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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에 걸린 거북이와 계단참의 선행

19

by 이현기

19. 거북이의 행군


제한된 물리적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알차게 써야만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다.

수능 공부를 할 때도

임용 고사 준비를 할 때도

자투리 시간마저

뭔가를 머리 안에 욱여넣어야

기어이 적성이 풀리고 안심이 되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단잠에 빠져 꿈길을 거닐 때면

상대적인 우월감이 찾아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일 미터라도 더 앞서가고자

전심과 전력을 기울였다.


태생적으로 우둔하게 태어난지라

토끼가 될 수 없었던 나는

비록 거북이걸음일지라도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나만의 잠언으로 각인했다.


그리하여

남들보다 더 걸었고

남들보다 더 뛰었으며

남들보다 많은 땀방울을 흘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 깊은 곳에선

조급증의 키가 자라고 있었다.


군에 입대하여 맞이한

첫 행군 훈련

군장과 방탄모와 총은

마치 인생의 무게처럼 무거웠다.

쏟아지는 별빛을 안내등 삼아

어둠과 고독 속을

끝없이 걸었다.

짓눌린 어깨와 삐걱대는 연골에겐

십 분 간의 휴식이 간절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휴식 시간.

군장의 무거움을 잠시 내려놓고

공연히 밤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 찍힌 무수한 작은 점들은

먼 우주 어딘가에서

메시지를 전해 오는 듯했다.


'내가 발하는 빛은 영원하지 않아. 언젠간 꺼지고 말 거야.'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무거운 걸음을 떼었을 땐

마음과 몸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다시 행군할 힘을 얻고 나서

난 그날의 행군을 낙오 없이

잘 마칠 수 있었다.


19-1. 계단참이 건네는 말


2025년의 태양이 새롭게 밝아온 김에 연초부터 어중간한 꿈 하나를 야심 찬 결의 안에 밀어 넣었다. 바로 일 년에 책 100권 읽기. 산술적으로 3, 4일 만에 한 권꼴로 읽어나가는 것이기에 게으름이라는 녀석에게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 이상 충분히 실현가능한 도전이 될 것만 같았다.


새해 첫날부터 책을 안 보면 당장이라도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거침없이 페이지마다 손때를 묻혔다. 하루에 몇 백 페이지씩 읽어 나가는 속도였으니 수월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추세라면 100권이 아니라 150권도 읽을 기세다. 섣부른 의욕과는 별개로 책의 정보를 처리하는 뇌는 은연중에 과다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국 뇌는 슬슬 궐기의 조짐을 보이더니 파업을 단행했다. 책을 펼치면 눈부터 아프기 시작한 걸 보니 날 넘어뜨리기 위해 뇌에서 시신경을 마비시킨 게 틀림없다. 글자가 머릿속에서 뱅뱅 돈다. 분명 글자를 읽고는 있는데 의미는 들어오지 않는다. 미친놈처럼 책에 매달리는 모습을 곁에서 안쓰럽게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급기야 브레이크를 걸었다.


"사법고시 준비하냐? 적당히 좀 읽고 쉬어."


우리 집은 아파트 15층이다. 최신식 프리미엄 아파트는 아니지만, 입주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평보단 만족에 가까운 마음으로 살아오던 중 단 한 번, 아파트에 불만을 뱉은 적이 있다. 바로 3주 가까이 진행된 엘리베이터 공사... 노후된 엘리베이터를 교체한다는 건 입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타당한 일이었지만, 하필 그 당시에 우리 집이 15층이라는 사실과 아들 녀석들의 나이가 어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 혼자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어찌어찌 견딜만했으나,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할 때면 녀석들을 둘러메고 15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국방의 의무가 진작에 끝난 중년의 남자에겐 너무 가혹한 실전 훈련이었다. 군대 시절 나름 고된 부대에서 힘든 훈련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 한 번에 15층을 등정하겠다는 호기를 부려봤으나, 저질에 가까워진 체력과 무시할 수 없는 계단 수는 약해빠진 도가니를 무겁게 짓누를 뿐이었다.


아파트 층과 층 사이의 중간 지점엔 평평한 계단참이란 게 있다. 건축공학과를 전공하지 않아서 계단참의 구조적 특성과 기능은 자세히 모르겠으나, 계단을 오르내리던 시기에 계단참은 고속도로 위의 졸음쉼터와 같은 역할을 했다. 아이를 둘러업고 계단을 오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계단참에 잠시 쉬며 정상적으로 호흡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호흡을 가다듬고 나면 다시 15층을 향해 전진할 에너지가 생겼다. 오르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은 내심 우리 집이 15층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하기도 했다. 그래도 19층은 아닌 게 어디야... 뭐, 다이어트 효과라도 있겠지... 고통의 의미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Amor Fati.


지금은 엘리베이터가 말짱히 잘 돌아가고 있지만 체중 유지를 위해 가끔은 계단을 타고 집까지 오르는 날이 몇 번씩 있다. 겨울 동안 춥다는 핑계로 새벽 조깅을 건너뛰었더니 체력은 저질로 원상 복귀된 탓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계단참이 말을 건네 온다.


"다시 재입대하는 건 어때? 정말 허약한 민간인이 되어버렸구먼."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릴. 난 이제 민방위 훈련도 끝난, 국가와 군인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시민일 뿐이라고."


"보아하니 교사가 된 것 같은데 교실에 들어가면 보통 몇 분씩 수업해?"


"중학교는 45분 고등학교는 50분씩 수업하지. 그건 왜?"


"수업 종료음이 울리면 어떤 마음이 들어? 더 교실에 남아서 수업하고 싶어?"


"미친. 쉬는 시간이나 공강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데."


"내 얘길 들어봐. 파울로 코엘료 작가가 쓴 <내가 빛나는 순간>에는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정박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닙니다.'라는 구절이 나와.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는 이유는 멈춰 섬을 위해서가 아닌 또 다른 나아감, 즉 항해를 위해 숨을 고르는 것이지. 잠시 정박하면서 정비를 하고 기름도 채워 넣어야 모험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거야. 이처럼 잠시 멈춘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어. 고대 그리스 철학의 회의론자들은 에포케(epoché)라는 개념을 통해 잠시 멈춰 서는 것도 지혜라고 말했어. 너 요즘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다며? 의지는 칭찬할 만하지만 그러다 자칫 과부하라도 걸리게 되면 결국 이도저도 아닌 게 돼버려. 강박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해 봐. 억지로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능률이 오르는 건 아니거든. 잠시 책에서 벗어나 음악을 듣거나, 가족과 외출해서 영화를 보거나 산책도 하며 너를 정비할 시간을 마련해 보는 건 어때? 지금 잘 살고 있지만 자신을 거북이라 단정 짓고 가혹하게 삶의 속도를 높이진 마. 더 지쳐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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