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신입으로 들어온지 막 2개월이 안되는 때라서 그런지 행사의 단체복을 입은 것만으로 신이 났다.
"안녕하세요. 도서 전시 보고 쉬었다가 가세요"
"다 정리한 후에 00 식당으로 오세요"
한참 뒷정리를 하고 있던 사서들에게 전달사항이 왔다. 공단전체 회식이 준비되어 있으니 모두 빠짐없이 와달라는 말이었다. 배가 무척 고팠던 나에게는 기쁜 소식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회식을 나는 좋아했는데, 도서관에서 잘 보지 못한 선생님들과 이야기해볼 수 있었고, 술은 못하지만 회식(맛있는 밥)은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회식은 사실 지금까지도 좋아한다. 근데 이건 이사장 등 윗선에서 술을 권하거나 억지로 늦게까지 있는다던가 하지 않아서 그랬을 수 있다.)
행사의 뒷정리를 하고 회식장소 가서 보니, 뒷정리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은 먼저 와서 먹고 있었다. 다행히 이사장님이 저 멀리 직원들과 있는 모습을 보고 다행이다 생각을 하며, 도서관별 직원 선생님들과 앉아 식사를 했다. 식사를 거의 다 해갈 때쯤 살짝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신입들끼리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앉아있는 자리에 술이 거하게 취한 팀장님이 오시긴 했지만 말이다.
"엇? 다들 어디 갔지?"
첫 회식이었던 나는 친한 사서와 함께 앉아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니 주위를 둘러봤을 때 텅 빈 회식장소를 볼 수 있었다. 가득 있었던 사서선생님들과 관장님들이 없어지고 신입 6명에 4개관의 관장님 중에 관장님 1분, 그리고 선배사서 1분 그리고 팀장님 4분, 이사장님 1분 그리고 대리님등 공단의 직원 몇 명이 남게 되었다.
' 뭐지? 말없이 모두 나가는 거야?'
각자의 관장님이 없어진 걸 확인한 신입직원들은 어리둥절했다. 선배사서들이 모두 인사 없이 조용히 밥을 먹고 나가버린다는 것이었다. 덩그러니 남은 신입들은 눈을 떼구루루 구르고 있었고 남은 몇 명의 직원들은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회식이 마무리가 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인사하는 신입들에게 한 주임님이 2차 장소가 있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사서선배님들이 모두 없어져서 어리둥절했기에, 신입직원들은 주임님에게는 화장실에 간다고 시간을 끌어 우리도 조용히 집으로 빠지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신입 중 한 명이 마음에 들었던 노총각 주임님이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다. 시간을 계속 끌 수 없었기에, 우리 모두의 계획이 무산되고 한 명 만을 보낼 수 없어 의리로 모두 다 2차 장소로 가게 되었다. 2차로 마련된 공간은 야외 치킨집이었다.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긴 테이블에 치킨 4마리와 500 cc 가 차려졌다.
시간이 늦어서 조금씩 눈치를 보고 있던 우리였는데, 누구 하나 먼저 간다고 할 수 가없었다. 그래서 잘 안 들리지만 눈치를 보며 저 멀리 앉은 이사장님과 팀장님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특히 내가 앉은자리에는 술을 많이 드신 팀장님들이 앞에 앉았다. 무슨 말을 계속하시고 질문을 하시는데,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였기 때문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못 알아듣는 말에 연신 "네?" "네?" 하고 있을 때, 저멀이 앉았던 이사장님이 갑자기 팍 하며 벌떡 일어나셨다.
그러더니 야외 치킨집을 넘어 밖의 횡단보도 사거리로 달려 나가셨다.
이사장님이 달려감과 동시에 삐진 애인을 달래러 가듯 도서관팀의 팀장님이 달려가서 팔을 탁 잡았다.
그 순간 이사장님은 손길을 팍 뿌리치더니 그대로 달려가셨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 얼음이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파악하기 위해 서로를 바라봤다.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없었고, 어색한 침묵이 2차 회식장소에 가득했다.
그리곤 앉지도 서지도 못한 자세의 신입들의 눈사인으로 2차의 회식이 마무리되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천천히 옷을 입고 개인의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너무 이상한 건 팀장님들 모두 일어나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우리였는데, 선배 남자 사서분이 한 명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법인카드 안 가져왔나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우리도 눈을 멀뚱이 선배와 관장님을 보고 있었다.
"2만 원씩 걷으면 될 것 같은데?"
갑자기 띵? 신입들은 모두 당황했다.
첫 번째 당황포인트는 현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내가 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
"근데 제가 현금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내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신입선생님들도 하나 둘 현금이 없다고 말을 했다. 당황스러움이 있는 소란 속에서도 먼산을 보듯 앉아 계셨던 타 팀의 대리님과 팀장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신입들은 이상한 분위기에 일어나서 짐은 챙겼지만,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서로를 바라봤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 길어질수록 당황하던 선배의 눈이 좌우로 돌아갔다. 선배는 2차 회식장소의 모든 사람들을 쓰윽 보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셨다.
신입들은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또르르.. 눈알을 굴리며 기다렸는데, 선배사서가 계산을 끝내고 나왔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내일 알려드릴게요"
"네"
우리 모두 대답을 끝으로 급하게 인사를 하고 흩어져 각 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덜컹이는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면서 너무 찝찝했다. 친구과 전화를 하다가 내가 찜찜했던 포인트를 알 수 있었다. 바로 "2만 원씩!" 이였다. 더치페이의 문화가 있는 건 알지만 직장의 회사에서도 팀장님과 관장님이 있는데도 더치페이를 했다는 게 내겐 다소 충격이었던 거다.
그래서 돈은 어떻게 했냐?
그날 결재한 선배사서는 개인카드를 취소하고 법인카드로 카드를 바꿨다고 했다. 그래서 다행히도 신입들이 2만 원씩 걷어서 회식비를 내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단에 오래 있을수록 임금이 무척 적기 때문에 개인 돈을 잘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시기는 팀장님들께 관장님들께 커피 한 잔, 빵 한쪽 얻어는 게 되게 특별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인지 몰랐던 나는 "공단화"된 선배들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때부터 친한 신입들은 "인색한 공단화"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쓰자! 먹을 땐 쓰자! "
13년 5월 우리는 이렇게 먹고 싶을 땐 쓰고 사고 싶을 때 사는 신입들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