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모으기 21.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
요즘 들어 고민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내 책장의 한편에 즐비한 몇몇 개의 CD에 관한 것이다.
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공연에 대한 블루레이 디스크들로, 내가 가끔 큰마음 먹고 비싼 돈을 주고 산 녀석들이다.
문제는 이 블루레이 디스크 중 생각보다 오래된 물건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구매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 2016)의 블루레이 세트로, 2018년에 구매한 물건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이 시간동안 그 블루레이 디스크로 영화를 본 적은 한 네댓 번쯤 됐을 거다.
그 뒤로도 관람 후 깊이 감명받은 무언가를 발견하면 블루레이 디스크를 구매해 보존하고자 해왔다. 어떤 건 구매 후 한 번도 감상해보지 않아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아무튼 이 형형색색의 블루레이 제품들은 지금도 내 책장을 장식해주고 있다.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이 블루레이 디스크들이 언젠가는 수명을 다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블루레이 디스크를 포함한 CD 형태의 광학 저장매체들이 모두 그러하다. 이들의 작동원리가 어찌하든 간에 결국은 물리 법칙에 따르는 물체인 만큼, 시간이 흐르면 어떤 방식으로든 훼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저장매체들의 수명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누군가는 10~20년 내외라 하고, 누군가는 100년까지는 보존된다고도 한다.¹ CD라는 매체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이 불과 40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직까진 그 한계수명이 어디인지는 명확히 증명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의견을 모으는 지점은 아무리 잘 보관한다고 해도 100년을 넘는 수명은 보장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100년이라, 퍽 까마득하고 상상이 잘 되지 않는 기간이다. 난 고작해야 100년의 1/3도 채 살지 못했으니 이 먼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어찌보면 우스울지도 모른다. 보관만 잘한다면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진 구매한 블루레이 디스크들을 몇 번이고 돌려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단순히 이 블루레이 디스크들이 재생되지 않는 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블루레이 디스크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저장매체에는 수명이 있다. 그 어떤 것도 시간이 지난다면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지고 만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이 ‘끝’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나도 걱정된다.
이 세상에는 정보를 저장하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정보가 디지털적인 방법으로 저장되고 있다. 내가 구매한 블루레이 디스크도 디지털 광학 장치를 통해 만들어지고 재생된다. 이런 물리적 매체가 아닌 정보들은 대부분 데이터의 형식으로 컴퓨터 속에 저장된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저장하고 불러올 수 있는 오늘날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어땠을까? 디지털 기술은 물론, 문자라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의 조상들 말이다.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원시적인 정보 저장방법으론 자연물에 기록하는 방법이 있다. 간단하게는 흙이나 모랫바닥을 파서 거기에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했을 테고, 조금 복잡한 방법이라면 염료를 사용해 동굴 벽면에 그림을 남기거나 나무 등을 깎아 조각을 만드는 식의 방식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런 원시적인 방법에서 시작하여, 우리 인류는 점토판, 파피루스, 죽간, 피지, 귀갑, 석판 등 다양한 매체를 발전시켜왔다. 종이의 보급 이후로는 주로 활판인쇄의 방식으로 대량의 정보 저장이 가능해졌고, 컴퓨터가 발명된 이후의 현대사회는 디지털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인류처럼 일일이 손으로 한 획씩 그으면서 정보를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다. 정보를 저장한 매체를 옮기는 것도 도구의 힘을 빌려서 겨우 해낼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오늘날엔 한 손에 들어오는 스마트폰 하나로도 엄청난 용량의 정보를 나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보의 수명은 과거보다 더 짧아졌다.
가장 유명한 동굴벽화 중 하나인 프랑스의 라스코 벽화는 약 기원전 17,000~15,00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² 이 벽화를 그린 누군지 모를 조상들조차도, 자신들의 그림이 만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의 후손들이 보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빌로니아인들이 남긴 점토판은 기원전 2,000년 경 제작되었고, 이집트인들이 남긴 비석은 기원전 1,200년 경 제작되었다. 이 물리적 저장매체들이 우연적인 자연현상에 덕분에 몇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우리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은 사뭇 놀랍기도 하다.
그에 반해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저장매체들은 그 수명이 길다고 하기는 어렵다. 인화된 사진은 약 100~200년간 보존된다. LP 등의 레코드는 최대 100년까지 보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전통적인 매체라 할 수 있게 된 자기 테이프는 약 30~50년까지 보존된다는 조금 짧은 수명을 갖고 있다.
이런 물리적 저장매체의 한계 때문에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여 백업하는 방식도 개발되었다. 요즘에는 나 같은 민간인도 아날로그 형식의 매체를 데이터화하여 백업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방법도 간단하고 다양해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데이터화된 정보들도 영원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아날로그 형식의 저장매체들보다도 그 수명이 짧다. 하드디스크는 약 10년 내외이며, USB 등이 이용하는 플래시 메모리 저장방법 역시 몇만 회만 이용할 수 있는 사용 한도가 정해져 있다.
특히 소장이 아닌 구독의 형식으로 무언가를 소비하는 것이 보편화된 요즘의 사회는 데이터 정보들의 수명을 더욱 단축시키고 있다. 우리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중지한다면, 소비자 역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이 돈 내고 즐긴 음악,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의 소유권은 결국 기업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CD를 구매하면 그 물리적 수명이 다할 때까진 언제나 즐길 수 있는 것과 달리 말이다.
이처럼 디지털 데이터는 정보 저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아날로그적인 저장 방식에 뒤질 수도 있다. 다만 디지털 데이터는 복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번 데이터 파일화시켜두면 복제하여 또 다른 매체에 저장해두거나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요즘 IT 대기업들은 온라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여, 유저가 원하는 데이터를 자신들의 서버에 대신 저장해주고 있다. 물론 이것도 공짜는 아니지만.
결국 무언가를 온전히 저장하고자 한다면 지속적으로 백업시키고 복제하여 여러 가지의 사본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한다. 번거롭지만 이것 이상으로 확실한 보존방법은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그래도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딜레마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조금 다행이지만.
자, 그럼 우리는 무언가를 보존하기 위해선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만 할까? 오래 유지될 수 있는 아날로그? 복제와 저장이 편리한 디지털? 정보 저장만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가들은 이 두 방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우리 인류는 기나긴 역사 동안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세계 각국은 문화유산과 예술작품의 보존과 교육을 목적으로 박물관이라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에 관심 없는 이들도 그 이름은 알고 있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은 무려 약 72,000 제곱미터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대략 61만 점, 그 중 전시하고 있는 작품은 3만 5천 점 정도로 한 작품당 10초씩 감상한다고 하더라도 다 둘러보는 데만 약 100시간이 소모된다.³ 루브르 박물관이 1년간 소모하는 예산은 약 2.7억 유로로 한화 3510억 원에 이른다.⁴ 몇천 킬로미터 떨어진 상태에서 상상해보아도 그 거대함이 대충 짐작되는 수치들이다.
박물관에 보존된 문화유산과 예술작품들도 시간이 지나면 물리법칙에 의해 조금씩이나마 훼손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박물관은 단순히 창고에 물건들을 쌓아두는 것을 넘어,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각 작품들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전문 보관시설을 이용한다. 이미 훼손된 작품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손길을 통해 복원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보존’에만 특화된 분야를 발전시켰을 정도로, 우리는 정보 저장에 힘써왔다. 그리고 박물관 같은 공공시설을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 그 정보를 전달해주고자 하는 욕구도 지니고 있다. 미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정보를 보관해두는 사업을 시행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미국 의회도서관(United States Library of Congress)은 2002년 이후부터 국내녹음자료보존법(National Recording Preservation Act)에 의해 매년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음성자료를 영구 보존자료 대상으로 선정해 저장해두고 있다. 여기에는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부터 유명한 연설, 음반, 중계방송 등 다양한 음성자료가 포함된다. 미국은 오늘날의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음성자료를 보관하여 후손들에게도 전달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이러한 영구등재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비슷한 것으로 미국은 1989년부턴 국립영화보존법(National Film Preservation Act)에 따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영화에 대해서도 영구보존을 해왔다. 그리고 ‘도서관’이라는 그 본분에 맞게 미국 의회도서관은 엄청난 양의 도서도 보관 중인데, 이 자료들에 대해선 다양한 파일 형식으로 디지털화하여 보관해두고 있기도 하다. 반대로 데이터 자료인 소셜 미디어 Twitter의 모든 글을 물리적 매체로 저장하고자 한 시도도 있었던 등, 디지털 자료에 대해서도 보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1977년 심우주로 발사된 보이저(Voyager) 1호와 2호에는 LP 디스크가 탑재되어있다.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라고도 불리는 이 디스크는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 문명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레코드에는 다양한 물리, 수학적 기호가 세겨져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다양한 지구의 사진과 각 국가의 인사말, 음악, 시 녹음본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보이저호와 만난 외계 문명은 이 골든 레코드만 가지고도 지구와 인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특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골든 레코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나긴 수명을 지니고 있다. 골든 레코드는 보이저호가 손상되지 않고 계속 항해만 이어나간다면, 이론상 10억 년 동안 작동될 수 있다.⁵ 어쩌면 그 수명이 다할 때쯤엔 우리 인류는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정도의 시간이다.
이러한 양상을 보면, 우리 인간은 단순한 소유욕 때문에 무언가를 저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도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이 머나먼 미래, 미지의 누군가에게까지 전해지기를 바라는 영속성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최근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가끔씩은 한 세기 이후의 후손들에게까지도 이것의 가치가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행복은 나누라고 했던가?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면서 행복했던 만큼,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접하며 행복함을 느끼길 바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에 큰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낀다.
오늘 날엔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진 저장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은 존재한다. 내가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것들, 오직 내 기억과 감각에만 남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3주 전 난 해외에서 열리는 한 공연을 보기 위해 잠깐 출국을 했었다. 여행이라 하기도 애매한, 순수히 공연만을 보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도 첫 경험이었다.
그렇게 공연을 관람한 나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은 현실과 다른 세계에 속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공연장을 나서자마자 이제는 두 번 다시 내 인생에서 저것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했다.
그때 내가 보았던 광경, 귓가를 스친 소리,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피부를 타고 올라온 소름들. 비슷한 것을 어떻게든 접할 수 있겠지만, 완벽히 똑같은 그것은 절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3주나 지난 지금 와서도 벌써 그 감정과 느낌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가능만 하다면 이 기억을 뽑아내어 온전히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 1994)에 나온 대사처럼, 기억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적어서 어딘가에 저장해두고 싶었다. 아니, 가능만 하다면 무한대로.
물론 그 유통기한이 다 할 때가 되면 나는 이 세상에 없겠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과 그 기억만큼은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세계에 남았으면 하는 기분이다. 내가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다마는 그럼에도 나는 부디 그랬으면 한다는 소망이 있다.
몇주 전 쓴 글에서 나는 평소 플레이하던 게임이 서비스 종료된다는 소식에 슬퍼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서비스 종료일은 바로 오늘이다. 내가 이 글을 마무리 짓고 몇 시간만 지나면, 나를 포함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두 번 다시는 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게 된다.
나를 비롯한 게임의 팬들은 약 두 달 동안 다 함께 게임 내 콘텐츠를 백업해왔다. 누군가 시키거나 돈을 준 것도 아니지만, 우린 다들 자신이 좋아했던 것에 대한 애정으로 몇 시간씩 노력을 들여 우리만의 방주를 만들어왔다.
물론 이 방주가 완벽한 것도 아니고 백업한다고 해서 게임을 다시 플레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백업에 힘을 쓴 것은, 자신이 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느꼈던 감정들과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일단 나는 그러했다. 열심히 즐긴 게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년간 내 일상에 분명히 존재해왔던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게임이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나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도 했다. 물론 내가 용납할 수 없다고 해서 이미 결정된 서비스 종료를 바꿀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의 노력은 할 수 있으니 나는 최대한 열심히 백업을 진행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도 나는 오늘과 같은 이별의 순간을 수도 없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나의 기억을 남길 수 있을까? 책장의 블루레이처럼 무언가 물적인 실체로 만들어, 원할 때 다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뒤돌아서면 휘발되고 마는 나의 감정과 기억의 소멸을 어떻게든 늦출 수 없을까?
SF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기억 통조림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만 이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했다. 내가 그나마 만들어낼 수 있는 글이라는 매체를 활용해서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무언가의 평론이나 감상 같은 것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그냥 보고나서도 홀로 ‘이런 것이 참 좋았지.’ 정도로만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법은 나의 감정과 기억들을 오로지 순간에만 머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글로 기록을 남긴다고 해서 감정과 기억이 영원히 남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의 미래에 내가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기록을 통해 그 편린이라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결심을 한 나는, 3주 전 관람한 공연에 대한 감상을 따로 글로 남겨 저장해두었다. 이 글 덕분에 언젠가 내가 공연을 그리워하는 때가 오면 조금의 기억은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자기만족에 불과한 행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예 순간의 기억으로 소멸하도록 놔두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기억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글도 남겨보기로 결심했다. 이 또한 자기만족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글을 남기기로 했다. 그냥 나 혼자만 보는 글이 될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보는 글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어떠한 형태로든 남겨두고 싶다.
당연히 이 방법들로도 내 기억을 영원히 남겨둘 순 없다. 그러니 보존에 힘쓰는 동시에 즐기는 순간 자체에도 집중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의 순간을 만끽하여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두고 싶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하지만 끝이 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다. 나는 그 시간을 최대한 즐겨두고 싶다.
각주
².http://www.ancient-wisdom.com/francelascaux.htm
³. RapportMusée du Louvre, "d'activité 2019", 2019
⁴. https://aflouvre.org/louvre-endowment-fund/
⁵. Neil deGrasse Tyson, "Cosmos: A SpaceTime Odyssey", 2014
[커버 이미지 정보]
Copyright 2018. Elev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