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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목말라 있던 한 청춘은
관계의 물꼬를 틔우기 위해
남몰래 허영심을 경작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더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의 하찮음을 감추기 위해,
극적인 삶의 반전을 꿈꾸며
그가 아닌 척, 더 잘난 사람인 척,
어설픈 솜씨로 그의 삶을 포장하려 했다.
어느 정도는, 일정 순간만큼은
남의 눈을 기만하는 일이
통했을지도 모른다.
하. 지. 만.
완전범죄는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결국 정체가 들통난 그는
허영심을 기른 대가로
삶의 색채를 잃고 말았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색깔.
그는 그이기도 했고 그가 아니기도 했다.
그조차 그가 누구인지 의뭉스러웠다.
'난 도대체 누구지?'
'그'는 '나'였고, '내'가 '그'였다.
이제 '그'는
'그'라는 3인칭으로 뭉뚱그려지기보다
온전한 1인칭의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몸 안의 독소를 빼듯
마음속에 쌓여 있는
온갖 가식과 거짓을 벗어던진다.
다시 하찮아져도 괜찮다.
그게 원래 나의 모습이니까.
'그'가 아닌 '나'가 되는 것이니까.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고
나의 색깔이니까.
이제 그 색깔에
명도와 채도를 더하는 건 순전히 나의 몫이니까.
남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색깔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색깔에
더욱 풍부한 질감을 더해나가기.
이 단순한 사실을 알기까지 난
너무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으로
지난 삶을 기형적인 얼룩과
지저분한 색채로 도배했다.
부끄럽고도 당당한 고백을 하자면 나는 BMW 차주다. 가격도 싸고 친환경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BMW는 나 같은 외벌이 월급쟁이들에겐 맞춤옷과 같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감을 잡으셨겠지만, BMW는 Bus, Metro, Walking의 약자로, 사실 난 출퇴근길에 BMW를 애용하는 뚜벅이족이다. 그렇다고 집에 차가 없다는 건 아니고 BMW 수준은 아니지만, 국산 중형 승용차를 한 대 보유 중이라 연초마다 지방자치단체에 자동차세를 꾸준히 납부하고 있다. 아내가 주로 쓰긴 하지만.
보통 월화수목금요일은 공사다망하신 아내님이 손수 운전대를 잡고서 볼 일을 보고 주말 동안은 내가 가족의 운전기사 노릇을 한다. 한 가지 쓸데없는 정보를 덧붙인다면 월화수목금요일 동안 자동차 내부에 누군가(?)가 쌓아 놓은 쓰레기를 주말 동안 내가 치운다는 사실을 독자들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다.(아내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못 하니 글을 빌려서라도 마음속 응어리를 분출하고 싶었다.) 이상하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간혹 차를 앞세워 개똥 권위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찾아오기도 한다. 오십을 앞둔 중년 남성이 근사한 세단 한 대쯤 모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는 생각말이다. 이젠 난센스 퀴즈 같은 BMW 대신 실물 BMW를 몰아보고 싶은 마음도 내 마음속에서 복닥거린다. 어찌어찌 구매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유지가 될까? 내 월급에...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듯이 평상시 옷매무새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신혼 시절에는 아내와 함께 백화점이나 의류 매장을 직접 찾아가 옷을 샀지만, 이젠 그마저도 번거롭고 괜스레 꺼려진다. 이유인즉슨 좁디좁은 피팅룸에서 여러 벌의 옷을 갈아입는 작업은 패션에 무관심하고 수박이 될 수 없는 호박의 운명을 타고난 나에겐 번거로운 노동이었다. 나의 이런 게으른 성향을 간파한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의류 매장에 가는 대신 인터넷 쇼핑몰 여러 군데에 손가락품을 팔며 내 체형과 취향에 맞는 옷을 몇 개씩 골라서 사진으로 보내준다. 난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면 그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그럴싸한 날개는 사랑하는 아내가 픽해준 옷이라고 생각한다. 택배 상자를 열어봐서 옷이 마음에 안 들면 아내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구매하는 일은 가격적으로나 명분적으로나 나로선 손해 볼 일이 없다.
해가 갈수록 초임 교사의 때는 벗겨지고 중견 교사로서의 주름이 늘어나다 보니 언제까지 기능성 맨투맨 티셔츠와 후줄근한 청바지만 입고 출근할 순 없었다. 완벽하게 정장을 갖춰 입는 수준까지는 아닐지라도 직장 내에서의 지위와 품위에 맞게, 깔끔 단정하게라도 옷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던 터였다. 시장 조사 차원에서 직장 동료들의 패션을 유심히 관찰하니 패션 탐색이라는 본래의 의도는 어느샌가 휘발되고 그들의 옷에 박혀 있는 브랜드가 내 눈에 박힌다. 평소 옷에 관심은 없어도 유명한 브랜드쯤은 몇 개 알고 있었다. 한 선생님은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카디건을 뉴요커처럼 착용했다. 저런 카디건은 도대체 얼마나 하나 인터넷을 뒤적거려 가격을 찾아봤다. 맙소사, 고작 천조각일 뿐인데 십만 원도 아니고 백만 원이 넘어간다. 이래서 명품이라 부르는 거구나. 난 십만 원만 넘어가도 벌벌 떠는데...
뚜벅이족으로 출퇴근길에 오르면 원치 않더라도 다양한 차종이 레이더망에 걸린다. 요즘 마음속에 BMW가 들어앉아 있어서인지 몰라도 도로에 유독 BMW가 많이 보인다. 마침 BMW 7시리즈 한 대가 굉음과 함께 내 곁을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며 말을 건네온다.
"Guten Tag!"
"나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 독일어였어. 그냥 한국말로 해..."
"좋은 하루야. 소나타 차주 양반."
"굳이 소나타를 강조할 것 까지야..."
"지금 네 마음속에 왠지 내가 들어서 있는 것 같은데? BMW 말이야."
"부정할 순 없겠지. 왠지 뽀대나 보이잖아."
"Sieht cool aus!"
"응?"
"독일어 배웠다면서. Sieht cool aus!"
"지트 쿨 아우스?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독일어도 간단한 인사말 정도만 기억하고 있어서..."
"독일어로 뽀대 난다는 말이야. 멋있다는 뜻이지."
"그렇구나."
"내 얘길 들어봐. 우리 마음에도 눈이 달려 있다는 거 알아? 우리에겐 바깥 세계를 관찰할 수 있는 눈 말고도 마음의 눈이란 게 존재해. 사전적인 의미로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실속은 없는 걸 허영심이라고 부르지. 사람이 어떤 옷을 걸치든 우리는 그의 외관만 볼 수 있을 뿐이지 내면까지 꿰뚫어 볼 수 없어. 이젠 외부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을 열어 봐. 명품으로 치장하는 일반인 대신 명품 그 자체인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때? 너의 존재가 사람들에겐 하나의 특별한 브랜드로 각인되는 거지. 세속의 비싼 브랜드를 쫓아가는 삶이 아니라 나 자체를 명품 브랜드로 론칭한다면 사람들은 너라는 브랜드를 찾을 수밖에 없을 거야.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봐. 그 소용돌이는 언젠가는 거대한 태풍이 되어 세상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라도 지금 타고 있는 너만의 BMW는 계속 유지하길. 실물 BMW를 타고 싶은 이유도 결국 부정할 수 없는 너의 옹색한 욕심 때문이잖아? 생활에 쪼달려가면서까지 BMW를 몰 명분은 없어. 실은 명품이라는 것도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거든. 빛 좋은 개살구는 맛이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