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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May 28. 2024

100일 ○○의 효능.

간절히 바라면

그녀와 헤어졌다.

벌써 세 번째 이별이었다.

사랑이 완성된 줄로 믿었던 건 나의 미련한 오만이었다.

마지막이라는 감이 미신처럼 불길하게 스며들었다.

목사님을 찾아가 절규했다.

목사님께선 100일 기도를 제안하셨다.

정결한 육체를 기도의 제물로 드리기로 했다. 

과감히 술과 담배를 끊었다.

단군신화 속 웅녀가 돼 보기로 했다.


매일 퇴근을 하고 집과 반대쪽인 교회로 운전대돌렸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예배당에서 홀로 신과 대면했다.

오직 그녀와의 재결합이 기도의 주제였다.

그녀의 마음을 돌이켜달라고 신께 오열했다.

신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계셨다.

하루는 예배당이 잠겨 있었다.

예배당의 문고리를 힘주어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그녀를 되돌려달라고 포효하듯 울부짖었다.


기도를 시작한 지 80여 일쯤이 지났다.

그녀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내 기도가 신께 닿은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었다.

자주 데이트를 즐기던 카페에서 우린 오랜만에 조우했다.

그녀는 이제 기도를 그만두란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란다.

소용없는 짓이란다.

그렇게 그녀는 매몰차게 떠나버렸다.

그녀가 앉아있던 의자의 온기만이 날 위로해 주었다.


기도를 그만둘 순 없었다.

신과 약속한 100일을 채우고 싶었다.

이젠 그녀의 마음을 돌이켜달라는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모든 걸 감사하기로 했다.

그녀가 아프지 않게 해 달라 기도했다.

그녀가 행복하게 해 달라 기도했다.

내 마음에 평온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100일 기도를 끝마쳤다.

신은 기도의 대가로 평온한 마음을 선물해 주셨다.

마음은 잡음 없는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신께 감사했다.

이별은 아픔이 아닌 성숙을 주었다.

이별은 결핍이 아닌 충만을 주었다.

안녕, 내 사랑.

좋은 사람과 좋은 가정 꾸리길.


그 후로 십수 년이 흘렀다.


이른 아침부터 주방에서 전해지는 그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굳게 닫힌 안방문을 가볍게 뚫고 내 귀를 간지럽힌다.


"오빠, 막내아들 똥 쌌어. 엉덩이 좀 닦아줘."


그녀와 나는 좋은 사람과 단란한 가정을 꾸린 것 같다.

그녀를 잃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백여 일의 밤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오. 이젠 그대가 있어서 다행이오. 이젠 우리가 함께라 다행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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