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리카 Dec 18. 2024

20프랑이면 와인을 끝도 없이 마실 수 있어요

유럽 렌터카 여행 15 - 5일 차 11월 2일 ②

  레만 호수의 위쪽, 라코트 포도밭 지역과 쥐라 산맥 사이에 위치한 도시 생투앙은 2020년 기준 인구가 460명 밖에 되지 않는 곳이다. 어쩌다 우리 가족은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그건 우연히 여행을 위한 조사를 하던 중 발견한 한 리플릿에서 시작되었다. 


  https://caveau-luins-vinzel.ch/evenements/le-bourru/


  지하실 투어라 불리는 이 와인축제는 매년 11월 첫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며 20프랑에 시음용 잔을 구입하면 Begnins, Luins, Vinzel 및 Bursins 사이에 있는 약 20개의 와인생산자의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으며 케이터링도 있고 음악공연도 감상할 수 있는 축제이다. 셀러에서 셀러로 돌아다니며 현재 발효 중인 새 와인인 "부루(Bourru)"를 마셔볼 수 있는데 이 부루 와인은 알코올 함량이 낮고 달콤한 와인이라고 한다. 


  멋진 아침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 들러 든든히 밥을 먹고 막 출발하려던 참에 호스트 부부를 만났다. 푸근한 인상의 아버님과 따스한 미소를 가진 어머님 그리고 귀여운 까만 강아지 유리까지 ^^ 우리가 가는 와인 축제 리플릿을 보여드리니 이런 축제가 있는 줄 몰랐다며 아주 흥미로워하셨다. 아버님은 강아지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이 유리에게 간식을 줄 수 있게 얼른 간식을 가져와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셨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런 작은 친절이 묻어나는 많은 일들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자, 이제 와이너리 투어를 떠나보자!

  행사장 입구에 도착하니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모두들 앞으로 끝도 없이 마시게 될 와인에 들떠 행복한 표정으로 목에다 시음용 잔을 넣는 주머니를 걸고 웃고 있었다. 

목에 걸고 있는 작은 와인색 주머니가 시음용 잔을 넣어놓는 용도이다 ㅎㅎ

  와이너리 투어 지도를 손에 들고 번호를 따라 가까운 곳은 걷고 좀 먼 곳은 꼬마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고 와이너리에서 준비한 리스트 중 원하는 와인을 요청하면 잔에 따라준다. 

와인 저장고와 샤슬라 포도  

  모든 와이너리에서 공통적으로 제공했던 와인은 샤슬라(chasselas)로 스위스에서 널리 재배하는 와인 포도 품종이다. 스위스 와인은 거의 국내에서 대부분 소비되기 때문에 수출되는 양이 매우 적다고 하니 이곳에 오지 않으면 이 샤슬라 와인을 어찌 마셔보겠는가. 스위스의 대표음식인 라클렛이나 퐁듀와 아주 잘 어울리는 섬세하고 상쾌한 맛의 와인으로 제조 기술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벼운 바디에 적당한 산도를 가지며 청사과, 감귤, 흰 꽃의 노트가 포함된다고 한다. 

라클렛

  중간중간 케이터링이 있고 음악공연도 볼 수 있고 축제 참여자들과 함께 온 반려견들이 많이 있어서 아이들은 엄마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도 강아지들이랑 노느라 지루해하지 않았다. 나도 운전을 해야 하니 와인을 맛보지는 못했지만 와인저장고를 구경하고 말라코프, 라클렛, 호박수프 이것저것 먹으며 아름다운 포도밭을 바라보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외치며 혼자 즐기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남편을 달랬다. ㅎㅎ

알펜호른 연주도 감상할 수 있었다

  야심 차게 모든 와이너리를 방문하겠다는 계획은 대략 12~3번째쯤에서 무너졌다. 알코올 도수가 낮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했지만 홀짝홀짝 한잔, 두 잔 받아마신 와인으로 취기가 오른 남편은 이제 그만을 외쳤고 끝도 없이 마실 수 있지만 ㅎㅎ 이 정도에서 접기로 하기로 하고 예쁘게 함께해 준 아이들을 위해 레만 호숫가에 위치한 놀이터로 향했다. 


  https://maps.app.goo.gl/yfMUh8vXNsP3HdqAA


  해가 조금씩 내려앉는 시간, 아이들은 남은 에너지를 놀이터에서 사용하고 남편과 나는 조용히 호숫가를 바라보며 앉았다. 장식이 적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고성을 뒤에 두고 앞으로 바다와 같이 넓은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있자니 여유롭고 행복하면서 동시에 하루를 마치는 기분 좋은 피곤함이 느껴졌다. 이제, 집으로 가자. 아쉽지만 사랑스러운 생투앙 숙소에서의 둘째 날이자 마지막 밤이다.

홀르 성과 레만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