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라헬이 하교하자마자 뭔가 신나서 난리부르스다.
"엄마, 엄마! 나 학교 가져가야 할 껌 사야 돼!"
"응? 무슨 껌?"
얘기를 들어보니 어디선가 껌을 씹으며 공부하면 집중이 잘된다는 연구를 읽은 유나 담임 선생님이 시험 볼 때에 한해서 아이들에게 껌을 씹게 허용, 시범적으로 시행한단다.
........... 응? ㅋㅋㅋㅋㅋㅋㅋㅋ
스위스에서 자라지 않은 내가 두 아이를 스위스 공립학교에 보내면서 으잉?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오늘! 우리 때야(라떼는) 교실에서 껌 씹었다가는 분필 정도 날아와줘야 익숙한 시나리오인데, 참 격세지감이로소이다. 스위스 엄마 아빠들도 신나서 다들 우리 때는 그런 거 없었지, 하는 거 보니 여기도 세대별로 느껴지는 교육의 방식, 또는 철학이 다른가보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라헬에게 자동차에 놔두는 용량 큰 껌을 한통 사줬고, 시험치는날=껌 좀 씹는 날로 입력된지라 시험 보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라헬이 (혹시 이게 선생님의 큰 그림일지도..ㅋㅋㅋ) 학교를 다녀온 후,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시험 볼 때 껌 씹었어?"
라헬 말로는 아이들이 껌 씹느라 들떠서 뭔가 집중도 안되고 어수선했단다. 9살짜리가 어수선했다고 설명하는 거 보면 정말 엉망진창이었던 모양..
그래도 친구들이 익숙해지면 점점 집중 잘 될 거란 아이의 긍정적인 반응이 아무래도 선생님의 철학이 반영된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새로운 시도를 겁내지 않고 해 보는 선생님도, 잘 따라주는 아이들도 참 믿음직하다. 스위스 학교의 모습이다.
며칠 지나서 본 아이의 껌통이 텅 비어있어(!) 얘야, 이게 무슨 일이니 물어보니 쉬는 시간에 애들이랑 서로 다른 맛 껌 바꿔가면서 놀다가 다 씹었단다. 헐! 그 많은 걸!
3학년 짜리 애들에게 껌을 한 통 맡기는 건 마치 신동엽에게 소주 한 병을 맡기는 것과 같은 이치였던 것인가!
라헬아, 내일 껌 사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