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모으기 13. 이별에 대처하기
얼마 전,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았을 때 조금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던 무언가와 이별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누군가 사망한 것은 아니다. 어느 사람과 헤어지게 된 것도 아니다. 나는 반려동물도 키우지 않는다. 그저 내가 몇 년째 플레이하던 게임 하나가 서비스 종료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어찌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사소한 일이기도 하다. 게임 하나가 서비스 종료된다고 해서 누가 죽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의 기로를 가를 엄청난 사건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엄청난 우울감에 시달렸다.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은 오후 4시경이었다. 그 후 세 시간 정도를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서비스 종료 안내 공지가 올라온 X(구 트위터)에서 다른 유저들의 반응을 살펴보기만 할 뿐이었다.
세 시간 정도 울었으면 괜찮아졌겠거니 했지만, 그날은 밥도 영 입에 들어가지가 않았고 밤에 잠도 오지가 않았다. 두 시간 정도 뒤척이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무언가를 떠나 보낸다는 것이 이러한 것일 줄은 그날 처음 알게 된 것도 같다.
2019년 4월. 지금으로부터 5년하고 반년 조금 되지 않은 과거다. 내가 그 게임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이렇게 적고 나니 참 긴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시간이면 대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 졸업하고도 취직을 했을만한 시간이니까. 물론 그 시간 동안 게임과 함께한 나에겐 그만한 시간 체감은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는 게임을 엄청나게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하루에 길어야 2~3시간, 짧으면 10분 정도밖에 플레이하지 않았으니까.
게임은 기본적으로 부분 유료 서비스를 했기에 즐기는 것 자체에는 돈이 들지도 않았다. 내가 게임에 결제한 비용은 5만 원 내외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금전적으로는 매우 저렴하게 재미를 얻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나 같은 유저의 존재가 서비스 종료의 원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보면 그 게임은 내게 엄청나게 소중한 존재조차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서비스 종료 소식에 왜 그리도 슬퍼한 것일까? 열성 팬도 아니고, 그 게임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것도 아니고,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게임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런 슬픔을 느낀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 외에도 게임을 플레이했던 다른 유저들 역시 게임이 서비스 종료된다는 것에 슬퍼하며 이별을 부정하고 싶어했으니 말이다.
특히 게임 제작에 직접 참여했던 스태프들은 더욱 그러했다. 다들 해당 공지에 짧지는 않은 글로 그간 게임에 함께했던 소감을 밝혔다. 나처럼 ‘슬프다.’며 우는소리를 하기보단, ‘즐거웠다.’며 긍정적인 반응으로 서비스 종료 소식을 받아들이는 반응이었다.
하긴 그 게임이 사라진다고 지구가 망하는 것도 아니라 우울해질 필요까진 없겠지. 그것을 알면서도, 스태프들의 글을 읽자 다시금 나는 눈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렇게 눈물을 흘릴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은 주체하기 참 어려운 감정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슬픔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스물 하고 여덟이라는 나이를 먹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 이 게임이 가까운 시일 내로 서비스 종료한다는 것은 진작에 예상하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낮아져만 가는 게임의 유저 수와 매출, 더딘 업데이트, 악화되어가는 BM 등, 언제 서비스 종료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와 함께 플레이하던 유저들 역시 게임이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반응을 내비치곤 했다. 다들 농담삼아 게임이 서비스 n주년을 맞을 때매다 “이게 n년이나 하네.”, “올해도 어떻게든 버텼네.”, “종료할 거면 빨리하고 새로운 게임이나 내라.”등 자조섞인 소리나 내뱉곤 했으니까.
그러기에 팬덤 사이에선 다들 이 게임이 오랫동안 서비스하진 않을 것이라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되돌아보면 이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5년 이상을 서비스한 것도 참 장수한 것 같다.
아무튼 그만큼 나도 언젠가 게임이 서비스 종료한다고 해서 놀라진 않을 예정이었다. 그저 ‘올 게 왔구나.’하며 무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도 상정하고 있었음에도,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 뿐만 아니라 고약한 농담을 주고받았던 다른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몇 시간이고 눈물이 나고 슬프다는 글을 올렸고, 지난 몇 년간의 게임 플레이를 추억하며 진심으로 슬퍼하는 반응이었다.
해외 팬들 사이에선 서비스 종료 전에 게임 내 모든 데이터를 아카이브 형태로 남기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와 동시에 별도의 팬 웹사이트를 개설, 지난 5년간의 게임에 관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에 있다. 한국에서도 Youtube와 다른 매체의 형식으로 게임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그만큼 게임의 서비스 종료를 안타까워하고 게임이 존속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별이라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그리고 비현실적이기도 한 것 같다. 모두가 언젠가는 이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별이라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질 때도 그런 것 같다. 이별의 징조라고 해야 하나? 얼마 전까진 서로 좋아 죽던 연인과의 관계가 소홀하고 어긋난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서로 연락이 뜸해진다든가, 데이트를 하더라도 조금 무심해진다든가, 대하는 태도가 약간 달라졌다든가 하는 순간들이.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징조를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징조들이. 그런 징조를 인지하게 되면 누구나 ‘우리 곧 헤어지겠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두 사람 모두에게 떠오를만한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다고해서 그 순간 곧바로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는 경우는 드물다. 서로 이 관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끌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곧 이별하리라는 것을 알고 한편으론 원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별의 순간에 처하기는 꺼려하는 이상한 버릇을 지닌 것도 같다.
아무리 이별을 예상하고 대비하더라도, 막상 이별의 순간을 겪고 나면 이상한 감정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드디어 이별했다고 마냥 후련하고 속이 시원하고 행복하기만 한 연인들은 아마 없지 않을까? 정확히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이 들 것이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다가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만큼 실제의 순간이라는 것은 한편으론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헤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고 부단히 대비해왔더라도, 막상 찾아오게 되면 버거우면서도 실제감이 없으니까.
단순한 헤어짐으로도 우리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사별과 같은 비가역적이며 영구적인 이별은 어떠하겠는가. 장례식에 방문할 때마다 유족들에서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도, 어쩌면 그들이 느낄 감정에게서도 눈을 돌리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고령의 노인이나 심각한 질병을 앑는 환자의 가족들도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로 이별이 찾아온다는 것을. 최대한 많은 추억을 남기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하더라도, 이별을 완벽하게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도 같다.
제아무리 열심히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이별이 실제로 다가온 순간에는 누구나 적어도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애인과 가족 같은 매일을 함께 한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있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을 안겨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슬퍼하게 된 것도 하루에 몇 분씩 함께하던 게임과의 일상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작 게임 하나에 몇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런 내가 다른 이별의 순간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현재로써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슬픔이라는 건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분류의 감정이라고도 생각한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많이, 그리고 자주 겪더라도, 그것에 대한 내 반응은 무뎌지지 않으니 말이다. 아마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이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고작 게임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때도 나는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에겐 너무 버거운 사실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에게도 이 사실은 버겁기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정말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게임의 서비스 종료 시각은 다가오는 9월말. 약 2달의 유예기간이 있는 셈이다.
과연 나는 이 2달의 시간 동안 어떻게 이별을 준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실제의 순간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이 언젠간 다가온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다. 지금으로선 그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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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2017. Nik Shulia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