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자야

상처 입은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

by 마타

우리는 늘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 중에 사랑받기 싫어하는 존재는 없을 테니까요.


우리가 미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작은 생물에서부터, 하늘을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새들, 새끼를 낳아 키우는 작은 동물들과, 대양을 누비는 고래, 사나운 맹수에 이르기까지.

말도 못 하고 생태도 다양한 동물들이 마치 사람의 손길을 즐기는 듯, 부드러운 눈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가치관이 뒤흔들려본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시리라 믿습니다.

아마 동물들이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범주에까지 그들의 편의를 살펴주고, 적의 없이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사람들의 손길을 믿었기에, 그토록 편안한 표정을 지은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동물들이 스스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치료해주고 먹을 것을 공급해 주며, 그들의 삶의 의미를 결정해주고(집을 지키게 한다거나, 일을 시킨다거나.) 그들을 보호해 주며 종을 초월한 사랑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니 사람을 의지하는 동물들에게는, 사람이야말로 의지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랑의 결정체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기에 사람을 경계하지 않아 멸종하고 말았다는 도도새의 이야기나, 사람을 특별히 좋아하던 물개가 사냥꾼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 알 수 없는 부채 의식이 느껴지는 걸지도요. 생태계의 먹이사슬 상 우리의 필요에 의해 그들을 사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하다못해 우리를 믿고 의지해 주는 녀석들까지 사냥하는 것은 그들의 신뢰와 사랑을 배신한 것만 같기 때문이겠죠.

단순히 유희를 위해 생명을 함부로 빼앗는 것에 우리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도움이 요청하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눈빛을 보고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작용하는, 다른 동물과는 구별된, 양심과 공감이라는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에서 비롯된 본능이 아닐까요?

그러나 인간을 의지하려는 녀석들에게는 미안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비닐에 싸서 키우던 강아지를 땅에 묻었다는 뉴스, 이유 없이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하루아침에 길가를 방황하게 되는 수많은 반려동물들,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가 오히려 사냥의 대상이 되고 마는 야생 동물들. 인류를 향해 꼬릴 흔들었던 그들은 버려지고 상처받아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도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를 향해 미소함으로 우리의 부족함을 고발합니다.


사실 우리가 그들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깁니다. 우리는 말이 통하고 매일 같이 부딪히는 이웃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걸요.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 땅의 모든 존재보다 뛰어난 인지 능력과, 양심이라는 존귀한 도덕적 감각을 지니고, 역사 속 어떤 왕들보다도 편리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발달된 문명을 이륙했으면서도 오히려 여유를 잃어버리고 예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는 똑같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제게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이 사랑의 문제만큼은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랑이라고 한다면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부모님으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았다고 말하긴 힘들 겁니다. 우리를 향한 부모님의 마음이야 한없이 컸겠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되는 것이 처음이었을 두 분이 자녀를 사랑하기 위해 참고할만한 대상이라고 해봤자. 어려서부터 그들이 보고 배웠을 그들의 부모가 전부였겠죠.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장 숭고한 사랑이라는 부모의 사랑이지만서도, 우리 주위엔 가정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걸 생각해보면 오랜 세월을 넘어, 대를 이어 올라가 태초의 가정을 살펴보아도, 그들 역시 온전한 사랑을 이루는 것에는 실패하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봅니다.


우리의 영혼은 분명히 온전한 사랑을 바랍니다. 이걸 부정할 사람은 누구도 없을 테죠.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사랑의 기갈을 느끼며 공허한 가운데서 살아가니까요. 온전한 것을 찾지만 찾지 못할 때, 우리에게 가장 먼저 일어나는 감정은 분노입니다.


갈구해도 채워지지 못하고 찾아도 찾지 못하니 우리는 분노합니다. 우리를 온전히 사랑해 주지 못했던 부모님을 향해 분노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지 못하는 이웃에게 분노합니다. 나에게 상처 주는 친구들에게 분노하고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직장 상사와 동료들을 향해 분노합니다.


심지어는 사랑한다고 만난 연인에게도, 자신을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한다며 토라지고 분노합니다.

사실 모든 번지수가 잘못된 것입니다. 애초에 우리가 사랑받기를 기대하는 그들조차도 온전한 사랑을 맛본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우리를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채워지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두 번째 감정은 극심한 이기심입니다.

이기심이야말로 인류와는 때어놓을 수 없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극복하지 못한 극심한 기갈의 근원이죠.

온전한 사랑으로 채움 받지 못하니 인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삽니다. 바로 옆의 이웃들이 가난과 외로움과 고통 가운데 신음하지만 못 본 척합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내 코가 석 자야.’

한낮 짐승들도 서로의 상처를 핥아줄 줄 알거늘 이웃의 상처를 살펴주는 것을 오히려 어리석게 여기며 극도로 좁아진 시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저렇게 상처받기 전에 스스로 처신을 잘했어야지. 저런 사람들은 괜히 사회엔 도움도 안 되면서 피해만 끼치는 사람들이라니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걸 아셔야 합니다. 굶주리고 상처받은 동물들이야말로 제 상처가 급해서 다른 동물들의 상처를 핥아주지 못한다는 것을요. 굶주린 동물들은 자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해서 옆의 친구가 죽으면 그 시체를 뜯어먹을 궁리만 하고, 또 옆에 누군가 다가오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지 극도로 경계하며 으르렁거리는 법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건, 도움이 필요하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경계하며 상처 입은 사람들을 삼킬 생각이나 하고 있는,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받지 못해 상처 입은 사람들은 마치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 채, 자신의 기준대로 남들을 판단합니다. 그리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 것 같으면, 곧바로 미움이라는 가시를 세우고 마음을 닫아버리죠.


솔직한 심정으로 주위를 돌아보고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이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사랑받지 못해 상처받은 영혼들은 뒤틀린 인정 욕구를 가지고 남들에게 과시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과시하느라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단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바쁩니다. 자신의 가치가 남들이 SNS에서 눌러주는 하트 개수에 달린 거 마냥, 하트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합니다.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이 보이면, 배우려고 하기보단, 질투하고 그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상처 입은 자존감을 채우려 합니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부족한 것 하나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조차, 그들의 자존심과 명예가 실추된다고 느끼면 견디지 못하고 분노하다 결국은 그 분노의 불길로 스스로를 사르죠. 끝내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서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들의 그런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똑같이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의 평가로 자신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사랑받지 못했기에, 사랑의 부산물에 불과한 정욕에 인생을 불태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욕으로 밖에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 잠깐의 안개와도 같은 사랑의 감각을 손에 쥐어보려, 자신을 믿어주는 시선들을 이용하고 사랑을 연기하며 심지어는 상대에게 재기 불능의 상처를 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


안개로 목을 축일 수는 없는 것인데,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사랑의 기갈을 가장 크게 느끼는 불쌍한 사람들일지도요. 그러나 그들은 안갯속, 그 잠깐의 감각에 눈이 멀어 마치 자신이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떠들어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네요.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지 못했는지를 떠들고 있으면서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겁니다.


사랑은 받기보단 주기를 기뻐하는 법인데, 받기 위해 주는 것을 연기하고 있으니 얼마나 급급하고 괴로울까요.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투성이입니다. 우리 부모님도, 친구도, 애인도, 스승도, 동료도,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사랑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한 상처로 인해 말 그대로 ‘제 코가 석 자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를 상처 주는 그들을 이해해 줍시다. 인간인 이상,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처를 핥기보단 이웃의 상처를 먼저 보듬어 줍시다. 혼자서 핥는 상처는 쓰릴 뿐이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 조금 더 따뜻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분노와 이기심을 내려놓고 한 번쯤은, 인생에서 단 한 번쯤은, 이 땅에선 기대할 수 없다고 진즉에 포기해 버린 그 온전한 사랑을 찾아봅시다. 어쩌면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수도 있고 코웃음 치고 경멸했던 이야기 중에 정답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사랑은 받기보단 주는 것을 기뻐하기에, 사랑은 자랑하기보단 묵묵히 지탱해 주기를 기뻐하기에, 나의 기쁨보단 당신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기에, 강압적이진 않고 신사적이기에, 그러나 때로는 애달픔으로 울부짖기도 하기에. 겉으로 보기엔 그 아름다움이 이해되지 않고 하찮다고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마치 땅에 떨어져, 빗물에 구겨진 러브레터처럼 지저분하고 가치 없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정열만큼은 분명 지친 당신을 위로해 주겠지요.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준 당신이라면, 어쩌면 이미 사랑에 상처받았을지도 모르겠고 사랑에 실망했을지도요. 그러나 사랑은 눈앞의 이익보단 당신의 유익을 바라는 법. 분명 멀리 있지는 않고 가까이에 있을 겁니다. 당신이 자신을 찾아주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에 언제나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 겁니다.

세상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험난한 곳이라고 당신에게 느껴진다면, 당신이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이 불공평하겠지만, 사랑은 가난한 자에게도 부유한 자에게도, 허름한 자에게도, 존귀한 자에게도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비추는 따스한 햇볕과도 같으니, 분명 당신에게도 그리 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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