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버린 마음.
두 친구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한 동내에서 자란 그들은 성인 되고 나서도 늘 함께 어울렸다. 어릴 적에는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치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고 나선 술집을 그들의 놀이터로 삼았고 회사에서 퇴근한 뒤, 그들이 늘 모이는 단골 식당에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식성과 생활방식도 비슷해졌고 그들이 삶에서 유희를 느끼는 부분도 당연히 비슷해져 갔다. 잦은 음주와 흡연, 늦은 시간까지 끊이지 않고 들어가는 기름진 안주들과 부족한 수면시간까지.
영원할 것 같던 젊고 건강한 육체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에 수액이나 맞아볼 요량으로 찾아간 동네 병원에선, 심각한 간경변이 의심된다며 대학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 받았고 두 사람은 가족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뒤로한 채, 가까운 대학 병원으로 향해야만 했다.
“간 이식 수술은 기본적으로 뇌사자 발생 시에 응급으로 수술을 진행하게 됩니다. 미리 두 분의 검사 결과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다가 수술 전 검사지표가 일치하는 뇌사자분이 나타나시게 되면 응급으로 수술을 하는 거죠. 그러니 일단 간 이식 대기자로 신청하시면, 언제든지 수술을 받으실 수 있도록 관리를 미리 해놓으실 필요가 있습니다.”
“관리라 하심은 어떤…?”
“일단 기증자분이 언제 나타나실지 모르니, 그때까지 건강관리가 첫 번째로 수행되어야겠죠. 그리고 생활 습관을 고치셔야 합니다. 일단 술, 담배는 무조건 끊으셔야 하고 음식도 가려서 드셔야 합니다. 정상인 분들은 몰라도 간 환자들에게는 독이 되는 음식들이 몇 가지 있으니까요.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한약재나 약도 주의하셔야 하고 어차피 수술하신 뒤라도 관리가 안 되면 수술한 의미가 없이 금세 재발하기 때문에, 이건 여러분이 평생에 걸쳐서 싸워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그 밖에도 합병증 등을 예방하기 위해 개인위생 관리도 철저히 하셔야 하고 또….”
의사는 그렇게 한참을,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 그 밖에도 앞으로의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 고쳐야 할 생활 습관들을 줄줄 읊어 주었다.
“제가 설명해 드린 것들은 앞으로 다 지키셔야 합니다. 하실 수 있으시겠죠?”
““...””
물론 평생을 술과 담배, 기름지고 짠 음식에 절여진 채 살아오던 그들에게는 사실상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라는 수준의 요구나 다름 없었기에 쉽게 대답하긴 어려웠지만, 의사의 말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반드시 죽고 만다는 살벌한 경고.
“술을 끊고 삶을 바꾸실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방에 그냥 몸을 묶어두세요. 제 말은 아예 유혹받을 만한 환경으로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잘 들으세요. 제가 장담하건대 두 분이 생활 습관을 바꾸시지 않는다면,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이식을 받아도 똑같으실 겁니다. 이건희 회장님이 남기신 유명한 말이 있잖습니까? ‘마누라를 제외한 모든 것을 바꿔라.’”
그렇게 생사를 건, 두 사람의 투쟁이 시작됐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쉽게 되지는 않았다. 평생에 가지고 있던 생활 패턴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술의 유혹과 금단증상을 이길 의지력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동네에 함께 어울리던 술친구들, 폭음을 통해 어울렸던 회사 동료들, 음주가무로 이어져 있던 거래처의 관계자들까지.
늘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술을 마시던 두 사람과 어울렸던 사람들이라곤 전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단한 두 사람의 태도는 자연스레 술로 이어진 모든 인연들과의 충돌을 일으켰다.
단순히 그것뿐이면 어찌어찌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참나. 하루아침에 술을 끊겠다고? 혼자만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 같은데. 어디 한번 우리를 다 버리고 그렇게 살아보라지.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의리가 없어.”
“자네가 술을 마시지 않은 뒤론 사람이 참 재미가 없어졌어. 그리해서 사회생활이나 잘 할 수 있겠나? 당장 자네가 맡은 고객사들의 접대는 어떻게 하려고 하지? 술자리 분위기 다 망치면서 '저는 술은 안먹습니다' 하고 센님처럼 굴건가?”
그들과 어울렸던 나이가 지긋한 부류의 사람들은, 술을 끊겠다는 두 사람과 거리를 뒀을 뿐 아니라, 은근히 두 사람을 따돌리며 오히려 그들의 결단을 비판했다. 친한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적으로 돌변한 상황. 여기서 두 사람의 반응이 나뉘었다.
한 친구는 이대로는 자신의 결단이 흔들릴 것 같다며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각오를 가족들과 나누었고,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서 보이겠다고 말했다.
당장 가족들의 생계부터가 흔들릴 위기였지만, 그를 사랑했던 가족들은 오히려 가장의 그런 쉽지 않은 결단을 응원해 주었다. 생과 사의 순간에서 가장을 잃을 지경인데, 다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잠시 힘든 시간을 보낸다면 어떻단 말인가? 뭐가 됐든 간에 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장이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가족들의 생계와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커리어와 인맥을 두고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그 회사에 남기로 하였다.
그는 회사를 나가는 친구를 향해 당당히 얘기했다.
“자네는 너무 극단적이야. 광적이라고! 너무 책임감 없이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회사에서도 자네에게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그냥 술자리에 참석해서 술만 마시지 않으면 되네. 자네의 선택으로 인해 자네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회사와 거래처의 사람들, 몇 명이나 피해를 보는 줄 아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의사에게서 상담받은 자네마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우리의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게. 우리 몸이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자네는 아직도 자신을 믿나? 나는 도저히 나를 믿을 수 없네. 나는 여전히 초록색 유리병만 보아도 입에서 군침이 돌고 밤만 되면 금단증상에 허덕이네. 내가 이런데 이 회사에서,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지 않고 술자리에만 참석할 수 있다고? 자네는 나보다 의지력이 강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할 걸세. 왜 싸우기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가? 유혹을 이기는 길은 맞서는 게 아니라 피하는 것. 유혹받는 순간 사실상 내 패배는 결정된 거나 다름없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술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해야 하네.”
회사를 떠나는 친구는 이미 결단을 굳혔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루아침에 회사를 떠나버렸다. 회사에 있던 모두가 그를 손가락질했고 그건 그의 친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쯧. 극단적이야. 의사의 말도 그냥 경고성일 뿐이지,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멍청한 게 아닌가? 세상 모두가 다 이렇게 사는데, 평생을 이렇게 살았는데, 설마 진짜로 무슨 일이 있겠나? 대기 시간만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간 이식을 기다리면서 그동안 일도 안 하고 가족의 생계를 내팽개치겠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날 밤. 회사에 남기로 결정한 친구는 거래처의 직원들, 같은 부서의 동료들과 함께 다시 예전처럼 회식에 참석했다.
동료들은 회사를 떠난 친구를 비판하며 회사에 남은 그를 칭찬했다. 의리가 있다며, 또 의지력이 강하다며, 사회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라며, 그를 높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불편하게 만들었던 의사의 경고는 점차 힘을 잃어갔다. 세상 모두가 그의 선택을 옳다고 말하며 그를 칭찬하는데, 의사의 경고를 곧이곧대로 믿고 회사를 떠나간 친구의 도전적인 모습은 점차 극단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모습으로 보였다.
“진짜 그 녀석은 어릴 적에는 안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니 점점 이상해지지 뭡니까. 누가 보면 자기는 평생 옳게만 살아온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그놈이 옛날엔….”
남아 있던 약간의 불편함은 친구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회사를 떠나간 친구의 뒷담화로 점점 회식 자리가 과열되었을 때, 나이 지긋한 거래처의 사장이 그에게 말을 건네왔다.
“자네의 결단이 맞아. 그건 의사 놈이 괜히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 겁주는 것일 뿐이네. 나도 젊었을 적에 몸이 처지고 간이 안 좋아졌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 보게. 내 나이가 80인데 아직도 건장하지 않나? 내가 85살에 죽을 운명이라면 술을 마셔서 한 83세에 죽겠지. 2년 정도 더 살자고 그렇게 술도 안 마시고 인생의 즐거움을 다 버리고 산단 말인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얼굴이 벌게진 채 호쾌하게 웃어오는 상대의 모습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지금 그의 상황에서 이보다도 더 위로되는 변증이 또 있을까?
“사장님은 그러고 보면 정말 오랫동안 건강하십니다. 아직 강건하셔서 회사 업무도 그대로 맡고 계시지 않습니까? 혹시 특별한 건강관리 비법이 따로 있으십니까?”
“비법? 물론 있지. 잘 들어보게. 사람이 머리를 자주 안 쓰면, 머리가 퇴화하지? 기억력이 떨어지고 판단도 느려지고 반응 속도도 떨어지지?”
“그렇죠.”
“다른 것도 마찬가지야. 오랫동안 운전을 안 하다 보면, 차간 간격이 잘 안 맞춰질 때도 있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은 다시금 악기를 들었을 때 어색함이 느껴지지. 우리 몸도 마찬가지네. 적당한 자극이 있어야. 그 기능이 오랫동안 유지가 된다는 말이지. 하물며 간 기능이겠나? 나 같은 경우엔 간 기능에 도움이 되는 한약재를 넣은 약주를 식사때마다 조금씩 곁들이네. 그러면 간이 회복되면서 그 기능도 유지가 되는 거지. 다이어트도 마찬가지야 내 딸에게 들어보니 완전히 굶기만 하면 오히려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 뭐든지 균형이 중요해! 내 말은, 과연 무조건적인 금지가 해답이겠냐는 말이네.”
이 말을 들은 그는 큰 위로를 받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몸에 좋다는 한약재를 검색해 직접 담금주를 담그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이 와중에 또 술을 먹는 거냐고 그를 나무랐지만, 그는 오히려 무식한 소리 하지 말라며, 그를 사랑하는 자들의 충고를 무시했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술을 담근다는 핑계는,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그의 욕망을 감추기엔 최적이었고 무르익어 가는 술 단지들을 보면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보란 듯이 이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여, 회사를 그만두고 잘난 체하며 자신을 욕보였던(사실 친구는 자신의 결단을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같은 결단을 하지 못했던 그에게는 친구의 이야기가 마치 그를 깍아내리는 심한 욕설처럼 들렸다) 친구를 역으로 비웃으리라.
또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환자들을 겁박하느라 바빴던 그 돌팔이 의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들려줘야지. 당신이 틀렸고 내가 옳았다고. 어쩌면 자신의 사례가 소문이 나서 방송에도 나오고 책도 써서 유명인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며칠이 또 지났다.
“크으…. 아니 이걸 직접 담갔단 말이야? 맛이 기가 막힌데?”
“처음에는 어설펐는데 몇번 담그다 보니, 슬슬 감이 잡히지 뭡니까? 몸에서 열이 확 나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그러네요. 이건 진짜 술이 아니라 약입니다. 약. 아니 과장님 이런 좋은 건 혼자서만 드시지 말고 저희도 좀 나눠주십시오”
“환자 약 뺏어 먹을 생각하지 말고 자네는 소주나 마셔.”
언제나 있던 회식 자리. 그는 언제나처럼 빠지지 않고 참석해,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그가 직접 담근 약(?)을 마셨다. 강력한 약재 향이 코를 뚫는 것만 같은 시원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가 자신이 만든 약을 아주 흐뭇한 마음으로 즐기는 그때였다.
“아니 자네 지금 미쳤나?!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식당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익숙한 목소리는 회사를 떠나갔던 친구의 것이었다. 이전 회사 동료들을 보고 인사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윽박지르며 가게에 난입한 친구는 술을 마시고 있던 그의 손을 잡고 식당을 나섰다.
“아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다른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내 망신이라도 주려는 건가?”
끌려 나오면서 보았던 회사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들, 혹시나 자신도 친구처럼 극단적이고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지 걱정됐던 그는, 일부러 안의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친구에게 역정을 내었다.
“뭐…?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자네가 나에게 화를 내는 건가? 의사가 술을 또 마시면 우리 진짜 죽는다고 했었네. 그게 불과 며칠 전인데. 그새 그 사실을 까먹은 건가?”
“고작 그따위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와서 내게 망신을 주는 건가? 자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혼자서 하게! 혼자서!! 의사 놈에게 현혹되어서 절박한 마음인 건 알겠는데,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테니.”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의사에게 현혹이 되었다니? 자네도 나와 같이 증상을 느꼈고 의사의 진단을 수긍하지 않았나?”
“그땐 그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돌아와서 잘 생각해보니, 그 의사 놈이 수가를 올리려고 일부러 우리에게 과잉 진료를 한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네, 인터넷에 보니, 간 이식받지 않고 잘 관리해서 간경변을 치료한 사례도 많고, 우리 거래처 사장님도 약주를 마심으로써 이 질병을 이겨내셨다고 들었네. 자네도 의사 놈에게 속지 말고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말하게. 내가 내 약주를 조금 나눠주지. 이것만 먹으면 수술도 받지 않고, 술을 끊지 않고서도 우리의 병을 관리할 수 있네.”
“지금 의사의 말이 아니라 인터넷과 민간요법을 의지하겠다는 말인가? 아니 우리 생명이 걸린 일인데?! 난 자네가 하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네. 이대로 있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지금 술을 마시는 게 중요한가? 의사가 돌팔이든 아니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게 술을 마셔서 자네의 건강이 망가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네.”
“아니? 더 살아봤자 얼마나 산다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그렇게 참아가면서까지 생명을 연장해야 하나? 내가 몸에 좋은 약주를 마신다고 해서 죽을 리도 없겠지만, 그럴 바엔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낫지.”
“...미쳤군. 미쳤어.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심이, 무슨 일이 있어도 술은 포기 못 한다는 자네의 고집스러운 마음이 자네의 눈을 멀게 만들었네. 마음을 우둔하게 만들었어. 나에게는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는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자네는 지금 술을 잃을 바엔 죽겠다고 말하는 건가?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모르겠나…?”
“아니? 자네가 하는 말이야말로 모순적이네. 살라고 하면서 나에게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살라고 하면서 나에게,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을 부정하고 죽으라고 하고 있지 않나?”
“살라고 하는 말이 어째서 자네를 죽이는 말이란 말인가! 지금처럼 자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자네는 반드시 죽고 말 거네. 살기 위해서 자신을 바꾸라는 내 말이, 자네를 살리는 말이 아니라 죽이는 말로 들린단 말인가?”
“그렇네! 난 더는, 나를 죽이는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저 안에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다시 돌아가 보겠네. 자네와 나는 바라보는 목표가 다르지 않나? 다시는 이런 식으로 나를 찾아오지 말게!”
그렇게 말한 친구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며 식당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삶을 바꾼 친구의 모습이야말로 삶을 바꾸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고발하는 것만 같아서 자신을 향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친구의 눈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평생을 함께한 친구 사이. 그러나 삶의 변화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두 사람의 인연마저도 깨뜨려 버렸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곳은 그들이 진단을 들었던 대학 병원에서였다. 그들이 살던 지역에서 일어난 연쇄 추돌 사고, 갑작스레 발생한 뇌사자로 인해 장기 기증 수여자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순번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먼저 혜택을 받았겠지만, 뇌사자의 상태가 좋지 못한 탓에 거리가 가까운 환자들에게 먼저 기회가 온 케이스였다.
의사는 안전한 수술을 위해 수여자들을 대상으로 수술전 피검사를 진행했고 아무리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몸 속에 흐르는 피를 바꾸지 않는 이상,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감출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의사는 검사지를 들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술을 계속 드셨단 말입니까? 같은 진단을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나 결과가 상반될 수 있습니까? 제가 두 분을 속이려 했단 말입니까? 여러분의 속을 직접 들여다보고 진단을 내린 저보다, 겉모습밖에 보지 못하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상태에 대해서 더 잘 안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신을 죽인 것은 술이 아니라 당신의 그 고집스러운 마음입니다. 저는 또다시 술을 마실 사람을 위해선 수술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 건강한 한 사람이 대신 죽어야만 했는데! 그럼에도 당신의 삶이 바뀌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의 생명을 이용해서 또다시 자기 욕심대로 살아갈 생각은 하진 마십시오.”
의사의 판단이 어떠할지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후 타인의 생명을 받아 건강을 되찾은 한 친구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고 다른 한 친구는 상태가 점점 악화하다 끝내 검게 변한 얼굴로 자신을 구해주지 않은 의사를 향해 원망과 폭언을 쏟아내다 고통 속에서 숨을 거뒀다.
아주 당연하게도, 약주는 괜찮다며, 사회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숨진 친구를 미혹했던 회사 동료와 거래처 사장 중 그 누구도, 가장을 잃고 남겨진 그의 가족을 돌봐주진 않았다.
(아주 당연하게도 이 글은 픽션이고 실제 이식 수술이나 진단 절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