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교육과정을 마친지는 한참 되었으며 대학교를 졸업한 지도 꽤 된 지금, 내게 새로운 것을 학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누구나 다 새로운 걸 배워보는 데 이게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관성적으로 사는 버릇을 지닌 인간이기에, 하루 아침 새에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는 건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것을 접한 지도 몇 달이 되어가는 요즘, 이들의 진척상황과 내가 느낀 바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테니스
Copyright 2018. Renith R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배워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평소 피트니스만 하다 보니 뭔가 새로운 근육의 움직임과 협응을 사용하는 운동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는 쇳덩이를 드는 것만 반복하는 건 꽤나 지겹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스포츠 종목을 검색하고 무얼 배워볼지 한참을 고민해보던 중, 구기종목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공에 내 몸을 맞춰 움직여야 하니 운동량도 꽤 되고 전신의 근육을 사용하게 될 거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구기종목에는 영 재능이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몇 되지 않았다. 초중고를 막론하고 체육 시간만 되면 축구를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관례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수비수의 포지션만 배정받았다. 공과 접촉하는 시간이 짧고 정교한 슛이 요구되지 않으니, 운동신경이 부족한 내겐 가장 적합한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내가 공을 차면 이상한 방향으로 엇나가기 일수이고 그럴 때마다 다른 10명의 팀원에게 머쓱해 지곤 했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독자라면 알겠지만, 이런 체육 활동은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 후로 나는 팀 스포츠, 그것도 공을 이용하는 종목들엔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내가 할법한 구기종목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대중적인 축구와 농구, 야구, 풋살 등은 어려워 보였다. 운동 신경이 부족한 내가 이제 갓 입문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개인 스포츠뿐인데... 아쉽게도 구기종목에서 개인 스포츠는 흔치 않았다.
골프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볼링과 당구는 너무 정적인 스포츠라 목적에 맞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라켓 스포츠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탁구와 배드민턴도 있는 라켓 스포츠에서 왜 하필 테니스를 선택했는가? 여기에 대해선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내가 테니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귀족 스포츠라는 이상한 별명, 깔끔하고 넓은 코트, 매너를 중시하는 문화, 높은 리그 상금, 소위 말하는 MZ 문화 등은 내게 일종의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너무 속물스러운가? 죄송하게도 나라는 인간이 이렇다.
Copyright 2017. Kelly Sikkema
아무튼 그렇게 테니스를 배우기로 결정하고 곧바로 거주지에서 가까운 테니스 레슨장을 찾아갔다.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찾아갔다가 레슨 비용에 한번 놀라고, 제대로 테니스를 즐기기 위해선 최소 반년이 걸린다는 이야기에 또 놀랐다.
그래도 이런 것에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를 반복하던 내 인생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곧장 레슨을 등록했다. 곧이어 20만 원의 거금을 지불하고 테니스 라켓까지 구매한 건 덤이다.
그렇게 무작정 시작한 테니스는 처음엔 고역이었다. 코치가 아무리 친절하게 가르쳐주어도 내 몸은 그것을 소화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샷을 치는 것은 고사하고, 라켓에 공을 맞추는 것도 버거울 정도였다.
처음에는 원래 다들 그렇다는 격려에도 몰려오는 자괴감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 정도로 몸을 사용하는 데 서툰 사람이라는 것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주중마다 볼머신을 이용하고 레슨 시간에 땀을 뻘뻘 흘리다 보니, 한 달쯤이 된 시점에선 어느 정도 공을 치고 네트를 넘길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몇주를 고생하고나니 처음의 좌절은 어디 갔는지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집에선 Youtube 등으로 다른 사람들이 설명해주는 정보를 듣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명의 테니스 플레이어가 되었다는 자만을 산산이 부순 것은 랠리를 시작하면서였다.
바로 옆에서 던져주는 공과, 네트 건너편에서 라켓으로 보내오는 공은 완전히 다른 공이었다. 지금까지 익혀온 스윙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천천히 공을 보내줘도 내가 휘두르는 라켓엔 스치지도 않았으며, 겨우 받아쳐도 네트에 걸리거나 코트 라인을 완전히 벗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결국 무심코 한쪽 귀로 흘려 넘겨버렸던 코치의 지적사항을 다시금 되새겨야만 했다. 내가 테니스를 배우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운동이라는 것은 마냥 몸만 사용하는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팔을 휘두르는 단순한 행위도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생각해야만 시행할 수 있었다. 수초 내에 어떤 속도로, 어떤 각도로, 어떤 방향으로 휘두를 것인가를 생각하고 결론을 내야만 겨우 한 번의 행동이 가능했다.
물론 천재라는 분류의 사람들에겐 있어 그런 과정 없이 자연스럽게 가능하겠다만, 나 같은 범인에겐 저 또한 연습을 거쳐야만 가능한 행동이었다.
아무튼 이런 미련한 짓거리도 반복하다보니 어느 정도는 랠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서브와 발리에 대한 기초도 배울 수 있었으니, 코트에 서서 테니스를 플레이하는 것 자체는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Copyright 2019. J. Schiemann
나는 곧 스마트폰에 각종 테니스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같이 테니스를 칠 사람들의 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1년 미만의 경력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을 찾아 곧장 가입했다.
실제 코트에서의 플레이는 레슨장에서의 그것과 또 다른 차원이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던가? 상대방 실력이 좋든 내 실력이 좋든, 결국 한 쪽이 부족하면 정상적인 플레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매우 높은 비율로 내가 부족한 쪽이었다.
하는 수 없이 레슨 기간을 연장하고 주 1회는 모임에 나가 테니스를 치려고 노력했다. 몇달 간 노력아닌 노력을 하고나니 실제 코트에서도 어느 정도의 랠리가 진행되었고, 정식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게 테니스 경력 6개월 차를 조금 넘긴 지금은 모임에 나가 간단한 랠리 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주된 활동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지금도 서브를 제대로 못 넣기 때문에 내가 서비스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어처구니없고 재미없는 게임이 되기 십상이다. 그럴 때마다 상대방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졌다. 그래도 그런 쪽팔린 과정을 겪다 보니 점차 서브의 성공률이 높아져 갔다.
체득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은 자세와 똑같은 방법으로 라켓을 휘두른다고 생각하지만,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을 확인해보면 확연히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의 궤적과 속도는 직접 코트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테니스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너무 거창하게 말하긴 했다만, 체득이라는 과정을 어떻게해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체감한 바를 언어로 치환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나는 이번 주말에도 코트에 나선다. 나 같은 재능 없는 인간도 무언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스포츠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스트레칭
Copyright 2017. Artem Beliaikin
나는 만성 요통을 지니고 있다. 가끔 자세를 잘못 잡으면 허리와 골반이 접히는 부위에 찌릿한 고통이 느껴진다.
처음엔 허리디스크라도 터진 게 아닐까 걱정돼 병원을 찾았지만, 다행히 척추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진단해준 의사는 골반이 앞으로 쏠린 듯이 회전된 상태의 골반 전방경사 증상이 보인다며 물리치료 및 운동을 통해 관리하기를 권장해주었다.
골반 전방경사라는 것은 나도 처음 듣는 증상이었기에 찾아보니, 장시간의 좌식생활이 큰 원인이 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음...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과연 나는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앉아서 보내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나름 제대로 된 자세로 앉고 운동도 하니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요통이 생길 정도로 악화되어 있을 줄이야. 20대의 나이에 벌써 허리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골반 전방경사 환자의 주된 특징으론 햄스트링이 약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나는 유연성과는 꽤나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좌전굴이라고 하던가, 무릎을 쭉 편 채로 허리를 숙이는 동작도 내겐 매우 고통스러운 동작이었다. 아무리 팔을 쭉 뻗어도 발목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유연성을 늘리는 것이 요통을 완화해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트레칭이라는 것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물론 스트레칭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며 경험 또한 갖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동 전 준비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단체로 허우적거리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적절한 비유일진 모르겠지만 헤엄과 수영의 차이 정도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는 스트레칭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Youtube와 네이버 블로그의 스트레칭 관련 콘텐츠
그러기에 우선은 인터넷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포털에 검색하니 여러 병원 및 필라테스 강습장에서 발행한 블로그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각도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덧붙인 덕에 보면서 대충이나마 따라 할 순 있었다. Youtube는 블로그보다 더 편리했다. ‘요통’, ‘스트레칭’ 같은 키워드만 입력해도 음성까지 첨부된 동영상으로 상세하게 알려주니 말이다.
습득한 정보를 갖고 여러 가지 스트레칭 동작을 조합해 나름대로 매일의 스트레칭 루틴을 만들어봤다. 여기에 모든 동작을 상세히 적을 순 없지만 대충 장요근, 발목, 햄스트링, 골반의 유연성을 늘릴 수 있는 동작들로 구성했다.
그렇게 방 한구석에 요가 매트를 펴두고 만든 루틴을 시도해봤다. 한 번의 시행에 걸리는 시간은 약 15분. 정확한 시간을 측정해본 건 아니지만, 스트레칭을 하며 듣는 음악의 길이를 생각하면 대략 저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칭을 마치고 주저 누워버린 시간도 그 정도 되었다.
Copyright 2019. Anupam Mahapatra
처음으로 시도해 본 본격적인 스트레칭은 정말 고됐다. 모든 동작에서 온몸이 떨리고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꽉 깨문 입술 사이론 신음이 흘러나왔다. 더 고된 것은 그런 고통을 겪고도 단 하나의 동작조차 제대로 해내지도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내 몸이 이렇게나 뻣뻣할 줄이야. 흔히들 각목 같다느니 뚝딱거린다느니 하는 비유들이 참으로 탁월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고르고 나서야 겨우 욕실로 향할 수 있었다.
이것을 매일 밤마다 해야 한다니, 참으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다음 날 밤이 되었을 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했는데 오늘은 쉬고 내일 하면 되지 않을까?’
참으로 미련하고 게으른 사고방식이지만, 동시에 편리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나는 지난 몇십 년간 이런 사고방식으로 살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 스트레칭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변화를 추구하기에 시도해 본 것이 아니었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했다간 변할 게 별로 없다는 것은 뻔했다. 그러기에 나는 스트레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요가 매트를 펴고 그 위에 올라섰다. 어제 했던 것과 똑같이, 하지만 더 유의하면서 동작을 수행했다.
그렇게 약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가끔 밤늦게 귀가한 날이나 다른 운동으로 하체 근육과 관절이 무리한 날에는 스트레칭을 하지 못했지만, 그 외의 날에는 되도록이면 루틴을 수행했다.
그 결과가 조금은 나타났는지 전에 비해 요통이 느껴지는 정도와 빈도가 한결 줄어들었다. 두 다리를 쭉 벌렸을 때 양 발끝의 거리가 더 늘어나게 되었다. 허리를 숙였을 때 발목을 넘어 발가락까지 손이 닿게 되었다. 스트레칭을 하기 전에 비하면 내 몸의 유연성은 확연히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요가 매트를 펼칠 때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곤 한다. 고작해야 하루에 15분, 내 건강을 위한 루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스트레칭을 하는 것을 버거워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건강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임 같은 것은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으면서 말이다.
이런 스트레칭뿐 아닌 다른 활동을 보더라도,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생물에게 있어 참으로 어려운 행위인 것 같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MBC, '퀸연아! 나는 대한민국이다', 2009.05.17 중 한 장면
프로 피겨스케이터였던 김연아 선수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훈련 전 스트레칭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거지.”
그냥 한다라, 참으로 심플한 대답이다. 그와 동시에 그것을 하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는듯한,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이라는 듯이 들리기도 한다.
내가 아직까지도 스트레칭을 하기 전에 한숨을 내뱉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동작이 어렵고 고통스러운지를 알고 기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투영되었을지도.
나도 언젠간 이렇게 ‘그냥 하는’것이 가능한 순간이 오게 될까? 잘은 몰라도 가능해지려면 적어도 몇 년은 필요할 것 같다.
외국어
Copyright 2021. Joshua Hoehne
이러한 육체적 활동 외에도 정신적으로 새로 시작한 활동이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그것이다.
나 역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인 만큼 영어라는 외국어는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하다. 물론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준은 되진 않지만(나 역시 길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무얼 물어봐 오면 어버버거리고 만다.), 그래도 아주 무지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겐 제2외국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뭔가 특별한 동기가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배워두면 언젠가는 써먹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자, 그럼 뭘 배워보는 게 좋을까?
일단 한국이라는 국가에 사는 나로선 이웃국가인 일본어 혹은 중국어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여행하기도 가장 편리하고 같은 동아시아인이라는 분류로 묶이는 만큼 언젠가는 사용할 일이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언어의 벽 이상으로, 문자의 벽은 너무나도 두터웠다. 히라가나니 가타카나니, 생소한 수십 개의 새로운 문자를 배우는 것은 조금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 수만 하더라도 수만 개에 달하는 한자를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의지가 박약한 나답게 이웃국가의 언어는 손조차도 대보지 못했다.
흠...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문자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문득 스페인어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로마문자를 사용하고 사용 인구도 몇억에 달하니, 내가 생각했던 ‘배워두면 언젠간 써먹을’ 언어에 적합하지 않은가? 대충 검색을 해보니 교재나 강의 등도 다양해 한국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언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왜 하필 스페인어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막연하게 제2외국어를 찾다가 ‘이 정도면 배워볼 만 하겠는데?’라는 생각에 고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와 돌아보면, 과거의 내가 갖고 있던 이런 생각은 참으로 교만이었다.
스페인어는 너무 어려우니까!
스페인어 학습에 두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아무튼 나는 곧장 서점으로 가 스페인어 독학용 서적을 구매했다. 누가 쓴 것인지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목차 정도만 보고 고른 것이 둘, 문법책 하나와 단어책 하나였다.
그리고 핸드폰에는 두 개의 언어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둘 다 무료로 이용이 가능한 덕분에 여기에는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적당히 준비를 마치고 무작정 혼자 배워보기로 했다. 물론 강의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뭔가 본격적으로 공부하면 스스로가 먼저 지쳐 나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독학을 해보기로 했다.
a, b, c, d... 아하, 스페인어도 영어랑 똑같은 알파벳을 쓰는구나! 발음은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배워볼만 하다. 모든 단어에 악센트가 있고 이를 표기하는 기호도 있다라... 이런 건 몰랐는데 그래도 나름의 규칙성이 있으니 괜찮다. 모든 명사가 성별에 따른 구분이 있다고? 그리고 이에 따라 관사와 동사 변형이 있다고? 머리가 아파진다. 주어가 몇 인칭이느냐에 따라 동사가 변형되고, 이 동사 변형도 각 어미에 따라 변형되는 방법이 다르며 불규칙성 변형도 있다고...? ... 한숨만 나왔다.
Copyright 2015. Unseen Studio
스페인어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어려웠다. 어쩌면 내가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외국어를 배워보겠다고 설친 것일 수도... 그래도 이미 책도 사고 애플리케이션도 설치해버린 거,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그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모든 사람이 모국어를 전문적으로 교육받지는 않는다. 오랜 기간 일상 속에서 접하면서 익숙해지는 것이 더 큰 학습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도 스페인어에 먼저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우선 매일 서적으로 한 챕터씩의 진도를 나가기로 했다. 그래 봤자 열 페이지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와 동시에 새로운 단어는 단어장용 수첩에 따로 적어두고 매일 빠르게 눈으로라도 훑어보는 방법을 사용했다.
언어 학습 애플리케이션은 매우 고맙게도 매일의 학습량이 정해져 있었다. 두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사용하면 약 20분 정도의 학습시간이 소모됐다. 이 애플리케이션들은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학습 방법을 사용했다. 단어와 문장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발음을 들려주며 따라 읽게 하고, 간단한 퀴즈를 풀어보는 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매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도 스페인어를 접하기로 했다. 내 스마트폰의 언어 설정을 스페인어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언젠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한 방법이었는데, 내가 실제로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러한 방법들을 동원해 하루 한 시간이 조금 되지 않는 시간 동안은 스페인어를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학습의 성과인 것일까? 서적에서 새로운 문장을 보더라도 조금은 대충 어떤 것인지를 유추할 수 있게 됐다.
정확히는 문장의 구조가 보이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문장에서 주어가 무어고 동사가 어떤 형이며 그 목적어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유추가 된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단어가 많기 때문에 그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단어를 검색하고 동사가 어떻게 변형 된 형태인지 따져보고 생략된 주어에 대해 고민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따져보고 나서야 문장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문장을 익히는 데에는 못해도 1분이 소모된다. 하지만 아예 그 방법도 모르고 시도도 못해보는 것에 비하면, 꽤나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래 봤자 난 아직 스페인에 사는 유아보다도 못한 스페인어 실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Copyright 2017. Fab Lentz
그럼에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 차츰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고통스러웠고, 아직도 많이 버겁긴 하지만,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쾌감도 있다.
이런 외국어 학습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꾸준히 하는 것이다. 테니스도 그렇고 스트레칭도 그렇듯이,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마냥 쉬운 행위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하루 몇 분? 30분씩 걸리는 식사도 하루에 세 끼씩 하는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곧바로였다.
어쩌다 빼먹는 날이 있으면 ‘내일은 해야지.’라고 다짐하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나라는 인간은 어쩜 이리도 유약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다짐이 깨지는 날이 있고 게으름에 져버리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제도 나는 테니스 레슨을 받으면서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오늘 오전에도 애플리케이션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하며 지루하다고 느꼈다. 이따 자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면서도 고통스러워 하겠지. 그리고 아마 이런 감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그리고 차츰 날이 갈수록 그 감정들이 조금은 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음에는 무엇을 배울까? 지금 생각 중인 것은 수영과 그림 정도다. 이것들도 그냥 막연한 생각 정도에 불과하지, 정확히 어떻게 배울지 구상해두진 않았다. 그리고 지난 몇 달간 경험했던 어려움에 또다시 봉착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