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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예상치 못한 용도와 갈근탕의 소임

13

by 이현기

13. 소금의 의외적 기능


소금에 절인 젓갈은

보존기간이 꽤 길기 때문에

두고두고 먹기 편한 음식이다.

이처럼 소금은 유용하다.


직장 동료 한 분은

습관처럼 미지근한 물에 소금을 타마신다.

전해질을 보충하고

장 운동을 촉진한다는 소금물.

적당량만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매우 유용한 소금물.


이렇듯 소금은

삶의 영위란 영역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태껏 나는

그 귀하디 귀한 소금의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

마음의 상처에만 뿌려댔나 보다.

한 번 생채기가 난 마음은

불안, 걱정, 슬픔, 눈물이라는

소금기가 더해져

극렬한 통증으로 반응했다.


'평안해지기 위해선 불행에 잠식당하지 않아야 해.'


평안을 부화시키기 위해서는

평안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걸

난 왜 몰랐을까.

결국은 세상 돌아가는 사정이란 게

마음먹기 나름인데

불행을 품는 와중에

행복을 꿈꿨던 나는,

어쩌면 매우 우매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소금은 보존 기능이 탁월하다 하니

소중한 마음과 생각을 모아

소금에 푹 절여

두고두고 꺼내서 맛볼 수 있게

오랫동안 간직해 볼까.


13-1. 갈근탕이 건네는 말

한 남자가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마약에 손을 대고 만다. 술과 마약으로 의식이 흐리멍덩해진 그는 마약을 건넨 친구의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다가 트럭과 충돌한다. 그는 가까스로 목숨은 구했으나 식물인간 판정을 받아 중환자실 신세를 면치 못한다. 분명 뇌사 상태이지만 이상하게도 보고 듣는 감각은 살아 있다. 심지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목소리가 그에게 말까지 걸어온다. 상태가 위독한 남자는 체외 이탈이라는 임사체험까지 하며 생명의 불씨가 점점 꺼져갔지만, 알 수 없는 목소리와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인생과 사랑의 가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본질에 대해 점차 깨닫는다. 남자는 기적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게 된다면 가족을 더 사랑하기로,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해 주기로 결심한다. 그는 갓 태어난 자신의 딸아이를 마주하며 기적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남자는 운명이 쳐놓은 역설적인 구덩이를 통해 인생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의 안경과 제2의 삶을 선물 받는다.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멕시코 태생의 작가 아난드 딜바르(Anand Dilvar)가 집필하여 전 세계에서 300만 부 이상 팔린 소설 <<그렇게 보낼 인생이 아니다>>의 줄거리이다. 중편에 가까울 정도로 분량이 짧고 난해한 어휘도 없어 반나절 정도면 완독할 수 있지만, 주제 의식은 우리의 내면 깊숙한 바닥까지 떨어질 정도로 무게가 있다. 식물인간이라는 불운한 상황이 주는 절망감은 자신의 진짜 자아를 대면하고서 행복과 감사란 감정으로 조금씩 치환된다. 삶이 고달프고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11,700원(2025년 기준)의 책값을 지불하고 인생에 대한 관점이 업데이트된다면 이윤이 남는 장사이지 싶다. 참고로 나는 2독을 했고(앞으로도 인생의 경구처럼 틈틈이 읽어볼 예정이다), 독서기록장도 정성껏 작성했다. 비록 처제들이 읽던 책을 훔쳐와서 책값을 아끼긴 했지만...


최근에 심한 몸살이 찾아와 감기약을 며칠 복용했지만 몸살 기운은 내 신체 안에 진드기처럼 끈질기게 붙어 있어 도무지 떨어져 나갈 기미가 없었다. 독서는 언감생심이고 호기심 많은 아이의 조물딱거리는 손놀림에 기운이 다해버린 낙지처럼 침대 위에서 그저 힘없이 흐물거릴 뿐이었다. 몸은 고약한 바이러스에게 육체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마침 한 지인이 갈근(葛根) 탕이란 걸 소개해 줘 꾸준히 복용하니 차츰 몸이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신체 리듬이 본 궤도로 돌아오니 그제야 근력이 되살아난 낙지가 된 듯하다. 역시 건강이 최고다.


사랑이란 동고동락일까? 나 같이 하찮은 사람에게 밥을 차려주고 월급날 뽀뽀도 해주는 등 인류애적 봉사 정신이 투철한 아내에게도 몸살감기 증상이 찾아왔다. 내가 일전에 효능을 체험했기에 당장은 병원에 가지 않고 갈근탕으로 병과의 타협점을 찾기로 했다. 참고로 아내는 인생을 달달하게 살아온 탓인지 한약이나 아메리카노와 같이 쓴 것을 잘 못 먹는다. 진작에 갈근탕의 효과를 맛봤던 나는 안 먹으려고 발악하는 아내의 입안으로 기어이 약을 쑤셔 넣었다. 아내도 살고 싶은 욕망은 있었는지 주름진 인상으로 얼굴을 구기며 목구멍 안으로 갈근탕을 꾸역꾸역 넘겼다. 당장은 쓴맛이 입안을 맴돌겠지만 분명 몸에는 좋을 것이다.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갈근탕 액상포가 최후의 쓴 내를 풀풀 풍기며 말을 건네 온다.


"감기에 골골거리더니 이제 살아났나 봐?"


"평소에 운동도 자주 하고 몸에 좋은 걸 많이 먹어서 면역력이 남다른..."


"닥쳐. 약 먹고 살아난 주제에."


"이런, 들켰군."


"너 말이야. 살아온 인생을 훑어보니 자아의식이 조금 위태로운 것 같아. 불행에 대한 면역력이 약하달까."


"그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아. 행복한 순간은 희미하게 떠오르는데, 불행한 기억은 선명하거든. 최근에 아팠던 것도 일종의 불행이었고."


"내 얘길 들어봐. 아파 보니 건강한 일상이 소중한 걸 알겠지? 병에 걸려 봐야 건강한 삶이 귀중하다는 걸 깨우칠 수 있듯이 어찌 보면 아픈 현상이란 건 비단 부정적인 일만은 아닐 거야. 우린 일상의 장면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돼. 사소함과 평범함에 감사할 줄 알고 무난함과 건강함에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그렇게 보낼 인생이 아니다>> 속 정체 모를 목소리가 주인공에게 말했듯이 우린 '상황'을 통제할 순 없겠지만 '상황에 대한 반응'은 통제할 수 있어. 특정 상황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하는 건 남도 아닌 바로 너 자신이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속 산티아고 노인이 몇 날 며칠을 분투해서 힘겹게 잡아온 거대 청새치가 상어에게 살점을 뜯겼던 안타까운 상황에서 그는 비탄에 잠기기보단 오히려 고기의 무게가 줄었으니 배에 속도가 붙어 항구로 일찍 돌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 노인은 상황에 대한 반응을 통제한 거야. 우린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인 반응으로 다스릴 줄 알아야 돼. 삶의 진정한 행복은 쾌락을 추구하는 데서 오지 않고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관점과 마음가짐에서 오는 것이니깐. 고통을 고통 그 자체로 여기지 마. 불가결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반응을 통제하는 것, 그것이 행복에 이를 수 있는 처방전이야. 행복이란 결국 지혜로운 자에게 닿는 거라고. 불쾌함을 유쾌함으로 극복해나가려고 하는 너의 모습, 칭찬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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