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모으기 20. 창작자의 도덕성과 그의 유산
2023년 6월, 미국의 노스캘리포니아주의 한 교도소에선 고령의 범죄자가 사망하게 되었다. 사인은 스스로 목을 맨 질식으로 인한 자살. 81세의 노인이 교도소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그 범죄자의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은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 1942~2023). 수학 교수이자 작가이자 26명을 부상입히고 3명을 살해한 테러리스트. 다른 이름으론 유나바머(Unabomber)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대학교와 공항, 항공사 등에 우편물로 된 폭발물을 배송하는 식으로 테러 활동을 전개했다. 총 18번의 우편물 테러를 통해 사상자가 발생하자 FBI와 경찰은 이 정체불명의 테러범을 잡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17년의 세월 동안에도 미국 정부는 이 유나바머¹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95년, 유나바머 테러범은 언론사를 통해 자신의 쓴 장문의 글을 출간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벌인 테러의 목적은 대중에게 자신의 글을 공개하기 위함이며, 원고를 그대로 게재한다면 테러는 멈추겠다는 뜻을 밝혔다.
테러리스트의 사상이 담긴 글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 올바르냐는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같은 해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그의 글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라는 제목을 지닌 이 장문의 에세이는 곧 모두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카진스키는 FBI에 의해 검거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수감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집필활동을 이어나갔으며, 추가로 두 개의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카진스키는 현대 기술의 발전이 인류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으며, 인류는 이 기술사회를 파괴하기 위해 새로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여기까지보면 그저 미치광이 한 명이 망상에 사로잡혀 범죄를 일으킨 것과 불과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미치광이가 끼적인 아무런 가치도 없는 글은 정상적인 사람들을 선동하는 악성 선전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은 이 미치광이가 쓴 글을 너무나도 논리정연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과학, 철학 학계에선 카진스키의 선언문이 학문적 가치가 있는 에세이로써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으며,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회운동 단체들에서도 카진스키의 선언문을 인용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²³
세계 각지 출판사에서도 카진스키의 글을 정식 출간물로 판매했고, 대학교 도서관에서도 카진스키의 글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장서에 비치해두기도 했다. 그 글이 폭탄테러에 당한 피해자들의 피로 쓰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카진스키의 글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글로 받아들여졌다.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테러는 비난받을만한 행위임엔 틀림없다. 그리고 그가 테러를 저지른 사유 역시 자신이 지니고 있던 반기술주의 사상에 의한 것이란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신의 사상을 설득시키고자 출간해낸 저작물에 대해선,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글은 부도덕한 사람이 부도덕한 목적을 지니고 부도덕한 방법을 통해 출간해 낸 창작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창착물 자체를 읽는 행위 역시 부도덕한 일이 되는 것일까? 우리는 이 창작물의 유통에 대해 윤리적, 법적 차원에서 개입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창작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는 행위 자체가 가능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사람마다 재각기 다른 답을 내리겠지만, 인류사회는 이미 카진스키의 책을 출간시키고 유통한 역사를 지나쳐왔다. 그리고 범죄자의 저서가 출간되어 인기를 끈 것은 단지 카진스키 한 명의 단편적인 사례인 것도 아니다.
1981년, 사가와 잇세이(佐川一政, 1949~2022)라는 일본인은 프랑스 파리의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거치던 중, 같은 학교의 학생이었던 네덜란드인 유학생을 살해하였다. 그는 단순한 살인을 넘어 시체 일부를 요리해 먹는 등 식인 행위마저 자행했다.
범행 후 프랑스 사법기관의 실수로 심신미약 판정을 받은 그는 불기소되어 교도소가 아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일본 본토로 귀환 후에도 프랑스에서 받은 불기소 처분 덕분에 재판을 받지 않고 퇴원하여 사회로 복귀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는 ‘죗값을 받지 않은 나쁜 놈’ 정도의 이야기겠지만, 퇴원 후 그가 사회에 복귀한 이후의 이야기는 조금 놀라운 전개로 이어지게 된다. 언론에 대서특필 된 그의 범죄는 오히려 그를 유명인으로 만들어주었다.
자신의 범죄담을 적은 사가와의 자서전은 20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⁴ 이를 시작으로 사가와는 여러 가지 소설과 기고문 등을 출간하고, 강연과 토크쇼, TV프로그램, 심지어 포르노 등에도 출연하는 등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자신의 범죄이력을 통해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이런 사가와의 행보가 부도덕하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대중들은 사가와의 범죄에 흥미를 느끼고 유명세에 기여해주었다. 혹자는 그런 범죄자가 책을 써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법 자체에 결점이 있고, 이것을 사주는 소비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의 대표적인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 1925)을 둘러싼 이슈도 꽤나 흥미롭다. ‘나의 투쟁’은 2016년부로 저작권이 소멸함에 따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책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바이에른 주 정부에서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학문적 목적 등을 위해서가 아닌 한 출간을 허용치 않아 왔다. 또한 직접 히틀러 정권에 의해 피해를 받았던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도 법적으로 출간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저작권이 소멸되고 출간된 ‘나의 투쟁’은 예상외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⁵ 비록 출판사에서 매우 긴 주석을 통해 본문의 내용을 비판하는 형태로 출간했음에도, 이 흥행은 조금 우려스러운 현상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몇몇 유대인 단체에서는 출판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고, 판매를 거부하는 서점도 생겨났다.
2024년이 된 지금까지도 나치의 후손을 자처하는 네오나치라는 세력이 존재하는 만큼, 이 책의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도 십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범죄자의 창작물’은 그 존재만으로 우리를 딜레마에 빠트려버린다. 우리는 예술활동에 대해선 누구나 창작의 자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범죄자가 이러한 예술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선 이상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범죄자이기에 그 기본권도 제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세계 각지에선 현재 교도소에 수감자에게도 재사회화의 목적으로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규정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수감자가 책을 쓰든 작곡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창작 활동 자체를 금기시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징역을 마치고 출소 후 민간인으로 사는 범죄자라면 과연 어찌해야 할지도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혹자는 이런 부도덕한 창작자가 만든 것이라면 그 창작물을 소비하는 행위 역시 부도덕하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도 같으면서도 마냥 동의하기도 어려운 이야기다.
한국 문학의 경우, 20세기 초 일제시대라는 시대상을 거쳤다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은 당시 활동하던 문학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근대문학의 태동이라 할 수 있던 시대인만큼, 문학사적으로도 다양한 문학가들의 작품은 중요하게 탐구되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귀중한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되는 작품들 중에도, 일본 제국에 협력하는 반민족적 행위를 보인 문학가의 작품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서정주(徐廷柱, 1915~2000)와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의 작품이다.
여기서 그들이 어떠한 친일 행적을 보였는지는 일일이 적진 않겠다. 그러자면 글이 너무 길어지고 오늘의 주제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친일 행동을 했다는 것은 본인들 스스로도 인정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물론 친일파 문학가라 할지라도 그들의 모든 작품이 일본 제국을 옹호하는 등 반민족적 작품인 것은 아니다. 서정주가 쓴 ‘귀촉도’(1948), ‘자화상’(1939), ‘견우의 노래’(1946) 등의 시는 그 감정과 언어적 아름다움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1934), ‘탁류’(1941), ‘태평천하’(1938) 등은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냄과 동시에 탁월한 인물묘사로 깊은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21세기 오늘날에도 교과서를 통해 정규 교육과정으로 학습되는 작품이기도 하다.⁶
이들이 친일파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이들의 작품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친일파의 작품이므로 이러한 작품 자체도 부도덕한 작품으로 취급해야 할까? 교과서를 통해 이 작품들을 배우는 것도 용인되어선 안 될 일인가?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이 작품을 소비하거나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인가?
흠, 나에겐 조금 어려운 질문이다. 너무 옛날 작품이라 와 닿지 않는다면 몇 년 사이 있었던 범죄자들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PIXAR는 재미와 감동을 모두 사로잡은 다양한 작품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개중에도 나 같은 성인 관람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 하나 있으니, 토이 스토리(Toy Story)가 바로 그것이다.
장난감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지금까지 총 4개의 영화가 상영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토이 스토리’(Toy Story, 1995)를 감독한 존 라세터(John Alan Lasseter 1957~)는 2편의 감독까지 연임하고, 3편의 제작에도 큰 역할을 수행하는 등 사실상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그리고 존 라세터는 수년간 직장 내 성추행을 저지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같은 동료 여성직원들의 신체에 접촉하고 키스하는 등의 행위를 오랫동안 이어왔다고 한다. 신입 사원이 입사하면 사내 직원들은 존 라세터를 조언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성추행에 당한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인 듯 하다.
이 성추문이 알려지며 그는 PIXAR 스튜디오에서 퇴사했으며 자신이 만든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도 전면 하차해야만 했다. 최신작인 4편은 존 라세터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 전작인 1, 2, 3편은 존 라세터가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다수의 피해자를 만들어 낸 자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에서 묘한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존 라세터가 부도덕한 인물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토이 스토리라는 애니메이션을 우리는 어떤 태도로 대해야만 할까? 좋아하거나 시청해서는 안 되는 걸까?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든 범죄자’의 소식을 듣게 되면, 우리는 일반적인 범죄자의 소식을 접할 때 이상으로 충격과 공황에 빠진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하다.
최근 배우로 활동하던 유아인(본명 엄홍식嚴弘植, 1986~)이 마약 투약 및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업계에 뛰어든 그는 다양한 영화, 드라마의 주연으로도 활약하며 배우로서 그 입지를 단단히 다져왔다. 그리고 기소되기 직전까지도 주연으로 촬영한 작품들도 있었다.
문제는 이 작품들이 촬영 완료되어 제작도 끝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주연 배우가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제작사, 배급사에선 섣불리 작품을 공개하기 꺼리게 되며 계속해서 작품 공개가 지연되기 시작했다. 마약을 투약한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할 순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인해 공개되지 못하고 창고에 잠들어 있는 작품은 영화 2편과 드라마 1편. 기사에 따르면 이들의 제작비는 총 65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⁷ 유아인의 기소는 같은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와 배우진, 기업들에겐 참으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범죄 의혹으로 인해 영화 업계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한 인물은 또 있다. 1996년 데뷔, 지금까지 총 24편의 영화를 연출한 김기덕(金基德 1960~) 감독은 2018년 성추행, 성폭행의 가해자라는 폭로를 받았다. 함께 작업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범죄를 저질러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폭로를 부정하며 홍콩으로 출국한 그는 계속해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그렇게 완성된 영화들이 한국의 극장에 상영되는 일은 없었다. 해외에서 체류하던 김기덕은 2020년 라트비아에서 COVID-19 감염으로 인해 사망하게 되었다.
당시 그의 사망소식은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 각지의 영화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김기덕 감독이 단순한 영화감독이 아닌,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른바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피에타’(2012)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3대 영화제 대상 수상자라는 명성을 얻은 만큼, 김기덕의 죽음은 국내외로 이슈가 되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대중과 평론가로부터 찬사를 받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폭로 이후에는 이런 평가 자체가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김기덕을 명감독이라고 하거나 그의 작품을 명작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지고 약간은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 때문인지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해 동안 사망한 영화인에 대한 추모 영상에 김기덕이 등장하자, 국내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김기덕 작품의 색채가 폭력적이고 성적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보니, 그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폭로는 더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나 협업한 스태프들에게 있어, 김기덕 감독과 작품에 대한 찬사가 곧 또 다른 가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에 더욱 힘이 실리기도 했다. 아직 피해자들이 살아있는데, 그들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를 거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많은 작품을 연출한 베테랑 감독인 동시에 아동 성범죄의 가해자이기도 한 로만 폴란스키(Rajmund Roman Thierry Polański, 1933~)를 들 수 있다. 1977년 아동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그는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고 미국 사법기관과 사법 거래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판사가 이를 기각하자 그는 시민권이 있던 프랑스로 도피했다.
프랑스는 자국민이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선 처벌하지 않는 속지주의 국가인 만큼 미국의 송환요청을 거부하였고, 로만 폴란스키는 유럽 국가들에 체류하며 계속해서 영화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현재까지 로만 폴란스키가 성범죄를 가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는 12명이다.
폴란스키의 작품 역시 전 세계적으로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아왔다. ‘차이나타운’(Chinatown, 1974), ‘피아니스트’(The Pianist, 2002), ‘대학살의 신’(Carnage, 2011)등의 유명작들이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받기도 하였으며, 오랜 활동으로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그의 범죄사실을 가려주지는 못했다. 2020년 프랑스 세자르 시상식에서 로만 폴란스키의 신작이 수상하자, 시상식에 참가했던 다른 배우와 감독 등 영화인들이 불평을 쏟아내며 자리를 떠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수상소식이 알려지자 폴란스키에 대한 수상을 취소하라는 시민들의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 다른 대중예술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음악 업계에도 범죄를 저지르는 창작자들이 존재한다. 특히 힙합씬의 경우, 범죄를 저지른 아티스트만 하더라도 리스트로 작성해야 할 정도이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스트릿 문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는 만큼, 갱스터 생활을 하다 음악 업계로 들어온 뮤지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작사한 곡에 직접 범죄를 자랑처럼 늘어놓기도 하고, 라이벌 갱단 출신 아티스트를 적대시하고 디스하는 등 스스로가 범죄를 저지른 것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힙합을 즐기는 매니아들은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당연시하기도 한다.
가끔은 이것이 과해져 아티스트가 범죄에 연루되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라디오와 TV, 인터넷 등 미디어에 나오고 유명세를 얻고 막대한 부를 이룬 이들이 범죄와 밀접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든다.
락과 메탈의 경우에도 경범죄부터 중대 범죄까지, 뮤지션이 저지른 범죄 목록이 짧진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마냥 힙합 장르가 이상한 것이라 치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든 창작자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팬들은 어떤 감정에 휩싸이게 될까?
2018년 버닝썬 게이트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 음악계에도 한차례 돌풍이 휘몰아쳤다. 특히 그 사건의 주범인 승리(본명 이승현李昇炫, 1990~)가 매우 유명했던 그룹 BIGBANG의 맴버였기에 더욱 여파가 컸다.
승리는 이 사건으로 총 9개의 혐의를 인정받으며 징역형이 확정되었고, 자신이 속했던 그룹에서도 탈퇴하게 됐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BIGBANG이라는 그룹의 활동도 조금은 주춤해졌다.
하지만 버닝썬 게이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도, 승리가 소속했던 BIGBANG의 노래는 여전히 식당과 카페 등에서 스피커로 흘러나오곤 한다. 당연히 승리의 목소리가 담긴 채 말이다. 한때 국민 아이돌이라는 명성까지도 얻은 그룹인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BIGBANG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나도 학창시절엔 BIGBANG의 곡을 수도 없이 들었고 지금도 그들의 곡이 흘러나오면 자연스레 귀가 기울여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곡을 들으면 승리와 버닝썬 게이트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런 묘한 감정이 들 때마다 나는 과연 BIGBANG이라는 그룹과 그들의 음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이처럼 창작자와 창작물의 관계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세세한 의견의 차이는 존재하긴 하지만, 크게 분류해본다면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의견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창작자와 창작물을 별개로 구별할 수 없다. 창작자의 사상과 기호는 창작물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에 이 둘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보아 평가하여서는 안 된다.
창작자와 창작물은 별개로 구별되는 존재다. 창착자 개인의 일생을 통해 창작물을 비평하는 것은 그 가치를 폄하하는 행위이다. 창작물은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만 한다.
이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작가주의 비평이 주류 아닌 주류가 된 오늘날의 시대상을 감안해보면, 창작자가 어떠한 인물인가는 창작물을 감상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특히 창작자가 아직 생존해있는 인물이라면 소비자가 지불하는 돈이 그 창작자의 재산이 되는만큼, 소비자들은 자신의 소비에 대해선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창작자는 창작자 이전에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일원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시대상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몇천 년간 인류사회는 노예제도가 당연시되었던 만큼, 많은 창작자들 역시 이 역사를 거쳐왔다. 근대 이전의 창작자들, 특히나 특권 계층에 속했던 인물들도 이런 노예제도의 혜택을 누린 인물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처럼 계급, 성별, 인종 차별이 차별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던 인물에게 현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조금 넌센스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근 들어 작품의 도덕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Disney+의 경우, 1900년대 초반 제작된 콘텐츠에 대해 경고문을 부착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피터팬’(Peter Pan, 1953), ‘덤보’(Dumbo, 1941), ‘정글북’(The Jungle Book, 1967)등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그 대상이다.
이 작품들을 관람하고자 하면 본편에 앞서 해당 작품들은 특정 인종과 문화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경고문을 내보인다. 작품에 대해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그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에게 맡기겠다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작품들은 한때 Disney+의 서비스 콘텐츠에서 아예 삭제된 적도 있었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HBO MAX에서는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를 서비스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었다. 노예제가 만연했던 당시 미국 남부를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곳처럼 묘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며 한때 영화의 DVD가 불티나게 팔리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결국 이 영화는 후일 경고문과 함께 당시 시대상을 설명하는 부록 영상을 포함하여 서비스되는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⁸
이처럼 오늘날 보기에 창작물 내에 비도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면, 소비자와 업계는 이러한 요소들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과거라 칭하기도 애매한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움직임은 상당히 미비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현대의 소비자 의식에는 확실히 변화가 생겨났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런 변화가 업계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결론 내리기엔 아직은 그 변화의 시간이 너무 짧다. 나도 전문가가 아닌 만큼 미래에는 어찌 되겠다는 둥 업계 관계자들의 최근 동향이 어찌 하다는 둥의 예측을 감히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런 변화가 창작자와 창작물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데에는 조금 고려해볼 만한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사실 내가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 것도 앞서 살펴본 다양한 사례를 접하며 고민해 본 것을 시작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나도 아직까지는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무어라 답을 내리지 못했다. 평형 저울이 무엇을 올려놓느냐에 따라 기울기가 바뀌듯이, 나의 스탠드 역시 무슨 작품과 무슨 소식을 접하느냐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들어 더욱이 좋아하는 것이 많아지고 즐기는 콘텐츠가 다양해지는 나이기에, 언젠간 내가 좋아하던 것이 도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심히 고민되는 대목이다.
그때의 나는 과연 당당하게 내가 좋아하던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반대로 그것을 열렬히 옹호할 수 있을까? 혹은 이도 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태도로 말을 아끼려 들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가 되어봐야 알 수 있을지도.
그래도 그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나는 계속해서 고민해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명의 글을 쓰는 작가가 된 나라는 존재도 고민의 대상이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 역시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고 죄 하나 짓지 않은 인간은 아니다.
먼 미래에 내 글을 좋아해 준 사람에게 나라는 작가는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될까?
그때까지의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이 좋아해 줄 수 있는 떳떳한 한 명의 작가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독자들은 과연 오늘 내가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까?
미래는 미지수라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점은 조금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그 미지수의 미래를 그려본다.
각주
¹. University(대학교)와 Airport(공항)가 범행 대상이라는 점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². Alston Chase, "Harvard and the Making of the Unabomber", The Atlantic, 2000
³. John H. Richardson, "Children of Ted Two decades after his last deadly act of ecoterrorism, the Unabomber has become an unlikely prophet to a new generation of acolytes", Intelligencer, 2018
⁴. 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30636
⁵. https://www.segye.com/newsView/20160111003727
⁶. https://www.mk.co.kr/economy/view.php?sc=50000001&year=2022&no=792410
⁷.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127072
⁸. https://www.mk.co.kr/news/culture/9394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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