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라는 조언

헛소리 모으기 18. 우리는 효율적으로 살 수 있을까?

by 모두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다들 살기 팍팍하다고들 한다. 물가는 너무 올랐고 월급은 쥐꼬리만 한데 돈 나갈 일만 a많다고 투덜대기들 일수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같은 취미를 즐기는 이들끼리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모임 인원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즐겨 이야기하는 주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제테크이다.

모임원들은 무슨 이상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얼만큼의 푼돈을 모았는지 자랑하고 어디에서 어떤 저렴한 상품권이 나왔다는 정보를 공유하고는 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수익률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자랑아닌 자랑을 하며, “이 돈으로 적금이나 들껄.”하는 자조섞인 농담을 나누기도 한다.

나는 워낙 게으른 성격이다 보니 남들처럼 착실히 포인트를 모으고 주식의 시장가를 상시 확인하는 등의 부지런한 일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때마다 그냥 “아, 그러셨군요.”하는 등의 심심한 반응을 보이는 것 정도가 전부다.


요즘 그런 모임원들이 관심 갖는 주제는 부동산이다. 특히 다들 전세나 월세를 통해 다른 소유주의 집을 빌려 생활하는 만큼, 요동치는 집값엔 민감하게 반응하고들 한다. 개중에도 월세를 사는 사람들은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에 큰 스트레스를 느끼는 듯하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니, 그냥 숨 참고 죽어버려야겠다는 불길한 불평을 늘어놓고들 한다.


khay-edwards-uMwq36_p0ts-unsplash.jpg Copyright 2023. Khay Edwards


올해 7월 기준, 서울 원룸의 평균 월세는 73만 원이라고 한다.¹ 물론 지역별로 차이가 크고 특이값도 포함되어 있기에 모두가 매달 73만 원을 지출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요즘 월세 50만 원 이하의 원룸조차 찾아보기 힘든 것을 생각해보면 이 평균값이 마냥 허상은 아닐 것도 같다.

올해의 최저 시급이 9,860원이고 이를 주 5일 근무의 월급으로 환산하면 206만 740원임을 감안해보자. 월세가 사회초년생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거기다 매일 3끼의 식사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수도광열비와 같은 부가비용도 지출하는 것을 생각하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문장을 마냥 비유라고 여길 수도 없을 것 같다.

여기에다 인플레이션, 국제정세, 고금리까지 겹치며 정말 살기 팍팍해진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상의 여파 때문인지 무지출 챌린지니 거지방이니 하는 ‘절약’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유행들도 생겨나고 있다.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소비


engin-akyurt--P4xE2G1ejc-unsplash.jpg Copyright 2023. engin akyurt

사람마다 생각하는 ‘쓸데없는 데’는 각 개인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나름의 통념을 도출해보자면, 의식주와 같은 필수적인 것을 제외한 소비들은 ‘쓸데없는 것’에 속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 연극 등의 문화생활을 한다든가, 비싼 회원비와 레슨비용을 내고 운동을 배운다든가, 딱히 없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잡화를 산다든가하는 소비들 말이다.

확실히 이런 행위들은 돈을 쓰면 쓰지, 돈을 벌어다 주는 행위들이 아니기는 하다. 애당초 ‘소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만큼 이런 것들을 즐기기 위해선 돈을 지불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런 소비들은 하지 않더라도 생존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유행하는 영화 한 편 안 본다고 해서 내가 죽기라도 할까? 운동은 그냥 신발을 신고 길가에서 뛰기만 해도 건강에 충분하다. 꾸밈에 들어가는 잡화들은 단순히 내 시각적 만족을 충족시킬 뿐, 생산성이 없는 활동이다.


‘그러니 이런 쓸모없는 데에 돈을 쓰지 말고, 그 돈을 아껴 진짜 필요한 데 사용하자. 아니면 그 돈으로 적금이나 투자를 해서 돈을 더 늘려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는 데 한 발짝 다가서자.’

어쩌면 요즘의 절약 유행은 이런 생각들이 사회 구성원에게 큰 공감을 산 덕분에 발생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유행 때문일지, 요즘은 나의 소비뿐만 아니라 타인의 소비에도 굉장히 엄격한 사회 분위기가 된 것도 같다. 특히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블로그, YouTube 등의 1인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진 만큼, 우리는 자신의 소비를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동시에 무엇이 유행하고 무엇에 사람들이 돈을 쓰느냐는 것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내가 알기 싫더라도 뉴스가 매일같이 소식을 알려주는 요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대체 어디에 돈을 쓰는가를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자기가 돈을 쓰지 않기로 한 ‘쓸데없는 데’가, 다른 사람들이 돈을 쓰는 주된 대상이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저 사람들은 대체 저런 데에 쓸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아니, 그 전에 왜 저런 데에 돈을 쓰는 거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접한 사람들은 조금 과격한 반응이 나오게 된다. 그 소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다.


alexander-grey-qtYxt46As60-unsplash.jpg Copyright 2018. Alexander Grey

최근에 유행한 먹거리만 보더라도 그러했다. 근 몇 년 간 마라탕과 탕후루 등, 매운맛과 단맛 같은 한가지 맛에 특화된 먹거리가 유행한 일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13개였던 마라탕 프랜차이즈는 2022년 106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무려 2년 사이에 715%라는 엄청난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² 한 탕후루 프랜차이즈는 2020년 16개에 불과했던 점포 수가, 2023년엔 420개로 늘어났다고 한다.³

해당 기간에 COVID-19으로 인한 외식업을 위축시키는 요소가 존재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두 음식의 성장세는 참으로 놀랍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유행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며 그 유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 몰이해는 그 소비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몰고 가는 반응을 만들어냈다. 건강에 좋지 않다거니 위생이 좋지 않다거니 비싸다거니 하는 것이 논리였지만, 결국에는 이 소비 자체가 쓸데없는 과소비라는 것이 주된 비판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유행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최근 20, 30대의 젊은 당뇨 환자가 늘어났다는 기사를 타진하는 언론도 늘어났다. 기사 제목에 마라탕과 탕후루를 기재함으로써 이런 현상의 책임이 그러한 유행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덤으로 말이다.


이런 먹거리를 즐긴 이들은 어느새 불필요하고 불건전한 소비를 한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비난의 대상은 단순히 먹거리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았다. 장비와 레슨에 비싼 비용을 내던 골프 입문자들, 좋아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치열하게 표를 구하던 취미인들, 귀여운 디자인의 캐릭터 상품에 쉽게 지갑을 열던 매니아들까지. 그 산업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돈을 지불하던 소비자들은 모두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는 사람들로 취급됐다.

그리고 미디어는 이들에게 긴 활자를 할애하기보다, 몇 글자의 단어로 범주화하는 방법을 통해 앞날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의 자기만족을 위해 쓸데없는 헛돈이나 쓰는 멍청한 집단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 세대’라는 경계가 상당히 애매모호한 범주를 통해서 말이다.


‘쓸데없는 소비’가 죄악시되다시피 하는 것은 어쩌면 절약과 겸손 등을 미덕으로 여기는 오래된 사회 풍조의 영향도 있을지 모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쓸데없는 생각 접어두고.”같은 명령 아닌 명령조의 표현이 기득권층의 사랑을 받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으로 효율과 쓸모에 집착하는 집단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럼 대체 효율적이고 쓸모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산성이 있고 인생에 도움이 되며(이 ‘도움이 된다.’는 것의 정의도 상당히 애매하지만) 가격마저 저렴한 무언가라는 광의로 생각된다. 참으로 좋은 것이다. 저 조건들을 충족하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마땅히 돈을 지불하는 효율적인 소비를 행할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니까!

그러나 과연 이것들이, 진정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일까? 나는 이에 대해선 조금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정말로 쓸데없고 비합리적인데 자원을 소비하는 이상한 습성을 지닌 생물이기 때문이다.


ruchindra-gunasekara-GK8x_XCcDZg-unsplash.jpg Copyright 2020. Arno Senoner

우리는 과잉생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공장에선 매일 소비하는 것 이상의 생산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마트에선 매일 과잉생산된 제품이 폐기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과거에 비해 확실히 물적으로 풍족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상 때문인지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은 굶주림과 절박함을 모른다고. 그래서 쓸데없는 데에나 돈과 시간을 쓴다고. 한마디로 '배부른 것들'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굶주리고 절박해지면 정말로 모든 자원을 100%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쓸모있는 데에만 사용할까? 극한의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러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인간은 그만큼 합리적으로만 행동하는 동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까마득한 과거의 조상들이 써내려 온 역사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 아직 역사를 기록할 문자조차도 발명되지 않은 석기시대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하루하루가 삶이 아닌 생존의 연속이었던 당시에도 쓸데없는 것은 존재했다. 벽화, 조각상, 건축물, 장식품 등 예술품의 존재가 그것이다.

생각해보아라. 오늘 사냥의 실패가 당장 내일의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며,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나의 목숨을 위협하는 짐승과 벌레와 질병, 다른 부족원들이 존재하는 당시의 일상을. 수렵채칩 집단으로써 보존할 수 있는 식량은 길어봐야 며칠을 넘지 못하는 그런 현실에서, 대체 어떻게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mm8200130409_08883_original-1-1536x864.jpg Ancient Art Archive 2021. Stephen Alvarez

동굴벽화를 그리기 위해선 손기술이 좋은 사람이 갖가지 재료를 가지고 불빛에 의존해 몇 시간이고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동물 그림 하나를 그리는 데에도 집단은 막대한 인력, 자원,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기회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더욱 두드러진다. 벽화를 그리지 않고 그것을 수렵채집에 동원한다면, 적어도 한 마리의 소동물과 한 아름의 과일을 더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손기술이 좋은 사람이니 더 뛰어난 사냥도구나 생활용품을 만들어내 보다 윤택한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동굴벽화를 그린다고 해서 어디서 고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모닥불이 저절로 피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낭비이자 사치에 불과하다. 현대인이 관점에선 고작 동굴벽화 같은 것에 자원을 소비하는 건 너무나도 이상하게 보인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우리의 조상은 이런 쓸데없는 것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했다. 스페인에 위치한 알타미라 동굴은 그 길이만 약 300m에 달하며, 내부에는 수백 개의 벽화가 있다. 이만큼 큰 동굴을 벽화로 채우기 위해선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의 노동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런 동굴 벽화의 목적과 기능에 대해선 여러 이론이 존재한다. 누구는 그것이 역사적 기록이라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것이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마술적 요소라고도 한다. 그 진위가 어떠하든 간에, 동굴 벽화는 그 존재만으로도 먼 과거부터 우리 인류가 예술 활동을 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리고 동굴 벽화가 특정 지역에만 발견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시간대의 다양한 지역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의 공통된 예술 양식이기도 하다. 즉 까마득한 과거의 인간은 집단적 예술 활동을 하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도 예술가와 같은 전문화된 비생산 인구가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런 예술들은 평소엔 생산 활동을 하던 이가 남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최초로 전문화된 비생산 인구가 출연한 것은 원시종교가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시기였다. 종교적 제의의 방법을 알고 그를 시행하는 사람, 오늘날 성직자라 불리는 계층의 등장은 집단 내에서 물적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이의 존재를 공인하게 된 사건이기도 하다.

이들 성직자는 성스럽기 때문에 속세와 분리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피와 땀을 흘리는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것이 용인되는 존재였다. 집단 내에 이런 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다른 조직원들이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조상은 스스로가 더 많은 노동량을 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성직자의 존재를 인정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의존하기까지도 했다.


etactics-inc-zi_yijqpRDs-unsplash.jpg Copyright 2022. Etactics Inc

이런 비생산 인구의 존재는 인류가 문명사회를 이루면서 더욱 다양해지고 더욱 많아졌다. 성직자를 필두로 철학자, 화가, 시인, 음악가 등 정말 먹고사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런 전문직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 과거의 국가와 사회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풍족한 자원과 더 고도화된 시스템을 지녔기 때문에 그런 직업들의 존재를 용인할 것일까? 지금의 우리보다 굶주리면 더욱 굶주렸지, 더 풍족하게 살진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생산 직업들을 없애고 모든 사회 구성원을 먹고사는 일에만 투입했던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직업들은 21세기의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2022년 전 세계 음반산업은 262억 달러의 산업규모에 이르렀다고 한다.⁴ 한화로 약 35조 원에 달하는 규모이다. 동기간의 영화산업은 약 974억 달러(한화 126조 원)⁵, 게임산업은 약 2,500억 달러(한화 325조 원)의 산업규모를 달성해냈다.⁶

전 세계의 종교 인구는 약 71억 명에 달한다. 개중에는 26억 명의 기독교인, 20억 명의 무슬림, 10억 명의 힌두교인, 5억 명의 불교인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⁷

2024년 9월 기준, 전 세계 모든 기업을 시가총액 기준으로 줄 세웠을 경우, 상위 10개 기업 중 ‘쓸모없는 것’을 주력 상품으로 파는 기업은 총 5개다. 소위 말하는 빅테크 기업들 말이다. 인간이 진짜 생존 자체에 필요로 하는 에너지 산업과 제약 산업의 기업은 단 두 개 뿐이다.⁸

우리는 명품 패션 아이템 하나 없어도 인생을 사는 데 정말 그 어떠한 지장도 없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사치채 산업을 선도하는 LVMH 기업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도는 전 세계 재벌 순위의 1, 2위를 다투는 인물로 유명할 정도로 명품 패션 아이템은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사람들은 쓸데없는 것에 돈을 사용한다. 역사적으로도 많이 사용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용하고 있다. 반대로 쓸모 있고 효율적인 것에만 돈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말로 살면서 책, 영화, 공연, 음악, 게임과 놀이, 종교 활동, 담배와 술 등 아무런 생산성도 없는 것을 소비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누구든 나름의 방식으로 나름의 형태의 ‘쓸데없는 것’을 소비해왔을 것이다.


우리가 민간인이기에 이런 여유가 있는 것이라기엔, 극한 환경에서도 우리 인간은 쓸데없는 것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특히 극한 환경에서 생존해서 임무 수행을 위해 고된 훈련을 받는 사람들, 이를테면 군인과 우주비행사도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것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도 병사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야밤에 적에게 색적당할 위험이 있음에도 병사가 담뱃불을 붙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NASA가 1년에 226억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맛있는 우주식량을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⁹ 우주비행선 내에 굳이 비효율적인 공간을 만들면서까지 편의 시설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특수직업 종사자들은 말도 안 될 만큼의 가혹한 훈련을 받았고 극한 환경에 적응되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초인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쓸데없는 것을 추구하게 되고, 정부를 이 쓸데없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아낌없이 자원을 투자한다.

정신적 안위를 위해 제공되는 것들이지,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곧 이런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정신적 안위를 위해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특수 목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도 이런 한계를 갖고 있는데, 나 같은 민간인들은 어떠하겠는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다.





'쓸데없는 것'의 기준


michael-weidemann-oGhTfu1UrOY-unsplash.jpg Copyright 2018. Michael Weidemann

이처럼 인간은 ‘쓸데없는 것’을 추구하는 존재다.

아무리 먹고살기 어렵고 삶이 팍팍하고 가난하다고 불평할지라도, 우리는 어디에선가 쓸데없는 데에 돈과 시간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쓸데없는 데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을 죄악시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는 사람들마다 ‘쓸데없는 것’에 대한 기준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게임에 돈을 쓰는 것을 쓸데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다 디지털 데이터로 이루어진 허상의 존재에 불과한데 왜 여기에 돈을 쓰느냐는 것이다.

그는 그럴 돈이면 자기가 좋아하는 어느 브랜드의 위스키를 몇 병은 살 수 있다며, 게임에 돈을 쓰는 사람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내가 아는 누구는 게임회사에 다니며 스스로도 게임을 좋아하는 게임 매니아이다. 한 번은 내게 자기 스마트폰에 몇 개씩이나 설치되어 있는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준 적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느 게임에 얼마만큼의 돈을 지불해서 어떤 아이템을 얻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게임에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쓰냐는 내 질문에, 그는 외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아낀 식비로 게임에 투자하는 거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나는 이 두 사람을 30분 정도 밀실에 가둬서 서로 대화시켜보면 재밌겠다는 이상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과연 그 30분 안에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글쎄, 내 생각엔 아마 두 사람 모두 30분 내내 싸우기만 할 것 같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쓸데 있는 것과 쓸데없는 것의 분류법을 지니고 있다. 이 분류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쓸데없는 것이 어떤 이에겐 인생의 모든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째서인지 다른 사람의 소비에 엄격해지며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라.’는 조언을 스스럼없이 내뱉곤 한다.


나도 이런 버릇을 지녔던 한 명의 사람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대학교 졸업 전, 후배 중 한 명이 학교를 다니며 온라인 방송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그냥 일반적인 방송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를 내세워 실제 자신 대신 방송을 진행하는 버츄얼 유튜버(Vtuber)의 형식으로 말이다.

당시 나는 그것이 그저 특이한 취미활동 정도에 불과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후배와 대화를 나눠보니, 그는 졸업 후에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에 매진하고 캐릭터 상품을 만드는 등의 더 큰 사업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요즘 Youtube가 유행이더라, 넌 목소리 좋으니 잘 될 거다, 성공하면 한 턱 쏴라 등의 덕담을 건넸다. 그러나 속으론 ‘에휴, 인터넷 방송은 이미 레드오션인데 그런 거 해서 뭐하겠다고? 거기다 가상의 캐릭터 같은 걸 누가 좋아하고 봐주겠어? 현실을 모르네.’등의 악담을 홀로 내뱉곤 했다.


restmb_allidxmake.jfif 현재 가장 규모가 큰 버츄얼 유튜버 전문 기업 니지산지는 수백 명의 유튜버가 소속되어 있다.

하지만 졸업 후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Youtube의 구독자 수도 ‘만’ 단위를 넘긴 지 오래됐고, 팬 커뮤니티도 활발하며, 캐릭터 상품도 잘 팔리고 있었다. 나 같은 인간은 평생 누려보기 힘들 인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퍼부었던 악담과는 정반대로, 오늘날 버츄얼 유튜버 산업은 매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 쓸데없는 데 누가 돈과 시간을 쓰겠느냐는 내 생각과 달리, 세계 각지에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버츄얼 유튜버에 기꺼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쓰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 산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딱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요소가 매력적인 건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버츄얼 유튜버 산업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만큼 감히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판단하고 재단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영 쓸데없어 보이던 것도 지금은 모두가 이목을 집중하는 사업이 되지 않았는가?

지금 내가 보기엔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것도 미래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빅테크 기업들도, 설립 당시엔 남들이 쓸데없는 사업이라고 비웃던 무언가로부터 시작했다.


keila-hotzel-R8tIWN5616g-unsplash.jpg Copyright 2017. Keila Hötzel

오늘날엔 매일같이 새로운 종류의 사업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그 모든 기업들이 승승장구해서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 무언가가 혁신을 불러올 수도 있는 일이다. 그 미래를 감히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쓸데없는 것에 비난을 날리는 행동 역시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이 보기엔 쓸데없겠지만, 그것은 그저 자기 혼자의 주관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설사 쓸데없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기꺼이 그 쓸데없는 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데 돈과 시간 좀 쓰지 말라고 윽박지른다고 해도, 그건 혼자 벽보고 소리치는 바보짓에 지나지 않다. 우리 인류가 쓸데없는 것을 추구해 온 몇만 년의 역사를 부정한다고 해서 그 역사를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아무리 소리높여 고함쳐도 사람들은 쓸데없는 데 돈을 써왔고 지금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쓸데없는 데 돈과 시간을 쓰는 것.

오늘의 인류는 이 쓸데없는 것 덕분에 지금의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쓸데없는 것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각주


¹.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0827_0002863788

². https://www.news2day.co.kr/article/20231213500168

³.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3/09/27/MMMDXJ3E5BBXRBVDQWZMOZC4EY/

⁴. https://www.ifpi.org/ifpi-global-music-report-global-recorded-music-revenues-grew-9-in-2022/

⁵. SKYQUEST, "Movies and Entertainment Market Size", 2024

⁶. Fortune Business Insight, "Gaming Market Size, Industry Share & COVID-19 Impact Analysis", 2024

⁷. https://krim.org/%EC%84%B8%EA%B3%84-%EC%84%A0%EA%B5%90-%ED%86%B5%EA%B3%84-2023/

⁸. https://kr.tradingview.com/markets/world-stocks/worlds-largest-companies/

⁹.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221455242200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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