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짐을 떠맡아야 한다

헛소리 모으기 17. 떠넘김으로써 유지되는 세계

by 모두다

446kg.


꽤 무거운 중량을 나타내는 이 숫자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도 연관이 있는 숫자이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체중이라기에는 너무 무겁고, 자산의 무게라기엔 너무 가볍다. 사실이 446kg은 우리가 소지하고 있는 무언가의 무게가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소비하는 무언가의 무게이다.

조금은 감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 이 숫자를 보고 ‘이 정도나 된다고?’라며 조금 놀라긴 했으니까. 일상에서 체감하기에는 이것의 1/10도 되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claudio-schwarz-0oAdd28WM0o-unsplash.jpg Copyright 2020. Claudio Schwarz

446kg. 이 숫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한 해에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을 나타낸다.¹ 우리는 약 자기 몸무게의 4~5배 만큼의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이것은 사업장폐기물과 건폐기물은 제외한, 생활폐기물만의 무게에 대한 통계치이다.

내가 직접 쓰레기통과 분리수거함에 버리는 쓰레기는 많아 봤자 체 100kg도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발생하는 건지 참 알쏭달쏭하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는 내 일상의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많은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446kg이라는 무게도 어디까지나 일부에 불과하다. 사업장폐기물과 건폐기물 등, 365일 24시간 내내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의 무게를 잰다면 톤 단위는 가볍게 넘길 것이다. 그리고 약 5,000만 명의 시민이 이만큼의 쓰레기를 배출하니 그 양은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쓰레기들은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발생되는 쓰레기는 소각, 매립, 재활용 등의 과정을 거쳐 처리되어야 한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은 발생되는 폐기물 중 5.1%는 매립, 5.2%는 소각하여 처리하고 있다. 나머지는 기타 다른 방법을 제외하고 86.8%를 재활용하여 처리하고 있다.²

86.8%라! 매우 높은 수치다. 내가 버린 쓰레기가 저렇게 착실하게 재활용 과정을 거쳐 자원 순환이 되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안심하기는 어렵다. 이 수치에는 조금의 함정이 있으니까.


‘재활용’의 기준은 폐기물이 다시 다른 물적 자원으로 재생한 수치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 재활용률은 단순히 배출된 쓰레기가 재활용 선별 업체로 넘어가기만 해도 재활용되었다고 판단하여 집계하고 있다. 즉 내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선별 업체로 넘어가기만 하면 매립되든 태워지든 실제로 재활용되어 다른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로 사용되든 상관없이, 모두 재활용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실제 재활용 선별 업체릍 통해 물적 자원으로 재생산되는 쓰레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이 되기 위해선 오염이 없고 무색이어야 하며 원료도 특정 원료는 불가하다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선별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calvin-sihongo-x0UE544VD74-unsplash.jpg Copyright 2022. Calvin Sihongo

많은 선별 업체에서는 인건비 문제로 모든 쓰레기를 일일이 검토하여 선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거기다 앞서 말한 조건에 충족되는 쓰레기만 들어오는 것도 아닌지라, 사실상 많은 재활용 쓰레기들은 소각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쓰레기를 소각해서 발생하는 열로 발전과정을 거쳐 전기 에너지로 변환되니, 어찌 보면 재활용이라고도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버러진 쓰레기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재활용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형태다.

이러한 열적 재활용을 제외하고 물적 재활용만을 계산하면 재활용률 수치는 27%로 떨어진다. 나 같은 민간인이 배출하는 생활쓰레기는 그보다도 낮은 16.4%에 불과하다.³ 즉 우리가 배출하는 대부분의 쓰레기는 그저 태워지거나 땅에 묻히기 마련인 것이다.


이렇게 소각, 매립된 쓰레기는 전용 처리장에서 처리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 처리장들은 우리가 일상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진 어딘가에 위치해있다.


수도권 매립지 현황을 나타낸 인공위성 사진. 2022 중앙일보 신재민 기자

현재 서울에서 발생되는 모든 매립 쓰레기는 인천과 김포에 위치한 매립지에 묻힌다. 그것도 이미 몇천 만 톤의 용량을 갖고 있던 매립지를 두 개나 꽉 채워 놓고, 새로운 매립지를 실시간으로 점점 채워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쓰레기는 서울에서 만들어졌는데, 왜 이것을 굳이 멀리 떨어진 인천, 김포까지 가서 묻어버린단 말인가? 쓰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인가?

2016년, 인천시와 김포시는 더 이상 서울 및 다른 경기권의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존 2016년을 사용 종료 기한으로 설정한 만큼, 이 기한 이후로 발생되는 쓰레기를 인천과 김포가 떠맡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한이 될 때까지 별도의 자체 쓰레기 매립장을 마련해두지 못한 서울로서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4개의 쓰레기 소각장을 지니곤 있지만, 그것만으론 매일 발생하는 쓰레기를 다 처리할 수 없다.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나는 서울이 되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시와 다른 경기도 자치단체는 여러 가지 협상을 통해 억지로 매립지 사용기한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기한은 2025년, 불과 몇 달 밖에 남지 않은 내년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아직도 자체 매립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심지어 새로운 쓰레기 소각장을 어디에 세우느냐는 문제로 구마다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날 우려를 표하고 있음에도, 서울시는 아직까지도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오늘도 쓰레기를 떠넘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쓰레기 문제는 단순히 지차체 단위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 다른 국가로 쓰레기를 수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쓰레기를 수출한다는 게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지만, 쓰레기 수출입은 글로벌적인 사업 중 하나이며 불법도 아니다.


hermes-rivera-R1_ibA4oXiI-unsplash.jpg Copyright 2017. Hermes Rivera

산업 자원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선 일정한 처리비를 받고 선진국으로부터 쓰레기를 수입해온다. 개발도상국에선 돈도 받고 자원도 받아오고, 선진국에선 자국 내에서 처리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고 간편하게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으니 참으로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사업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역시 플라스틱, 폐비닐, 폐의류 등 자국 내 쓰레기를 여러 나라로 수출해왔다. 한국은 2021년엔 중국의 쓰레기 수입이 전면 중단되면서 쓰레기 처리 문제에 시달린 이력이 있을 정도로 쓰레기 수출에 적극적인 국가이다.

그리고 이런 쓰레기 수출은 비단 한국만 진행하는 것이 아닌, 선진국으로 구분되는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국가들도 진행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이들이 쓰레기를 떠넘기는 주된 지역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이다.⁴


쓰레기 수출은 매우 간단한 사업이다. 단순히 선박 컨테이너에 쓰레기만 가득 넣어두고 지구 정반대 편의 국가에 항해해서 도착하면 끝이다. 이에 비하면 서울에서 인천으로 쓰레기를 떠넘기는 거리는 극히 짧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이렇게 제대로 처리가 되면 다행이기도 하다. 아무런 폐기물 처리도 되지 않고 바다로 흘러간 쓰레기들은 해류를 타고 대양으로의 항해를 떠나게 된다. 전 세계 각국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은 특정 패턴의 해류로 인해 바다의 어느 한 지점으로 모여들게 되고, 쓰레기들끼리 뒤엉켜 바다 위에 지대를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른바 쓰레기 섬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996f10ca-a2ae-42b7-b38c-473319eb6f85.jpg INFRASTRUCTURE, "Great Pacific Garbage Patch cleanup: take two", 2019

대표적인 쓰레기 섬으론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Pacific Garbage Patch)를 꼽을 수 있다. 이 쓰레기 섬의 면적은 대략 160만 제곱킬로미터, 한반도의 약 7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⁵ 전 세계에서 알게 모르게 떠넘긴 쓰레기가 태평양이라는 국적도 없는 바다가 떠안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청결함이란, 다른 누군가에게 쓰레기를 떠넘김으로써 만들어진 경지인 것이다. 우린 그저 그것이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알지 못하며,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시스템은 이런 쓰레기 처리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하고 있다. 남에게 떠넘기는 것.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떠넘기기’가 작동하는 분야로는 자본주의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빚이다. 자본주의는 빚의 존재로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의 기초이자 정수라 할 수 있는 은행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은행에는 여러분이 예금으로 맡겨둔 돈이 없다. 이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그러하다.

은행에는 지급준비제도라는 것이 존재한다. 은행은 전체 예치금의 일정 % 만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tim-evans-Uf-c4u1usFQ-unsplash.jpg Copyright 2016. Tim Evans

예를 들어 3명의 고객이 각자 1억 원씩 은행에 예탁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은행이 맡아둔 돈은 총 3억 원이다. 은행은 지급준비제도를 통해 여기의 일정 % 만 은행에 보관해도 문제가 없다.⁶ 10%라 가정하면 실질적으로 은행에 보관되어 있는 돈은 3천만 원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고객이 맡겨둔 2억 7천만 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은행은 대출을 통해 그것을 다른 제3자인 A에게 빌려준다. 당연히 은행은 그냥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이자를 통해 A에게 처음 빌려준 돈 이상을 받아낸다.

대출 이자를 5%라면 A는 은행에게 2억 8350만 원을 갚아야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차익 1350만 원을 통해 은행은 사업을 운영한다. 우리가 평소 은행으로부터 지급받는 금리도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럼 의문이 들 것이다. 만약 어느 고객이 자기의 1억 원을 모두 출금한다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당연히 은행은 고객의 돈을 돌려줄 수 없게 된다. 고객은 황당할 것이다. 분명 통장에 찍혀 있는 금액은 1억 원인데, 은행은 그 돈이 없어서 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럼 내 통장에 기록된 1억 원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돈은 사회의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순환되고 있다. 은행이 지니고 있는 것은 미래에 그것을 받아내겠다는 계약뿐이다.


그렇다면 은행은 대체 뭘 믿고 고객이 맡긴 돈을 남에게 빌려주었다는 것인가? 은행은 모든 고객이 갑자기 모든 돈을 찾아갈 일이 없다는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대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예시에서는 은행에 예금을 맡긴 고객이 3명뿐이지만, 현실에서는 못해도 수만 명에 이른다. 한 명이 모든 예금을 찾아가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예금으로 모아둔 돈을 통해 그 예금만큼의 현금은 지급해줄 수 있다. 어차피 은행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빌려둔 대출원금과 이자가 수시로 들어오기 때문에, 고작 한 명의 예금 정도는 부담되지 않는 것이다.

예금 금리에 대한 이자로 나가는 돈보다, 대출 금리의 이자로 들어오는 돈이 더 많으니 은행은 예금을 맡긴 고객의 돈을 더 많이 대출해줄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근간이 되는 금융업의 본질이다.


이 시스템은 참으로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돈을 시장에 풀면 풀수록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 돈이 돈을 불러온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설명하는 표현인 것이다.

은행이 해야 할 일은 단 두 개, 빌려준 돈을 착실히 받아내는 것과 고객의 계좌에 가상의 숫자를 기입하는 것뿐이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한, 이 시스템이 무너질 일은 없다. 다만 어디까지나,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만이다.

만약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돈을 찾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수만 명의 고객이 예금해둔 모든 돈을 다 현금으로 찾아가는 일이 생긴다고 생각해보자. 은행은 준비제도에 의해 고객이 맡겨둔 모든 돈은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모든 고객이 모든 돈을 다 찾아간다면 은행은 자신이 대출로 빌려준 모든 돈을 회수 받아오지 않는 한 정상적으로 출금을 진행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대출은 기간이 있다. 채권자가 돈이 급하다는 이유로 채무자에게 하루 아침에 당장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그렇게 요구한다고 해도 없던 돈이 어디서 솟아날 리도 없으니, 은행이 모든 돈을 회수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은행은 고객에게 예금을 돌려줄 수도 없다. 예금자들은 자신이 맡겨둔 돈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앞다투어 은행으로 달려간다. 이른바 뱅크런(Bankrun)이라고 부르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oren-elbaz-Wf1opKy4iaI-unsplash.jpg Copyright 2021. Oren Elbaz

물론 현실에서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진 않는다. 모든 예금자가 어떻게 하루 한 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돈을 찾아간단 말인가? 하지만 은행의 재정상황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거나 은행의 신용이 떨어지게 되면 예금자들은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불안에 빠진 사람은 누구보다도 빨리 자기 돈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늦어졌다간 은행의 금고가 비어버릴 테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은 단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공포란 전염성을 갖는 감정이다. 그리고 소문은 빛보다도 빠르다고들 하지 않는가? 은행에 대한 의심이 모든 예금자들에게 퍼지는 건 막을 수 없다.

뱅크런이 발생하면 은행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은행에 돈을 맡긴 예금자들의 재산도 한순간에 증발하게 된다. 시장에 분명히 존재했던 재화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면서 모든 경제가 꼬이게 된다.

이런 뱅크런을 예방하기 위해 각 국가는 법으로 예금자를 보호해주거나, 중앙은행과 정부 차원에서의 원조 등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각종 제도와 예방책을 마련할지라도, 결국 은행이 무능하다면 뱅크런은 막아낼 수 없다.

그러기에 은행은 돈을 더 열심히 굴려야만 한다. 더 높은 수익을 만들어낼 대출 상품을 개발하고 더 많은 대출자를 구해야 한다. 빚을 계속해서 떠넘겨야만 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굴러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빚이 없는 것을 건전한 재정상태라고 여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빚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무너지고 만다. 즉 어딘가에선 누군가 빚을 떠안고 있는 상태야말로 진정으로 건전한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이 건전함도 계속되는 돈의 흐름이 한순간 끊기는 순간 위기를 맞는다. 은행이 아무런 보증도 없는 누군가에게 막대한 돈을 빌려주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사람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고, 그 가치에 상응하는 자산조차 없이 파산하게 된다면 은행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은행은 돈을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도 은행은 예금에 대한 이자를 계속해서 지출해야만 한다. 단순히 빌려준 돈이 사라진 것을 넘어 이중, 삼중의 손해를 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은행의 현금은 갈수록 말라갈 것이고, 예금자들은 은행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한 사람의 파산으로 발생한 피해는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점차 커지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은행과 기업, 심지어 국가로까지 이어진다. 도미노처럼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다.


sven-brandsma-aN_Aoeet7AQ-unsplash.jpg Copyright 2019. Sven Brandsma

이런 줄도산의 사례는 대한민국 사회만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과도한 부채비율과 부족한 현금보유로 인해 발생한 1997년 IMF 외환위기,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으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2002년 카드 대란, 빚으로 운영하며 쇼핑몰 입주업체에게 피해를 떠넘긴 2024년의 큐텐 지급지연 사태까지. 이 경제 사건들은 모두 빚을 갚지 못해 발생한 사태들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세계도 이런 아슬아슬한 빚더미 위에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지구 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인 미국의 경우만 보아도 그러하다.


미국을 포함, 거의 대부분의 국가는 빚을 진다. 국가가 보장하는 채권을 발행하거나, 빚을 내서 자산을 구입하는 차입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빚을 져 다양한 국가사업을 벌이거나 투자를 한다.

빚을 지는 대상은 다른 국가부터 기업, 개인까지 매우 다양하다. 당연히 국가 단위에서 빚을 지는 것인 만큼, 국가의 부채는 일반적인 개인과 기업의 것과는 그 단위부터가 다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2023년 미국의 국가부채는 26.2조 달러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3경 4060조 원이라는 생전 처음 들어볼 법한 단위의 빚이 된다. 그리고 이 부채는 미국이 한 해에 생산하는 생산물의 총 가치인 국내총생산(GDP)의 97.3%에 달한다.⁷

즉 미국은 한 해 동안의 모든 경제력을 동원해야만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소리다. 당연히 이 1년 동안 아무런 지출을 하지 않을 순 없으니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빚에는 이자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오늘날 미국은 발행한 국채에서 발생하는 이자에만 1분당 27억 원씩을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giorgio-trovato-BRl69uNXr7g-unsplash.jpg Copyright 2020. Giorgio Trovato

미국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부채는 미국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미국이 돈을 갚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실제로 미국 채권은 우수한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으니, 사실상 미국은 또 다른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돈을 창조해낼 수 있는 국가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기조도 어디까지나 미국의 헤게모니가 지속된다는 가정하에서만 유효하다. 어떠한 계기로든 미국이 자신들의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미국은 정말로 모든 경제력을 빚 갚는 데에만 동원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아슬아슬한 균형잡기는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일본 및 유럽국가들도 높은 국가부채를 지니고 있다.⁸ 이들 역시 현재 자신들이 지닌 선진국과 강대국이라는 지위가 미래에도 유지되리라는 판단하에 이런 빚을 짊어지고 있다.

모든 빚은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국가부채를 늘리는 정치인들은 이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 빚을 갚을 때가 되면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까.

결국 빚을 갚아야 할 것은 미래세대의 후손들이다. 현재의 국가 경제는 아직 국적을 부여받지도 못한 미래의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형식으로 유지될 뿐이다. 쓰레기와 달리, 빚은 시간마저도 뛰어넘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는 신비한 존재다.


bob-van-aubel-hUWlPaOHyAI-unsplash.jpg Copyright 2020. Bob van Aubel

나는 이 떠넘기기가 부도덕하다거나 사악하다는 가치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건 아니다. 사실 나 자체도 내가 지녀야 할 어떤 책임을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 떠넘김으로써 삶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제 난 저녁으로 쌀밥과 돼지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벼를 심고 수확하진 않았으며, 직접 돼지를 키우고 도축하지도 않았다. 내가 사용한 식기도 직접 만들지 않았으며, 요리에 사용된 전기와 가스, 수도 등도 내가 설치하거나 생산해 낸 인프라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분업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진 떠넘기기에 따른 결과다. 물론 내가 이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긴 했다만, 역으로 내가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내가 져야만 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책임은 최소화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개중에 부유한 사람들은 청소, 요리, 운전, 심지어 소비까지도 다른 누군가를 고용하는 형식으로 떠넘기고 있다.

사회 구성원 중 다수의 사람들만 이 떠넘기기를 관두기만 해도 우리 사회는 그대로 마비되고 말 것이다. 결국 이 사회, 나아가 인류 문명은 떠넘기기를 통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떠넘기기의 시스템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하는 걸까? 그것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겠다. 나로선 현재의 문명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싶진 않다. 나는 그저 우리의 문명은 이런 구조를 지녔다는 것 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사회가 더욱 고도화되면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남에게 떠넘길 수 있는 미래를 살게 되리라는 것이다. 당장 10년 전과만 비교해도 나의 생활반경은 확연히 좁아졌다. 당시엔 직접 두 발로 찾아가서 해야만 했던 행위들도, 지금은 10인치도 채 되지 않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손가락만 움직여서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과거에 비하면 나는 더 많은 것을 떠넘길 수 있게 되었고, 미래에는 더 많은 것을 떠넘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미래에도 나는 여전히 남에게 무언가를 떠넘기곤 할 것이다. 동시에 내가 무언가를 떠넘겨질 수도 있고.


그때가 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아직은 미지의 미래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미래에 대해 이상한 불안감을 느낀다. 내가 느끼는 위태로움이 부디 기우에 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각주


¹. 환경부,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2022년

². http://www.kwaste.or.kr/bbs/content.php?co_id=sub0401

³. 그린피스, 장용철,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 코로나 19 시대, 플라스틱 소비의 늪에 빠지다.", 2023

⁴.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39237.html

⁵. https://www.nytimes.com/2018/03/22/climate/great-pacific-garbage-patch.html

⁶. 2024년 기준, 대한민국 시중 은행의 법정 지급준비율은 7%이다.

⁷.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51240051

⁸. https://www.kita.net/board/totalTradeNews/totalTradeNewsDetail.do;JSESSIONID_KITA=63E4D745436545616CEA9A6C39D939CC.Hyper?no=83157&siteI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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