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위스 아주미 Mar 24. 2024

엄마는 아르바이트 중

띠따띠따 갔다 올게!

우리 애들 애기 때 일하러 나갈 때면 "엄마 띠따띠따 하고 올게."하고 나갔었다. 애들 앞에서 연습을 해대니 바이올린 소리가 띠따띠따 이렇게 들렸는지 라헬이 만들어낸 말이다.

목요일 오후 점심시간 후 한 시간은 내가 일하는 곳의 동네 커피숖에서 커피 한잔하며 글을 쓰는 나만의 시간. 이곳은 루체른 주에 있는 도시로 우리 집에서는 35km 떨어진, 기차로는 30분쯤 걸리는 곳이다. 나는 벌써 11년째 이 도시의 Kantonschule(우리식으로는 중, 고등학교)에서 목요일과 금요일에 바이올린 실기강사로 일하고 있다. 나라가 주는 돈 벌고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인 셈.

스위스 중고등학교에서는 4학년(우리나라로 치면 고1)이 되면 Schwerpunktfach이라고, 직역하면 중점을 두는 과목, 우리나라 말로 하면 전공, 특기쯤 되는 것을 정해야 한다. 이때쯤 되면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지 윤곽이 잡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보통은 자기 전공분야와 관련된 과목을 택한다. 여기서 내가 등장하는데, 예고가 따로 없이 학교에 소속된 실기강사가 대학에 갈 때까지 실기레슨과 6학년 때 제출하는 Matura Arbeit(논문)을 지도하는데 그게 바로 제가 하는 일입니다.

이게 마지막 졸업총점에 꽤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교사들은 점수 주는 법과 논문지도 방식을 따로 교육받는다. 스위스답게 6점 만점에 점수가 4.9점, 5.1점 소수점까지 등장해 가며 참 디테일하다. (두유노 수우미양가?)


10여 년 전에 새내기 강사시절, 점수 줄 줄 몰라서 '옛다, 기분이다, 6점!' (은근 기분파임) 줬었는데 이제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바보스러운 일이었는지 10년 차정도 되니 이제 와서 부끄럽다(최대수혜자 그때 그 학생). 요즘엔 고인 물 스타일로 학생들 vorspiel(실기시험)에 들어가서 연주가 끝난 후 심사위원들이 전공실기 교사를 인터뷰하는데 어버버하는 신입교사가 있으면 '아, 라떼는 말이야~' 라며 아무도 묻지 않은 충고를 날려주는 노련함이 생겼다.


유학시절 딸 수 있는 학위는 다 따서 심심한데 따볼까 했던 교직 디플롬을 가장 쏠쏠하게 사용 중이니, 인생 참 모르는 거다. 하긴 독일에서 공부할 때 친했던 무리 중에 유럽 남고 싶다고 노래노래하던 친구들은 한국으로, 일본으로 다들 돌아가서 교수님 되고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 잘들 살고 있고, 유럽에서 절. 대.로. 살지 않겠다던, 무. 조. 건. 한국 돌아가겠다던, 음악 하는 남자 극. 혐. 이라던 내가 스위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뼛속까지 예술가 우리 라헬아부지랑 살고 있으니, 앞으로는 절대로 절대라는 말은 안 쓰는 걸로. ㅎㅎ

스위스 Gymnasium 안과밖
내 레슨실 풍경

스위스는 클래식 음악인들의 천국이다. 2011년 스위스로 공부(를 빙자한 연애질) 하러 올 때까지 나는 유학 중에 독일 남서부의 좋은 극장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일과 학업을 병행했었다. 독일 극장은 등급이 있는데 내가 있었던 오케스트라는 A ausgezeichnet으로 극장의 질도 질이지만 단원들의 임금도 독일 내에서는 상위인 곳이었다(독일은 아직도 옛날 서독이었던 남서부가 임금도, 생활수준도 높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일해서 받던 월급을 스위스에 와서 일을 시작한 첫 달 딱 3.5배를 받았다.  

그땐 몰랐지. 이 놈의 높은 물가를. 그래도 어차피 월급이라는 게 잠시 통장에 들어왔다 팥빙수 얼음마냥 스르륵 녹아내리는 것이라면 이왕이면 눈꽃빙수, 아니 눈꽃머니 많이 받아서 스르륵 녹아내리는 것을 택하겠다!

이러니 유럽 전역, 미주, 아시아에서까지 음악인들이 스위스로 와서 활동하는 건 당연한 자본주의의 이치이고, 제아무리 외국인에게 일자리 주기를 꺼려하는 스위스라도 실력에서 우위 한 외국인들에게 일찌감치 항복, 문화예술계에서는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보다 더 엄격하게 실력위주로 일자리를 분배하다 보니 스위스 클래식 음악계는 어딜 가든 외국인이 대다수이고 대세이다.

웃기는 게, 연주자 명단이 적혀있는 프로그램을 받으면, 스위스이름들 Egli, Emmenegger 뭐 이래야 하는데 Parella, Michalec, Menendez 등등 누가 봐도 외국인인 이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쯤에서 스위스 뮤지션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하자면,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음악을 스위스인들은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접근해 음악적으로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즉흥적으로 느끼고 반응해야 하는 실내악 리허설 시에도 스위스인들 민족성대로 뭔가를 굉장히 분석하고 토론하려 해서 "됐고, 그냥 한 번 더 해보자."로 맞서는 일이 많았었다. 덕분에 외국인들의 설 자리가 생겼으니 고맙다고 하고 싶은데 멕이는 건가?ㅎㅎ

오늘처럼 정오부터 저녁 8시까지 레슨을 하는 날에는 하루종일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말도 많이 하다 보니 저녁때쯤 되어서는 진도 빠지고 내가 소모되는 기분이 든다. 한 시간에 한 명씩 성격도 실력도 스타일도 다른 학생들을 1대 1로 상대하다 보니 머릿속에 학생들에게서 받은 감상들이 많이 남는데 이렇게 머릿속 생각을 종이 위에 쏟아내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는 여기서 Frau Yoon. 학생들에게 있어서 때로는 엄하고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모르는 독일어 단어도 물어보는(얘야, 이게 뭔 말이니) 그런 선생님이다.

10여 년 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학생들이랑 친구같이 지내기도 했었는데 40대가 되어서부터는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아, 이 드라마 참 재밌었었는데) 때론 배꼽 내놓고 다니는 아이들한테, "오마이 얘야, 벌거벗고 다니면 우짜쓰까나."라고 잔소리도 하는 꼰대 쌤이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룹레슨을 하는 중에 서로 얼굴을 모르는 동료교사나 학교직원이 레슨실로 볼일이 있어 잠시 들렀을 때, '이 무리 중에 대장(선생)은 누구인가'헷갈리는 듯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었는데 요즘에는 빼박 나에게로 와서 얘기를 하는 거보니 '동양인은 어려 보인다'는 가설(?) 팩트(?)도 딱 40 까지인가봉가.  

같은 공간 다른 음악

악기의 특성일지도 모르겠는데,

여기서 잠깐, 바이올린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착실하고, 꼼꼼하고, 예민하고, 예쁘고(ㅎㅎ 이건 내 마음대로 쓰윽 추가) 아무튼 그런 특징들이 발견되는데, 진짜로 대부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성격이 그렇고 악기 닮아간다고 바이올린을 하다 보면 그런 성격이 되어가는 것도 있다.

그래서인지 내 학생들은 하나같이 다 착실하고 똘똘하고 문제해결 능력도 다분한 기특한 아이들이다. 11년 동안 이상한 부모는 있었어도 (여기도 갑질 부모 있긴 있다. 윗선으로 바로 보내기에 내가 상대할 필요가 없을 뿐) 이상한 학생은 없다. 아무리 덩치가 나보다 크고 어른인 척 잘난 척해봤자 청소년은 아직 애다. (뽀양 보고 있나?)

매주 보는, 진심을 다 해 연습을 해 오는 내 학생들에게 나도 진심된 가르침을 주는 참된 스승이 되고 싶다…

라고 항상 퇴근길에 다짐하지만 출근길에는 나도 모르게  '아, 집에 가고 싶다.'라고 느끼는 건 모든 직장인들의 공통적인 생각인거쥬? 아오, 출근길 다르고 퇴근길 다르다!


그나저나, 청소년은 우리 언니네집 로봇 청소기 이름인데 뜬금없이 "얘야, 갱끼데쓰까?!"를 외쳐보면서 난 바빠서 이만.

이전 07화 수업시간에 껌 씹는 게 어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