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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스 아주미 Mar 31. 2024

우리 애들 5개 국어 하는 썰 푼다

자유부인 이틀째. 첫날은 옆동네에서 작은 연주가 있어 일하러 다녀오고, 둘째 날인 오늘. 아침운동도 하고 애정하는 큰애의 대모님과 만나 둘이서 4인분 시켜 맛있는 점심과 그동안 밀린 수다를 업데이트해 주고 이제 집에 들어와 씻고 안경 쓰고 펜을 들었다.

왜 자유부인이냐고? 부활절 방학을 맞이하여 남편이 애들을 데리고 폴란드에 갔기 때문. 유럽에서는큰 절기인 부활절에 적적하신 시부모님 뵈러 겸둥이들과 간 것이다.

내 남편은 폴란드인이다. 지금은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여 서류상 스위스인으로 신분세탁(?)을 했지만 결혼했을 때만 해도 피가 뜨거운 뼛속까지 폴란드인이었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스위스 국적을 땄기에 가끔 농담으로 내 전남친은 폴란드인이었고, 현남편은 스위스인이라며 화려한 과거가 있는 여자 코스프레를 하기도 한다. 자연히 우리 아이들은 한국, 스위스, 폴란드 국적 3개를 가졌다. 나라마다 허용하는 국적의 개수가 다른데 우리가 사는 스위스는 3개까지 허용하니 여권 3개를 모두 소지 중이다. 집에서 아빠와는 폴란드어를 쓰는데, 아무래도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독일어가 주인 아이들에게 이번처럼 며칠간의 폴란드 할머니, 할아버지댁 방문은 훌륭한 어학연수가 된다.

라헬이 3살쯤 되었을 때 폴란드 방문 시에 남편이 갑작스러운 일정이 생겨 라헬과 나만 택시로 이동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택시 기사가 나에게 뭐라뭐라 하는데 도저히 못 알아듣겠는 거다.

옆에 라헬에게 "아저씨가 뭐라 그랬어?" 물었더니 라헬이 "아기 의자 갖다 준대."라고 했었는데 진짜로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카시트를 꺼내오는 게 아닌가! 그때 정말 신기하고 기특했었다.

폴란드어가 워낙 문법적으로 어려워 아이들이 버거워하기에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은 남편은 요즘 아이들과 독일어로 대화하는 걸로 노선을 갈아탄 것 같은데 난 반댈세! 언어가 얼마나 재산이 되는지 나는 외국에 살면서 뼈저리게 느꼈기에 아빠와는 폴란드어로 대화를 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남편에게 잔소리 폭탄도 많이 던진다. "폴란드어로 대답하라고!"

폴란드어는 슬라브어파로 슬라빅 언어는 한 개만 해놓으면 다른 언어는 대충 알아듣고 소통이 가능하다. 폴란드어 하나로 러시아어, 체코어, 크로아티아어 등등 습득이 용이하다. 내가 항상 신기해하는 게, 우리 동네 테니스 클럽 코치가 체코인인데 그는 자기 나라 말인 체코어로 우리 남편은 폴란드어로 대답해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거다!

마치 한국인과 일본인 만나,

"잘 지내니?"

"하이! 갱끼데쓰!"

"그래서, 그때 우리나라 왜 침략한 거야?"

"스고이 고멘나사이! 스미마셍!"

"됐고, 엎드려뻗쳐."

뭐,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격이다. 상황극은 자고로 내 위주로.ㅎㅎ

지난여름 친정 부모님과 폴란드 방문시에 거닌 Sopot의 해변가                                                   어머님과 3세 라헬
할머니 할아버지와 3살 라헬                                                                       친정부모님과 폴란드 요리

우리 시부모님은 법 없이도 사실 선량하신 분들로 폴란드 공산시절에 나라에서 스웨덴, 스페인 등지로 파견을 보내줄 만큼 실력 있으신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셨다. 시아버님은 문학작가가 되고 싶으셨는데 집안의 반대로 '돈 되는 직업'을 택하셨으나 평생 후회의 나날들을 사시다 70세가 넘어서 시집도 출간하시고 대학 강단에도 서시는, 인생의 어두운 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시는 시니컬한 로맨티시스트이시다.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으신데 젊은 시절부터 문인, 화가 등과 어울리셔서 시댁의 창고에는 폴란드 20세기 현대 미술작품과 문학작품이 넘쳐난다. 결혼한 지 5년 정도 되어 새집으로 이사할 때 아버님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화가 Wladyslaw Jackiewicz의 그림 두 점을 보여주시면서, "이중에 하나 선물할게. 어느 거 할지 골라봐."라고 하셨는데 그걸 들은 한국인 며느리(저요)는 "아버님, 고르기 힘드니 둘 다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한다. ㅎㅎ

지금도 그 그림 두 점은 내가 굉장히 아끼는 그림으로 우리 집 거실과 부엌벽에 걸려있다.


아버님, 어머님은 냉전시대에 공산정권과 대립하여 사회주의 체제전환을 주도한 단체에도 가담하셨는데, 우리 남편 어릴 적, 당국에 쫓기는 동료를 집 카펫에 둘둘 말아 숨겨 준 영화 같은 일도 있었다 한다.

가히 먼 나라 이웃나라, 집구석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그다니스크는 가자미 맛집이다!

우리 어머님은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신문을 다 읽으시고 스크랩해서 아들,며느리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시는(대답 없는 아들, 며느리여!)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구파로, 크리스마스 때면 요따만하고 조따만한 아기자기한 선물들을 일일이 포장하셔서 보내주시는 따뜻한 분이시다.

처음 결혼해서 어르신들은 '머니머니해도 머니'라는 생각에 뵐 때마다 선물대신 용돈을 드렸는데, 폴란드는 웬만해선 서로 현금을 주고받는 문화가 없기에 어머님이 어색하신 듯, '얘가 나한테 왜 이러지.' 난감한 표정이셨다. 그랬던 어머님이 결혼 11년간 만날 때마다 꾸준히 돈봉투를 드렸더니 이제는 고맙다며(우리 어머님이 변했어요) 자본주의 미소를 날려주신다.

작년 여름에 친정 부모님과 다 같이 폴란드를 방문했었다. 내 사위의 집은 어디인가 스타일로 남편 7살 때 혼자 기차 타고 다녔던 학교, 시내의 맛집, 아까 그 화가 Wladyslaw Jackiewicz 생전에 살던 집.. 한국 결혼식 이후 딱 11년 만에 폴란드에서 재회하신 양가 부모님들을 모시고 유나, 수아와 함께 거닌 그다니스크의 구시가지에서 마음이 참 뭉클했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은 폴란드에서는 폴란드어, 한국에서는 한국어, 학교에서는 독일어로 공부하고 친구들과는 스위스 독일어로 대화한다(스위스 독일어는 스위스에서 사용되는 독일어의 방언으로, 스위스 공용어 중의 하나인 스위스 표준 독일어와는 다른 언어이다).

하나 남은 언어는 영어로, 나와 남편이 대화하는 언어이다. 우리 부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영어로 대화하는데, 그건 어렸을 때 미국에서 자란 영향으로 아직도 영어가 독일어보다 자연스러운 나의 편의를 위해서이다.

오늘 만난 친구에게도 말했듯이, 독일어권 나라에 20년 넘게 살았어도 영어 하는 이와는 친구가 되고, 독일어 하는 이와는 지인쯤에서 머무른다. 그만큼 어릴 때 배우는 언어가 중요하다! 지금 당장 영어 유치원 등록하자!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들은 탓에 우리 아이들은 영어를 곧잘 알아듣는데, 점점 우리끼리 하는 얘기를 못 알아듣는 게 답답했던지 어느 날 라헬이 부탁했다.

"엄마, 나 앵글리쉬로도 얘기 배우고 싶으니까 나한테 앵글리쉬로 해줘."

한국말이 서툴러 딱 요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한국어로, 밖에 나가면 영어로, 집에 독일어 하는 손님이 왔을 때는 독일어로 강제 이중, 삼중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벌칙아님).

라헬 돌잔치 준비                                                                                   


한국 방문시 했던 부산여행

우리 집 저녁 식사자리에서는 5개 국어가 난무하는 것은 당연지사, 심지어 가끔 한 문장 안에 여러 언어가 섞여있는, 예를 들면:

"엄마 is going to 혼내  you." 식의 어릴 적 내가 섞은 명언으로 우리 애들도 우리 가족만 알아듣는 이런 흡사 외계어를 쏟아내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친정 오마니는 우리 집에 오면 제일 많이 하시는 말씀이,

"뭐? 뭐라니? 머라카노!!!!"이다.

애들이 할머니한테는 한국말로 한다고 하는데, 한국말이 한국말로 안 들리는 우리 집의 매직이다.

정체성의 혼란? 그런 걱정은 해 본 적 없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도 스위스도,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도 친근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큰 세상이 고향인 흔한 한국인, 스위스인, 폴란드인일뿐이다.

"Papi, Gdzie jest mój 난닝구?!"

           (where is my)

스위스에서는 스위스인으로 자라는 우리 아이들
흔한 스위스 뒷동산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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