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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이 필요한 식은 반찬과 수능 응원용 핫팩의 충고

22

by 이현기

22. 식은 반찬은 데워야 맛있다


유독 식은 반찬 투정이 심했다.

갓 만들어진 반찬은 게걸스럽게 먹어치워도

다음 끼니에 온기가 증발한 채로

그 반찬이 다시 얼굴을 내밀었을 때

반찬에 대한 애정도 함께 식어

난 그 반찬에 젓가락을 몇 번 갖다 대지 않곤 했다.


따뜻했든, 식었든

어머니의 반찬은 내 몸 안에서 열에너지로 전환되어

수험생활의 거대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나는 악당 같은 교과 지식들을 정복해 가며

꾸준히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여

갈망하던 대학 중 한 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머니의 반찬이 없는 자취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반찬을 자주 먹지 못해서 힘이 빠진 탓일까.

요상하게 삶에 대한 열정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분명 육체의 호흡을 하며 명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영혼의 호흡은 꺼져가며 삶이 위태했다.


스산한 바람이 밀려드는 가을의 저녁 무렵.

좁은 자취방 창문에 서서 내다본 바깥의 풍경.

선득한 바람결을 따라

골목길 사이사이를 자유 여행하는

쓰레기 부스러기들을 무심코 바라봤다.


예전엔 온전한 사물의 일부로써 존재했던 부스러기들은

이젠 존재감을 벗고 정체성을 상실한 채

도시의 눈엣가시처럼 거리를 떠돌았다.

난 그 황량한 정경 너머에서

그 쓰레기 부스러기와 지금의 내가

똑같다고 생각했다.


'이젠 슬슬 살아감에 불씨를 댕길 때가 되지 않았니?'


어릴 적에 그토록 외면했던 식은 반찬은

사실 현재를 살아가는 내 모습의 은유이지 않았을까.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을 것만 같은 공포감.

늘 두렵고 적막한 공기가

폐부에 스미었다.

원초적 감각과 즉각적인 생존에만 신경을 기울여 온 탓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성냥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다시 부싯돌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인생에도 겨울이란 계절은 언제든 찾아들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뒤늦게 후회하기 전에

이젠 삶의 불씨를 일으킬 때가 아닐까.

식어버린 삶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서.


22-1. 핫팩이 건네는 말


봄바람이 겨우내 잠자던 꽃나무를 간들거리며 무릇 야구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광팬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집 근처 진구구장을 즐겨 찾았던 것처럼, 나도 기아 타이거즈의 광팬으로서 지인들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를 찾았다. 전년도에 우승한 여파인지 경기장은 많은 관중으로 물들었고 겨울의 서늘한 기운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시기라 준비성 있게 핫팩을 챙겨 온 여성분들도 간혹 보였다.


하루키 작가는 진구구장 외야의 잔디 위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야구를 관람하다가 불현듯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고 싶다고 느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아홉. 운영하던 재즈 카페의 부엌에서 밤 사이 맥주와 LP를 친구 삼아 유려한 문장과 사상이 하나둘 탄생하고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세상에 나온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자 군조신인문학상에 입상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그는 아마 야구장의 탁 트인 공간에서 바람의 노래를 듣지 않았을까.


'무라카미 상, 뭔가 써 보는 건 어때? 휘잉. 재즈 말고도 세상엔 재밌는 게 썩 많다고. 스르륵.'


나는 이날 야구장에서 바람의 노래를 듣기는커녕 관중의 우렁찬 함성 소리만 듣다 왔다. 하필 가장 시끄러운 응원석 한가운데 좌석이라니. 고막이 나가떨어지는 건 둘째치고 공격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단장이 유도하는 박자에 따라 응원봉을 두들겨 대는 일은 도가니가 안 좋은 중년 남성에겐 곤혹스럽기만 했다. 나도 야구장에 가면 뭔가 하루키적 영감이 솟아오를 줄 알았지만 매정하게도 영감은 찾아오지 않았고 팀의 승리만 얻어 왔다. 직관을 가서 우리 팀이 홈런을 다섯 방이나 쏘아 올린 건 처음 목격했다. 통쾌한 추억이다. 나도 이 무미건조한 인생이란 그라운드에서 시원한 만루홈런을 날리고 싶다. 그래, 초심의 열정으로 돌아가자. 펜대를 잡은 손아귀에 더욱 힘을 그러모으자.


무엇인가를 하고자 마음먹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찾아오는 불청객들이 있다. 두려움도 그중 한 녀석이다. 과연 내가 이걸 하는 게 옳을까, 하는 막연한 의구심은 점점 쓸모없는 지방덩어리로 팽창하여 기대감 섞인 내 관념에 무겁게 파고든다. 거기에 나태라는 친구까지 문을 두드리면 애초에 계획했던 일들은 어느새 자포자기의 상태에 접어들고 만다. 지난한 세월을 돌아보니 두려움과 나태란 녀석은 꽤나 얌체같이 내 인생을 망가뜨려왔던 것 같다. 분명 경계해야 할 녀석들이다. 초가을 모기처럼 지긋지긋한 놈들.


난 요즘 삶의 틈틈이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있다. 어렸을 적엔 유명한 소설가가 되고 싶었으나 국가 부도 사태에 나라가 망신창이가 되는 바람에 애초에 원했던 국어국문학이 아닌 국어교육학으로 진로를 틀었다. 그렇게 선생님이 되었고 미인 아내와 귀염둥이 아들 둘과 가정을 꾸렸다. 썩 그럴싸한 삶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뭔가 김이 빠진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안정감은 있지만 미묘한 떨림이 없어서 아쉬운 감각. 미녀 아내와의 연애 때처럼 미치도록 심장 박동을 높이고 싶다. 온몸에 쾌의 전율이 흐르면서 불타는 생의 감각에 몰두하고 싶다. 그래서 다시 한번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세계적인 대작가인 하루키 상도 말하지 않았던가.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라고.


맘먹은 계획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새벽 독서를 잘하다가도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으면 이내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고, 그렇게 열심이던 새벽 조깅도 매서운 겨울 추위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KO를 당하곤 했다. 핑계만 늘고 있는 내 삶을 되돌아보니 다시 예전의 평범한 인간이 된 듯하여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 빌어먹을 몸뚱이와 나약한 의지여.


예전엔 서재방으로 사용하다 지금은 아들들의 아지트로 변신한 방 하나를 정리하던 중 짐 안에서 핫팩 하나를 발견했다. 아마 예전에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수능 응원 물품으로 사놨던 게 남아서 내가 살뜰히 챙겨 온 듯하다. 떠나가는 겨울을 붙잡을 길이 없기에 당장 핫팩을 뜯을 일은 없겠지만, 핫팩은 내게 자꾸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다. 난 바람의 노래가 아닌 핫팻의 노래를 들었다.


"안녕, 오랜만에 날 마주하니 군대 시절 생각나지 않아?"


"기억하기도 싫은 순간을 떠올리게 하네. 하지만 너 덕분에 임진강의 매서운 칼바람을 견디며 따스한 경계 근무를 설 수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가만 보니 네 마음속에 들어 있는 핫팩은 식어버린 지 꽤 된 듯한데?"


"마음의 핫팩이 식다니?"


"내 말은, 이미 꺼져 버린 핫팩을 왜 계속 품고 있냐고. 더 이상 발열반응이 일어나지도 않을 텐데."


"꺼져 버린 핫팩이라..."


"내 얘길 들어봐. 핫팩은 흔들어야 산화열이 발생하는 원리야. 일단은 열이 날 때까지 흔드는 수고를 기울인다면 얼마 동안의 온기가 지속되지. 시간이 지나 내게서 온기가 떨어지면 그걸 계속 품고 있을 이유는 사라지는 거야. 내가 차가워지면 과감하게 버려. 습관적으로 차가워진 핫팩은 냉정하게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려. 일종의 식은 감정 버리기 훈련이지. 그리고 새 핫팩으로 갈아 넣고 따뜻해질 때까지 계속 흔들어야 해. 너의 가슴이 계속 뛰게 하려면 마음의 불씨를 댕겨야 한다고. 삶이나 꿈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는 순간 세상은 온통 겨울의 온도로 가득할 거야. 식어버린 핫팩이 아무런 쓸모가 없듯이 꺼져버린 열정도 삶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야. 어찌 보면 삶의 마이너스라고 볼 수도 있지. 바람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계속 공기를 타고 흐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지. 너의 열정이 꺼지지 않기 위해선 계속 흔들면서 일깨워야 해. 열정이 식어버린 자리엔 새로운 핫팩으로 갈아 넣기도 하면서 말이야.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 봐. 네 안에 잠재된 뭔가가 불쑥 튀어나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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