 초대로 이어지는데 스위스 사람이 집으로 저녁 초대를 했다면 당신을 꽤 가까운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앞서 마지막 관문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스위스인들이 유난히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워낙 수줍음이 많은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금방 금방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걸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미국과는 달리 사회 분위기도 좀 점잖고 모르는 이와 거리를 두고 격식을 차리는 분위기다. 유럽 내에서도 그런 이미지로 굳어져서 우스갯소리로 스위스인 마음 앞에는 상어가 보초를 서고 있다는 비디오 클립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뚫고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 관문을 통과하고(상어를 물리치고 ㅋㅋ) 스위스인 마음에 들어가 저녁 초대를 받았다면 그다음부터는 친해지기 어렵지 않다.


우리 집도 주말이면 친한 지인들, 동료들, 또 이제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니 학교 친구들의 가족, 등등 초대도 자주 하고 초대도 자주 받는 편인데, 저녁 초대라는 게 초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준비할 것도 많고, 손이 많이 가는 이벤트라 누구에게 초대를 받았다면 꼭 해가 바뀌기 전에 보답을 하는 게 좋다. 안 그랬다가는 양아취로 소문나기 딱 좋으니 이건 동서고금 막론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의 예의 아닐까? 말씀드리는 순간, 초대받아 가서 잘 얻어먹고 돌아와서는 아직 초대하지 못한 몇 분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하하^^;


저녁 초대를 받으면, 보통은 5~6시쯤 모여서 식전주 한잔으로 시작하는데, 이때 오라고 한 시간보다 일찍 나타나는 건 무개념 행동이다. 호스트가 마지막까지 준비에 바쁠 테니 숨 돌릴 시간은 주자는 의미로 10~15분쯤 늦게 도착하는 게 예의다. 그렇다고 그 밖의 다른 약속에 10~15분 늦게 나타나면 스위스 사회에서 왕따 되기 십상이니 아무 데나 적용하면 안 됨. 이건 철저히 누구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의 경우이고 그 외에는 약속 시간 무섭게 잘 지키는 시계의 나라 스위스이다.


홈파티가 익숙한 문화이니, 내가 아는 이 동네 아주미들은 집 꾸미는 게 일이다.  Fasnacht 축제-부활절-할로윈-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한 해의 행사들이 다가오면 자본주의의 노예들 심쿵하게 쇼핑몰, 백화점의 장식이 달라져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 아주미들은 또 그에 부흥하여 스위스 경제를 살린다. 아름다운 전개이다.

초여름 손님초대할때쯤 되면 항상 심는 수국과 크리스마스 장식, 빠질 수 없는 짠샷
지난 할로윈 때 큰애 학교 친구들 초대해서, 나중엔 부모들까지 합류했었던 파티

그렇게 이번 주말에는 우리도 얼마 전에 알게 된 가족을 집으로 초대했다. 이 가족은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알게 된 가족인데, 동네에서 안면은 있어서 인사는 하는 사이였으나 대화를 해 본 적은 없었었다. 그날 파티에서 얘기를 해보니, '어? 내 스타일인데?' 얘기도 술술 잘 풀리고, 딱 봐도 나랑 결이 맞는 사람이다.

그 친구도 그걸 느꼈는지 집에 가려는데, '언제 차 한잔해. 번호 좀 줄래?'하고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번호를 교환하고 몇 달이 지나 마주쳤을 때 (성질 급한 사람 꼬르륵 넘어간다는 숨 막히게 느린 전개..) 그 친구가 먼저 전화번호 물어봤으니, 이번에는 내 쪽에서 손을 내밀어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왜 그렇지 않은가. 남녀 사이에도 상대방이 먼저 호감 표현을 하면, 본인도 이 만남을 이어갈 의향이 있다면 어느 정도 호감 표시를 해주는 게 인지상정, 썸의 정석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우리 또 요런 거 잘하쥬.

아오, 그나저나 요즘 썸탈 일이 없다 보니, 동네 아주미랑 밀당할 일이냐 이게!! (썸 타고 싶다는 얘기 아님, 절대 아님.. 남편 한글 배우지 마!!)


이렇게 아직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서는 저녁 식사보다는 4시쯤 zvieri라고 하는 이곳의 정식 간식 시간에 함께 티타임을 가지거나, 그 시간에 Apero라 하는 저녁 식사 전 식전주를 한잔 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래서 우리는 이 친구들을 와인 한잔 하자고 오후에 초대했다.

이럴 때 보통은 간단한 치즈 안주나 햄이나 넛 종류로 가벼운 안주를 내놓는 편인데 나는 그래도 Miss Korea이니 뭔가 한국적인 안주를 핑거푸드로 하나정도는 만들어 대접한다.


동료네 집에 초대받아 같이 요리하는중
코리안 바베큐는 항상 인기메뉴이다.

집청소, 음식준비와 더불어 홈파티 전에 한 번쯤 생각하는 건 대화주제이다. 여러 사람이 만나 한 자리에 앉으면 한두 사람이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아(주로 연장자 혹은 분위기 메이커) 파티를 이끌어 가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듣거나 적절한 리액션으로 거드는 정도인 게 내가 대학을 다닌 2001~2004년 한국의 모임문화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끔씩 부모님의 친구분들을 초대해서 한상 떡 벌어지게 차리고는 한국식 디너파티를 했었는데 그때도 주도권을 잡은 누군가 외에 다른 이들이 그들끼리의 대화를 시작하면, '지방 방송을 끄네마네, 얘기에 집중을 안 하네' 하는 장난 섞인 코멘트들이 오가던 게 생각난다.

 

지방방송하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전공한 나는 우리 집에서 손님 초대를 할 때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항상 불려 가는 기쁨조 같은 존재였다. 언니랑 둘이서 방에서 만화책 보고 놀다가 거실에서 "윤xx! 한곡 하자!"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면 우리 언니는  "야, 너 오래. 하고 와." 했고, 나는 행사 뛰는 가수의 심정으로 '아놔, 귀찮게' 하면서도 어차피 하게 될 것 빨리 끝내자 하는 생각으로 팬들이 기다리는 거실로 나가곤 했었다.

그때마다 사람 연주 시켜놓고 수군수군 그야말로 난 켠 적이 없는 지방방송이 난무하는 것은 뭐 익숙한 일이었고, 나 클래식 음악하는 여자라 그 당시 연습 중인 바하나 파가니니 카프리스 등등을 연주하면 연주가 끝나자마자 신청곡이 쇄도하는데, 노사연의 만남, 애모, 칠갑산, 저 푸른 초원 위에 뭐 이런 가사인 신청곡도 있었던 것 같은데... 심지어 멜로디 모른다고 하면 우리 아부지, 그걸 왜 모르냐며 (내가 왜 알아야 하냐고요?) 멜로디를 즉석에서 불러주시기도 하셨음 ㅋㅋㅋ 아빠가 젤 나빠!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나와 같은 세대 친구들이 잘 모르는 그런 노래들의 멜로디를 꿰고 있었고, 지금도 버튼만 누르면 완곡할 자신 있다.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우노!  


그런 어린 시절 추억들이 40이 넘은 지금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봐왔던 아줌마, 아저씨들을 기쁘게 해 드렸다는 보람 플러쓰, 그 아저씨 아줌마들이 초대가수(저요) 섭섭지 않게 가실 때 손에 만 원짜리를 두둑이 쥐어주고 가셨기 때문 정도로 정리하자. 나도 뭐, 괜찮은 거래였다.

잠시 얘기가 산으로 갔는데, 하고 싶었던 말은 유럽의 파티문화는 이 사람이랑 얘기하다 저 사람이랑 얘기하다 2-3명씩 소규모로 짝지어 한참을 얘기하다, 스탠딩 파티일 경우에는 또 다른 사람과 새로운 대화가 시작되기도 한다는 얘기이다. 이때 대화의 상대가 바뀔 때마다 머릿속에서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샅샅이 뒤져 어떠한 공통주제라도 찾아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어색하지 않기에 나는 어떤 모임에 가기 전 그곳에 있을 사람들의 근황이 어땠었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고 가는 편이다. 물론, 이도저도 할 얘기가 없을 때는 제일 만만한 주제, '그래서, 여름휴가 이번에 어디로 가?'로 접근하면 유러피언들 신나서 휴가 계획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해 줄 것이다.


유럽 홈파티에서는 호스트가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은 짧은 건배사를 하고 축배를 들기 전에 술병에 손을 대서도, 술잔에 입을 대서도 안된다. 물론, 정말 편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서로 따라주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어 만난 관계에서는 철저히 지켜지는 편이다.

디너파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잔이 채워지면 이제부터 좀 번거로워지는데, 다 같이 짠!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과 1대 1로 서로 눈을 보며(이게 중요함, 밑줄 쫙!) 잔을 들어 올리며 건배를 한다. 눈을 안 마주치면 7년 동안 (19금적 의미로다) 재수가 없다는 미신이 있으니 꼭 눈을 봐야 한다. 이때 눈이 마주쳤을 때 모나리자 같은 엷은 미소를 띠며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와인 한잔 하는데 참 관문이 길다. 목말라서 현기증 나요!


이번에 느낀 건데, 호스트로서의 최고의 덕목을 꼽으라면.. 음.. 연기력? ^^;

그전에 제아무리 헉헉거리며 '너네 방 꼴이 이게 뭐야! ' '거실 이제 어지르지마! ' 등등 청소하고 난리 부르스를 치며 음식 준비를 하며 남편을 잡았을지언정(남편 미안) 손님이 오면, 아까 그 모나리자 엷은 미소를 다시 지으며, '우리 항상 이러고 살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는 분위기를 풍겨줘야 한다. 호스트 경지의 최고봉이다.


여기에서 이 아주미의 20년 유럽 생활 짬밥으로 게스트로서의 팁 하나 주자면, 와인 마실 때 입술 닿은 곳을 기억해 뒀다 다시 한 모금 마실 때 같은 곳에 입술을 갖다 대면서 마시는 것이다. 그러면 보기 싫은 입술자국이 와인잔 전체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당연한 소리 같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마시지 않는 사람도 많다. 자리를 떠날 때 비교적 깔끔한 와인잔을 뒤로하는 당신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오, 뭐 좀 아는데?' 하는 인상을 줄 것이다. 배운 건 당장 써먹고 우아한 신여성, 신남성으로 거듭나자!


우리 아이들도 엄마를 닮아서 집에 친구 초대하는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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