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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 Jun 22. 2024

내 아이의 첫 상실

곤충을 키워도 뭘 좀 알고 키워야지

우리 집 둘째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7살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요 녀석이 근 1-2년 동안의 모든 호기심을 곤충에 집중하고 있다. 틈만 나면 책을 보고 유튜브에서 곤충에 관련된 영상을 찾는다. 봤던 책을 또 보고 봤던 영상을 또 본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깨알 같은 지식들을 '자기 자랑'에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몰랐던 곤충에 대해서 새로이 알게 되면 쪼르르 달려와서,

"엄마(아빠), 혹시 수마트라 장수풍뎅이가 몇 cm까지 크는지 알아?"라고 묻는다.


물론 나와 아내는 보통 그런 질문들에 답을 할 수가 없다. 모르니까. 그럼 이 녀석은 한껏 의기양양해져서 눈빛을 반짝거리며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리에게 답을 말해준다. 굳이 "몰랐어?"라는 말을 덧붙이며. 우리가 모르는 걸 자신이 안다는 게 그리도 자랑스럽나 보다. 


그런데, 이 호기심이 간접적인 지식수급의 영역에서 멈추질 않는다. 근본적인 호기심이 해갈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자주 곤충을 키우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키우고 싶다는 곤충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메뚜기, 방아깨비, 소똥구리 등. 떼를 쓴다거나 바닥에 드러눕는 일은 없지만, 우리에게 말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짠할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레고매장에 가서 이번에 새로 출시된 곤충 모형들을 사주기도 했지만, 관상용 플라스틱 모델이 이 녀석의 호기심을 붙잡고 있는 건 고작 며칠이 한계였다. 그래도 살아있는 곤충을 사주고 키우게 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생각했다.


우리가 아이의 곤충 키우기를 반대해 왔던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 너무 어려서 스스로가 책임감을 지고 (애완) 곤충을 돌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곤충을 키우며 수반되는 모든 일이 대부분 부모인 우리 몫이 될 것임이 자명했다. 어떤 동식물을 키우던지 귀한 생명을 데려왔다면 최선을 다해서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그 식생에 있어서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할 텐데, 우리는 그런 지식이 별로 없었다. 물론 공부하면 되기야 하겠지만, 아들 녀석이 본인이 아니라 아내와 내가 배워서 키우게 되면 그거야 말로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닌가.


사실 나와 아내의 경험도 미천했다. 도회적인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아내와 다르게, 난 제법 곤충도 보며 흙도 밟고 자랐지만 그렇다고 곤충을 집에 두고 키울 생각을 하진 않았었다. (그랬다면 엄마가 가만 두지 않으셨을 거다.) 친구들과 뛰어놀며 몇 번 잡긴 했어도, 잠자리나 메뚜기를 잡아 스티로폼에 침핀으로 고정하고 어디 어디서 어떻게 채집했다고 여름방학 탐구생활 과제로 제출했던 게 전부다. 


암튼 여차저차 이유로 아이가 곤충을 키우는 걸 막아오던 어느 날, 가족이 다 같이 어딜 다녀오는 길에 자동세차장에 들렀다. 기계세차 터널을 통과하고 나와서 셀프로 물기를 말리고 진공청소기를 쓸 수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모든 차문을 열고 나와 아내는 여기저기 진공청소기와 에어건으로 실내를 청소했고, 아이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우리를 도왔다. 그러던 중, 애들이 소리쳤다. 청소기 소리에 귀가 따가웠던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애들 쪽을 돌아봤다.


"아빠! 여기 메뚜기 있어!"

"어디에?"

"여기, 뒷바퀴 위에!"


애들의 목소리는 에어건과 청소기소리를 뛰어넘고 있었다. 원래부터 목청 좋은 녀석들인 걸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흥분하니 가청주파수를 돌파할 것만 같았다. 계속 있으면 귀가 찢어질 것 같아서 청소기를 제자리에 꽂아두고 뒷바퀴를 살펴보았는데, 정말 아주 작은 새끼 메뚜기(처럼 보이는) 한 마리가 이제 막 물기가 걷혀가고 있던 타이어 위에 앉아있었다. 아들 녀석들 둘이 그 바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초롱초롱 그 곤충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게 어찌나 귀엽던지. 그런데, 그 작은 곤충에게는 우리가 너무 위협적으로 보였나 보다. 잠시 후 더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휙 날아가버렸다. 곧장 둘째 녀석의 눈에 아쉬움이 깔렸다. 그래도 날아갔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더운 날 청소하려니 이래저래 힘들고 해서 굵직한 부분만 마치고 얼른 차에 탔다. 다 정리하고 이제 내가 운전석에 앉으려고 하는 데, 아내와 애들이 날 동시에 불렀다.


"여보" "아빠!"


보니까, 아까 날아간 줄 알았던 그 메뚜기(처럼 보였던) 녀석이 조수석 뒤에 붙어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냥 날려 보내줄까 아님 잡을 까 고민했던 것 같다. 난 급하게 수건 한 장을 집어 들고, 그 곤충 뒤 편으로 돌아서 접근했다. 그리고 살포시 잡고, 아내에게 뭐 담을 만한 봉지가 있냐고 물었다. 아내는 마침 의자 한편에 있던 지퍼백 봉지를 찾았고 난 거기에 잡은 곤충을 조심히 담았다. 이 모든 과정 중에 아이들의 흥분지수가 올라간 건 당연지사다. 봉지에 숨 쉴만한 구멍까지 뚫은 다음 둘째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좀 차분해진 다음, 우리는 그 곤충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사진들과 비교해 보니, 메뚜기가 아니라 여치였다. 이리저리 여치가 담긴 지퍼백을 보던 둘째가 물었다.


"아빠, 우리 이거 키울 거야?"

"글쎄, 일단 집에 가서 한 번 보자. 뒤뜰에 놓아줄지 아니면 키워볼지 말이야."

사실 이때 말하면서 내 속마음은 이미 '며칠이라도 좋으니' 한 번 키워보게 해 주자라는 생각이었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뒤 뜰에 나가서 흙 조금, 나무조각 조금, 돌 조금, 풀 조금을 모아 와서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넣었다. 물기를 조금 넣어주고, 송곳으로 통에 구멍을 뚫어 숨구멍을 내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지퍼백에 있던 여치를 이사시켜 주었다. 여치는 움직임이 없었다. 더듬이만 이리저리 돌려보고, 기지개를 켜는 듯 다리만 두어 번 폈다. 무섭고 당황스러웠으려나. 그리고 한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우리는 여치가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사이 둘째 녀석은 벌써 여치의 이름까지 지었다. '여치치'라고. 아마도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NBA농구 선수인 '루카 돈치치'가 생각났나 보다. 


둘째가 이름까지 알차게 지어주었건만, 여치치는 영 적응을 잘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선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물만 간혹 한 두 방울씩 마시는 것 같았고, 잔디든, 잡초든, 장미잎사귀든, 그 어떤 풀 종류도 먹질 않았다. 나무 조각 아래에 자리를 잡고는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간간히 움직이던 다리나 더듬이도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 하루이틀이 지나고 사흘 째 되던 날 아침, 여치치는 나무조각도 돌도 없는 텅 빈 곳으로 힘겹게 자릴 옮겼다. 그때였던 것 같다. 여치치가 곧 죽을 것 같다고 예상된 것이. 아니나 다를까, 그날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여보, 여치치가 죽었어. 그래서 굳어서 뒤집어졌어.'


화들짝 놀라서 얼른 둘째 녀석의 반응부터 물었다. 어이쿠, 엄청 울었단다. 7세 평생에 겪는 최초의 상실 아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내도 달래주는 데에 꽤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좋아했고, 신나 했었으니까. (그만큼 여치치가 사는 통을 가만 안 두고 계속 이리저리 돌려가며 스트레스를 주었던 걸 이 글을 빌려 고백한다.) 아주 짧게 방문했던 우연과 행복이 순식간에 날아간 것일 테니. 세월에 때가 타서 무뎌진 우리보다 이 꼬맹이가 더 힘들었겠지.


그런데, 여치치의 죽음 이후 아들 녀석이 아주 조금 바뀌었다. 부모가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키우는 곤충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이후, 곤충을 키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 아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약간의 진중함이 생겼다고나 할까. (정말 나노미터 단위의 차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와 아내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던 그 '책임감' 비슷한 것이 이 아이 마음속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상실이 가져다준 마음의 씨앗일 것이며, 혹여 미래에 있을 또 다른 상실을 방어하기 위한 준비일 것이다.


그런 차이를 본 후, 난 이제 아이에게 애완용 곤충을 사주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같이 자료를 뒤적이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환경에서 곤충을 키우고 어떤 먹이를 줄지 고민해 볼 참이다. 첫 경험이 상실이었다면, 두 번째는 공생하면서 얻는 보람과 지혜여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비워지고 새로 채워가는 순간이 모여 우리 인생이 되는 것도 조금씩 배워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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