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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풋내기와 계란프라이의 덜 익은 노른자

18

by 이현기

18. 사랑의 풍화 작용


짝사랑은

비에 젖은 장작개비에

불을 붙이는 행위와도 같다.

간절한 마음으로 불씨를 당겨보지만

불꽃이 피어나기는커녕

눅눅한 연기만 피어오르며

금세 꺼져버리고 만다.


사랑의 풋내기 주제에

완전한 사랑을 꿈꿨다.

사랑이 완벽해지기 위해선

상대에게 내 마음이 100%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에 1%라도 틈이 발생하면

그 1%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변수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70% 정도 호감이 가고

80% 정도 마음이 쏠렸던

더구나 먼저 나에게 다가워 줬던 그 사람들과는

끝내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했다.

난 우직스러울 만큼 100%만을 고집했다.

낭만주의자도 아닌 풋내기 주제에.


사랑의 결핍은 고통으로 이어지고

사랑의 충족은 권태로 이어진다.

익숙함은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간절했던 옛 마음을 사그러뜨리는 못된 습성이 있다.

지금의 아내를 향한 절박한 마음도

계절의 바람이 옷깃을 수십 번 스쳐감에 따라

서서히 풍화되고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지만

아내를 대하는 내 태도엔

점차 무례함이 끼어들었다.


'그녀와 사랑을 속살거렸던 순간을 그려 봐.'



아내와 나는 장거리 연애를 했던지라

유독 차 안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녀를 데려다주는 그 지방 도로 위에서

우리는 자주 사랑의 언어로 교감했다.

한 순간 찾아오는 침묵의 찰나에서도

우리 둘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기류가 오갔었다.


다정함이 식어버린 말만 쏟아내는 요즘.

여전히 나를 많이 사랑해 주는 아내에게

난 언제쯤이면

그 젊은 날의 아름다웠던 단편처럼

그녀를 향해

사랑해,라는 그 짧고 명징한 말을

서슴없이 꺼낼 수 있을까.


18-1. 계란프라이가 건네는 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속담을 우리 가정 상황에 대입해 보면 아들 많은 가정에 계란 끊일 날이 없다는 말로 변용할 수 있다. 고작 아들 두 명 생산해 놓은 주제에 시답잖은 유세를 떠냐며 반문할 수 있겠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출산율(2023년도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기준은 0.72명이다.)과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의 유행을 고려하면 아빠, 엄마, 아들 둘인 4인 가정은 나라와 민족의 번영과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아들만 3명(?) 키우는 아내의 고역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자녀 계획은 없다.


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 응시가 필수이듯이 우리 집 밥상에는 계란 요리가 필수다. 아내는 세상의 모든 계란을 기어이 단종시키고야 말겠다는 맹렬한 기세로 프라이든, 스크램블이든, 장조림이든, 두부 부침이든, 계란찜이든 닥치는 대로 계란 요리를 뚝딱 만들어 매 끼니 식탁에 올린다. 이젠 아들 녀석들도 컸다고 프라이는 기본 두세 개씩 먹어치운다. 통장에 들어온 월급이 금방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냉장고 신선란에 막 들인 계란도 냉기를 쐴 시간이 부족하다.


채소의 익힘이 중요하듯 난 개인적으로 계란 노른자의 익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웰던 노른자를 선호하는 남편과 레어 노른자를 선호하는 아들 녀석들 사이에서 아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레어 노른자를 식탁에 내놓는다... 어쩌다가 선심 쓰듯 혹은 실수로 노른자를 바싹 익혀주는 때가 있으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내에게 저항할 힘이 없는 나는, 잘 익은 노른자를 맛있게 먹는 백일몽을 꾸는 것 외엔 다른 탈출구가 없다. 언젠가는 한국식품영양과학회에서 '덜 익힌 노른자의 섭취가 인체에 해가 되는 세 가지 근거'라는 공식 발표가 나오기를. 물론 그 따위 발표가 나올 리 없겠지만...


손가락 컨디션도 좋고 이왕 계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외연을 확장해 보자. 과거 임용고사 공부에 한창이던 시절에 교육학을 공부하다가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을 접했다. '줄탁동시'란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선 밖에서 어미 닭도 함께 쪼아줘야 순조롭게 부화가 될 수 있다는 말로, 교육학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이상적인 교수 학습 형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난 당시 이 말에 약간의 장난기를 섞어 '학생은 역시 쪼아야 제 맛'이라는 나만의 엉뚱한 아포리즘으로 재해석하며 힘겨운 수험 생활을 버티는 사소한 활력으로 삼았다. 수험생 생활은 가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얼마 전 아내가 목이 아프다길래 내과에 가서 독감 검사를 받아봤으나 음성이었다. 이후 이비인후과에 방문하여 아내의 목 안을 정밀하게 살펴보니 편도에 염증이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은 일단 항생제를 써 가며 며칠 입원을 해보자고 권유했다. 평소에 병을 잘 견뎌 왔던 아내도 아프긴 했었는지 망설임 없이 입원을 결정했다. 홀연히 집에 남자 셋만 남게 되었고 아내 대신 내가 아이들을 전담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난 아내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내가 지독한 독감 증상에 시달렸을 때 아내는 밤낮 지극정성으로 날 간호해 줬으니 이젠 내가 아내에게 보은 할 차례다. 물론 아내의 간호는 전문적인 간호사분들이 해주겠지만 아들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아내의 짐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생각하기에 따라선 이 씨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해방의 날일 수도? 행복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아내는 육아퇴근, 난 독박육아의 운명을 맞이했다. 아내 없이 육아 및 집안일을 해 보니 주부의 일이라는 게 결단코 쉬운 것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이들 밥 챙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및 재활용 쓰레기 내다 버리기, 빨래 및 건조, 아이들 학습지 풀게 하기, 재우기 등 하루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렇게 빠듯한 하루가 아내의 일상이었다는 걸 생각하니 새삼 아내를 향한 경외의 감정이 솟아올랐다. 가정 주부의 노동이란 엄연한 성역이었던 것이다.


이틀 동안 입원 중이던 아내에게서 토요일 저녁 무렵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나가야겠으니 일요일 아침 7시에 퇴원을 하겠단다. 병원에서 집까지 도보로 10분 거리라 혼자서 퇴원 수속 밟고 집으로 오겠다며 난 신경 쓰지 말고 자고 있으란 말도 덧붙였다. 자립심 강한 아내의 용기와 결단은 가상하나, 난 그동안 아내와의 연애 시절과 결혼생활 동안 처절하게 쌓아둔 오답 노트를 바탕으로 여자의 말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엄동설한 새벽에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걸어 올 아내를 생각하니 힘겹게 귀가한 아내에게 마냥 퍼 자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만은 없었다. 난 아내를 픽업하기 위해 핸드폰 알람을 6시 30분에 맞춰놓고 잠을 청했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일도 아닌 것이다.


다음날, 아내가 퇴실하는 시각에 맞춰 병원 출입문 근처에 차를 세운 후 미리 히터와 열선을 틀어 놓았다. 이내 아내가 가벼운 행장을 손에 들고 응급실 출입구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내는 차에 타자마자 왜 왔냐며 가벼운 핀잔을 쏘았지만 얼굴에는 언행불일치적 미소가 실룩거렸다. 역시 여자의 말은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안 데리러 갔으면 어쩔 뻔... 예상컨대 족히 삼 년은 시달렸을 것이다. 당신 그 추운 계절에 아픈 나 혼자 집에 오게 하고 집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잖아!!! 안 봐도 비디오다...


아내가 복귀한 우리 가정엔 다시 활기가 돌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부터 몇 알의 달걀들이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서 숭고한 죽음을 맞이하는 중이다. 기대하진 않았지만 접시 위에 놓인 프라이의 노른자는 툭 건들기만 해도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


낙심의 기색이 얼굴에 묻어 있는 날 향해 계란프라이가 말을 건네 온다.


"내 살면서 계란 노른자 익힘 정도를 편식하는 어른은 처음 보네."


"어허, 무릇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건 미래지향적인 시류에 편승하는 거라고."


"꼴에 배웠다고 아는 척하기는. 그럼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와 관련 예술가를 들어가면서 브리핑해 봐."


"난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덜 익은 노른자도 군말 없이 잘 먹어."


"태세 전환 보소. 내 얘길 들어봐. 내부와 외부에서 같이 쪼아줘야 알에 갇힌 생명체의 부화가 수월해지듯 남녀의 사랑 역시 서로가 마음을 한데 모아야 위대한 사랑이 탄생할 수 있는 거야. 날달걀과 찐 달걀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지? 날달걀을 돌리면 잘 돌아가지 않고 금방 서버리고 말지만, 찐 달걀은 가해진 힘만큼 뱅글뱅글 잘만 돌아가지.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비밀은 달걀의 겉과 속의 상태에 담겨 있어. 날달걀의 속은 끈적한 액체 상태에 가깝고 겉을 싸고 있는 껍데기는 고체 상태라고 볼 수 있지. 이렇듯 겉과 속이 다른 날달걀을 돌리면 회전하고자 하는 고체의 운동 방향에 액체가 브레이크를 걸어버리는 격이라 날달걀은 얼마 안 돌아가고 멈춰 버려. 하지만 찐 달걀은 속도 고체, 겉도 고체인 하나의 고체 덩어리로 달걀 전체가 방해 작용 없이 같은 방향으로 합심하며 돌 수 있는 거야. 사랑도 마찬가지야.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비슷한 상태가 되어갈수록 아름다운 궤도를 그리며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이지. 날 것의 사랑도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가끔 삐그덕거릴 수 있어. 원숙한 사랑을 위해 마음의 불씨를 지펴 봐. 사랑이 잘 익을 수 있도록. 지금의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듯해서 안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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