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모으기 19. 모든 걸 신경 쓰는 건 버겁다.
나는 현대사회가 갖는 특성 중 하나가 과포화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하나의 무언가에 대한 것이라기보단, 전반적인 특성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현대사회는 과포화 상태에 달해있고 과포화 상태를 추구하며 과포화 상태를 요구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신제품의 출시 소식을 듣고 신규 서비스의 혜택을 안내받으며 새로운 이벤트를 찾아보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는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온갖 기업에서 수많은 마케팅 예산을 소진한 덕분에 저절로 습득되곤 한다.
또한 내가 발 한번 디뎌보지 못한 지역의 소식, 심지어는 지구 정반대 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까지도 사방의 모니터에서 쏟아져나오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이다. 내가 TV나 스마트폰 화면을 켜지 않더라도 길거리와 대중교통의 전광판에선 바삐 뉴스를 전달해준다. 마치 누군가 그것을 보지 않으면 큰일이 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내가 어릴 적엔 학교에서 ‘정보의 홍수’라는 단어를 배운 적이 있다. 어느 교과에서 알려준 건지는 생각나진 않지만, 인터넷은 정보의 홍수와도 같다는 비유를 접한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나 역시 인터넷에 매우 익숙해진 세대였지만, 딱히 이 비유가 와 닿지는 않았다. 아니, 와 닿지 않았다기보단 그냥 당연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어 별로 인상 깊게 생각되지 않는 비유였다.
‘인터넷은 전 세계에서 모두가 사용하니까 당연히 정보가 많겠지, 뭘 이런 걸 인터넷의 특징이라고까지 할 말인가?’
이 정도의 감상이었다.
그런 용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10년이 넘은 지금은 그 표현은 정말로 말도 안 될 만큼의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홍수’라는 재앙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정말로 대체 불가한 표현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재앙은 비정하다. 그에 휩쓸리는 한 개인이 어찌 되든 전혀 개의치 않으니까. 그 목적도 없으며 의도도 없다. 재앙은 그저 그 자신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그 비정함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설 정도다.
한 개인이 아무리 용을 쓴다 한들 재앙을 막아낼 수 없듯이, 인터넷에 쏟아내는 정보를 막아내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홍수는 그저 쏟아질 뿐이다.
정보 역시 목적과 의도를 지니지 않은 채 계속해서 쏟아질 뿐이다. 거기에 휩쓸리는 인간이 어찌 되든 그것은 재앙이 신경 쓸 바가 되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자신이 소화할 수 없는 정보에 휩쓸려서 살아가고 있다. 과포화 상태를 넘어, 과연 우리가 용해하는 정보가 있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한가지 이 비극을 극대화시키는 점은, 우리는 스스로가 재앙의 피해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휩쓸린다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이런 과포화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 유선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따르면, 2024년 9월 기준으로 대한민국엔 259개의 유선방송 채널이 서비스되고 있다.¹ 지상파 채널을 제외하고도 이 정도의 채널 수라니, TV 시청자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를 생각해보면 과연 누가 이 많은 채널들을 시청하는 것인지 참 궁금해진다.
나는 요즘엔 TV를 거의 시청하지 않지만, TV를 열심히 보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더라도 내가 보는 채널은 많아봐야 20개의 채널 정도나 되지 않았나 싶다. 저렇게나 많은 채널들이 서비스되고 있다는 것은, 곧 그 채널들을 시청하는 시청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어딘가에는 252개의 각 채널을 시청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수많은 채널에선 매일같이 새로운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고 시청자에게 전해진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몇 개씩. TV를 시청하지 않는 나로선 ‘저걸 누가 다 챙겨보나?’ 싶지만, 이름조차 모르던 프로그램이 어딘가에선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저 수많은 프로그램들도 챙겨보는 누군가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주로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들은 매주 새로운 스토리라인이 진행되는 종류의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드라마가 되겠다. 드라마를 방영하는 요일이 되면 어딘가에선 새로운 스토리 전개에 떠들썩해지곤 한다. 어떤 캐릭터가 어찌 됐다거나 무슨 새로운 복선이 등장했다거나 하는 등으로 말이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조차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끔 해당 회차의 내용을 적절하게 요약해서 설명해주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은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는 것에 적극적이다.
드라마가 전통적인 종류의 프로그램이라면, 근 몇 년 사이에 생긴 경연 프로그램과 리얼리티 예능은 이런 전통을 계승한 새로운 종류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프로그램도 매주 방영일이 될 때마다 방송 내용으로 화제가 되곤 한다.
최근(사실 최근이라기엔 조금 됐지마는)엔 단순히 시청자뿐만 아니라 언론사에서도 그 방송 내용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생겨났다. 방송이 끝날 때마다 언론사들은 인터넷 뉴스를 통해 해당 회차의 내용을 짧게 적어 기사를 내기에 바쁘다. 밤늦게 방송하는 프로그램조차도 방송 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기사가 날 정도로, 기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프로그램에 대한 소식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전달해준다.
언론사뿐만이 아니다. 사업자 신고를 하지 않은 나 같은 일개 민간인도 인터넷을 통해 방송된 내용을 널리 퍼트릴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인터넷이다. Youtube에는 빽빽한 텍스트로 썸네일을 장식한 동영상들이 몇십 개씩 올라오고, 어딘가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캡처된 방송 화면과 감상에 대한 게시물이 초 단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오히려 방송국에서 방송을 편집해서 인터넷에 업로드할 정도다. 그만큼 우리는 뉴미디어를 통해 TV와 멀어짐과 동시에 TV에서 방영되는 모든 것을 속속 알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는 내가 별로 알고 싶지 않는 내용까지도 말이다.
최근 어디를 가나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곤 하는 한 프로그램이 있다. 나도 가끔 지인끼리 만나거나 하면 다들 짧게나마라도 꼭 이 프로그램을 이야기하곤 한다. ENA와 SBS Plus에서 방송되는 ‘나는 SOLO’라는 프로그램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연인이 없는 남녀 무리가 만나, 숙소 내에서 며칠 간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연애상대를 찾아가는 내용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2021년 7월부터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무려 160회차를 넘길 정도로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은 기수라는 이름의 시즌제로 방영되고 있다. 한 그룹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새로운 인원으로 기수를 꾸려 다음 시즌을 방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2024년 9월 기준으로 지금까지 총 21기가 시즌을 마치기도 했다.
그리고 이 21기 동안의 출연진은 연일 화제가 되었다. 가상의 익명으로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신상정보가 곧바로 퍼졌고, 출연진의 소셜 미디어의 팔로워 수는 가파르게 올랐으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시청자들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화제를 화재와 같이 퍼트리는 데에는 미디어가 앞장섰다. 누군가에 의해 출연진의 사소한 과거까지 낱낱이 파헤쳐지고, Youtube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 매체에서 이를 확산시켰다. 언론사는 독자의 알권리라는 명목으로 인터넷 뉴스 상단에 이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하기 바빴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인터넷을 접하는 시간이 그 여집합보다 큰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정보들을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나 같은 사람마저도 말이다.
관심에서 시작된 가십은 어느새 열렬한 토론의 장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부터,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평가하는 기묘한 광경으로 이어진다. 나는 분명 그 출연자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토론 덕분에 그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한 몇 문장으로 축약된 답을 알 수 있게 됐다.
출연진들은 미디어와 별다른 연이 없는 몇십 년의 인생을 살다가, 단 몇 주 만에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화젯거리는 며칠을 가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방송이 끝나면 또 다른 인물에 대한 이슈로 인해 묻혀버리니까. 그렇게 떠오른 제2의 화제의 인물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진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이런 기이한 현상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의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미디어 산업에서는 시청자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어떠한 미디어이든지 시청자가 존재하는 한 미디어도 존속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시청자가 없으면 미디어 역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발굴되는 것 역시 그러한 정보를 요구하는 시청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사든 블로그 글이든 Youtube 동영상이든 소셜 미디어의 게시물이든, 조회 수가 곧 돈이 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그러한 정보를 시청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정보의 홍수 속에 휩쓸려 사라질 뿐이다.
하기야 특정 인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돈이 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기도 하다. ‘스타’(Star)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들이 등장한 것도 꽤나 오래된 역사를 지녔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스타들에겐 미디어가 따라붙기 마련이었다. 신문이든 잡지든 라디오든 TV든… 스타에 대한 소식은 곧 구독률과 시청률이 되니까.
그런 대중의 관심은 파파라치(Paparazzi)라는 새로운 직업의 탄생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파파라치의 존재는 어느 국가의 왕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 원인이 된 걸 생각해보면, 이런 스타성이라는 것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닌 것도 같다. 오늘날에도 악플이라는 사악한 관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과도한 관심 탓에 피해가 있으니 아예 관심을 갖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주장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대 미디어 산업은 관심이라는 것이 있으니 존속할 수 있다. 더군다나 타인이 무엇이 관심을 갖든 내가 그것을 강요할 권리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의구심을 지니는 부분은 과연 내가 관심을 갖는 대상이 정말 내가 관심을 갖고자 하는 대상이냐는 것이다.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외치는 미디어의 소음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눈길을 돌렸을 뿐인데, 마치 내가 원해서 시선을 고정시켜두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많은 TV 프로그램들이 소위 ‘악마의 편집’이라 불리는 기법으로 관심을 유도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관심을 갈구하는 미디어의 호소에 넘어가기 때문인 것도 같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프로그램이 연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면 별다른 생각 없이 해당 프로그램을 찾아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찾아보면 어떤 마법이라도 일어난 건지, 내가 사용하는 전자기기에서는 이와 관련된 콘텐츠를 열심히 보여주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그것에 관심이 있어 검색했다는 듯이 말이다. ‘추천’이라고는 하지만 온갖 이미지를 통해 콘텐츠를 노출시키는 점에서 이미 나는 그 콘텐츠에 완전히 함몰되고 만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나는 더 많은 콘텐츠를 시청하게 된다.
한정되어 있는 내 물리적 시간은 이미 다른 일정으로 꽉꽉 들어찬 상태다. 그럼에도 나는 그 콘텐츠에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과포화 상태가 된 것이다.
분명히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껴야 할 내가, 반대로 과포화 상태가 되며 시간에 쫓기고 부정적인 감정을 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울상 짓는 나와는 반대로 콘텐츠를 제공해주는 미디어 기업들은 여유가 생기며 웃음을 띠기 시작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우리는 자신의 여유시간을 즐기고자 새로운 콘텐츠를 탐닉하지만, 정작 콘텐츠를 접하면서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내가 무언가에 관심을 쏟으면 여유를 누리는 것은 미디어 기업들이다. 이들은 내 관심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붙잡아 둔다. 알고리즘이라는 무언가의 시스템을 통해 계속해서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쏟도록 만든다.
누군가는 자신이 관심을 가진 대상을 통해 효용을 얻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지만, 한두 시간짜리의 영화에도 시간을 소비하기 싫어 몇 분 짜리 요약 영상을 시청하며 관람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사회에서, 과연 진정으로 효용을 누렸을 시청자는 몇이나 될지 궁금해진다.
나는 이런 미디어 산업의 발달에는 새로워진 양방향 통신이라는 기술의 발전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기업은 시청자의 반응과 호불호를 즉각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더 빠르고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청자는 이를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도 또 다른 공급자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기업에서 막대한 돈을 들이며 마케팅을 펼쳤지만, 오늘날에는 소비자가 직접 나서서 마케팅에 동참을 해주니 기업으로선 참으로 편리한 시대가 됐을지도 모른다.
특히 밈(Meme)이라는 것을 통해 재생산 및 확산이라는 행위에 나서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이들도 생겨난 만큼, 양방향 통신의 등장은 미디어 산업이 제국을 이루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돈을 받으면서 해야 하는 일을 다른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해주다니 이 얼마나 편리한가? 그리고 기업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복잡한 전략을 통해 이용해 이윤을 얻는 데 가장 열심히 이다.
‘빗방울은 홍수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² 우리 역시 자신의 관심이 어떤 여파를 만들어 낼지에 대해선 딱히 고려하지 않는다. 현대의 미디어 산업은 그 복잡성으로 인해 누구 한 명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보의 홍수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터넷과 멀리해야 할까? 모든 미디어를 차단해야 할까? 도심을 떠나 산골짜기에 들어가 살아야 할까? 글쎄, 현실적으로 그것은 쉽지도 않고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어불성설일 터다.
나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이 진정으로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정보에 배분하는 것은, 티스푼으로 산을 옮기려 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우리는 관심 없는 대상은 과감하게 배제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관심을 쏟아야 하고 쏟고 싶어하는 것과, 내가 관심을 쏟을 필요도 없는 것을 구분하고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 또한 매일같이 새로운 이슈와 사건의 소식을 듣곤 한다. 그 대상은 다양하지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내가 이름을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과 유튜버 등 미디어에서의 유명인데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혼자 이렇게 생각한다.
‘음… 내가 딱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아니네.’
예전의 나였다면 시간을 내 그런 이슈를 찾아보고 의견을 쏟아내는 데 열심히 였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도,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이런 나를 보며 혹자는 ‘그것도 모르느냐.’는 등의 핀잔 아닌 핀잔을 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내가 그 일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는 식의 당위성을 부여하려 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슈에 열을 올리는 사람은 이미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나까지 그 대열에 합류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열을 올리고 싶은 이들은 한껏 열을 내시길, 나는 그럴 여유가 없어서.
내가 이러한 냉소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어도 주변에선 쉴 새 없이 정보가 쏟아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가족과 친구와 같은 지인들이 넌지시 꺼내는 이슈에 대해선 대놓고 관심 없다고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듣고 있다는 정도의 자세를 취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상대가 흥분하며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참으로 난처하다.
아직 그러할 용기도 없고 그런 것이 사회적으로 쉬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외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때가.
각주
¹. https://www.bworld.co.kr/content/realtime/realtime_list.do?menu_id=P03030100
². 미국의 작가가 한 말이라고 알려졌으나 조사해보니 정확한 출처도 없으며 문장마저도 제각각 다르다. 신원미상의 누군가 만들어낸 격언 같지만, 참 적절한 격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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