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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보 Jan 25. 2024

지각을 했다.

아파 죽어도 등교.

  지각. 살면서 직장에 처음 지각을 했다.


 요일, 편견이지만 월요일은 이유 없이 월요일이라 싫어지는 그런 날.

판교로 출근하는 남편은 6시에 출근하며 눈이 오니 당신도 일찍 나가야 할 것 같다 메시지를 보내왔다.

 눈이 온다니... 오늘 몇 시에 집을 나서야만 할까. 가뜩이나 차가 밀릴 윌요일인데 눈까지 오다니.

 지금의 내게 눈은 감성을 따지기 보다 출근의 걸림돌로 여겨질 뿐이라는 것이 좀 안타깝기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창문 밖으로 눈발이 제법 세기에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들 침식사와 간식 준비하고, 대충 나를 다듬고 마지막으로 뒤엉켜 세녀석이 이불 돌돌 말고 자고 있는 모습을 확인 후에 집을 나오기까지 삼십 분. 워킹맘의 스킬은 갈수록 갈고 닦인다.

아직 얼어붙지 않은 차창의 눈을 치우고 출발는데 평소보다 일찍 나왔음에도 내비게이션상 도착시간은 시간을 겨우 맞출 것 같다.

한겨울 방학중 월요일 9시 10분  수업은 정말이지 맡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왔건만  이 무슨 난리인지.


 같은 길을 매번 출근하  교통체증이 생기는 곳을 피해 갈 수 있다 자신하고는  골목골목을 통과했지만 이 폭설이라는 녀석은 그 모든 것에 적당한 요령을 허가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길은 막혀있었다.

결국  늦을 것 같다 연락을 하고, 그리고 나는 결국 내 인생 처음으로 직장에  지각을 했다. 

적어도 내게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할 그런 날이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교를 다니던 우리들에게

"엄마 배가 아파서 학교를 못 가겠어요..."와 같은 말을  어머니의 답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파 죽어도 학교 가서 죽어.


 이런 말 들어 본 경험이 한두 번은 있지 않냐고 묻는다면 우리 집 최여사님이 저평가될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 친구들과 나는 종종 들었던 말이다. 실제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요일 아침 위경련으로 입원을 했던 일이 있는데 월요일 학교에 가야 하므로 아직 아픈 몸을 이끌고 요일 아침  퇴원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을 강하게 키우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시간에 약간 강박 있으신데 절대 약속 시간에 늦으면 안 되며 본인이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삼십 분 전에는 약속 장소에  가 있어야 마음이 편한  분이다.

이런 부모님 곁에서 자란 나는 지각과 결석에 지나치게 민감한 아이로 자랐다.





  지겹게 눈이 오고, 또 그다음 날도 눈이 왔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아버지를 모시고 MRI를 찍으러 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서둘렀음에도 천안에 도착하니 오후 한 시가 되었다. 한 시 반부터 스포츠센터 수업이 있는 아이들을 급히 차에 태우고 갔지만  눈길에 지체되다 보니 두시가 되어 도착했다. 큰아이 영어학원은 폭설로 휴원한다 문자도 왔건만 나는 눈길을 뚫고 기어코 아이들을 센터에 보냈다.  

  약속이란 게 있다. 내게 시간 약속은 최선을 다해 지켜야만 하는 절대적인 것이다. 내가 배워왔고 살아온 방식은 그러했다. 최근 들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다 보니 개인적으로 픽업해야 하는  학교, 유치원, 학원들만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결석이나 시간변경이 잦았다. 아이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느끼는 것 같지만 나는 '죄송하지만...'이라고 시작하는 변경과 결석의 메시지와 전화에 너무 피곤해지고 있다. 송하지만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

그러나 눈 오는 그날은 무튼 그러고 싶지 않았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요... 가 핑계가 될 것 같아 가서 삼십 분만 하고 오더라도 약속된 수업에는 가야 한다며 가는 내내 구구절절 묻지도 않는 아이들에게 논리를 폈다. 그리고 정말 차 기어서 도착했다. 횟수제로 교육비를 납입하는 경우가 많은 요즘의 학원이나 센터는 개인적인 일로 학생이 미루게 되었을 때  괜찮다지만 나 스스로에게 그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냥 배려해 주면 고맙게 받으면 될걸. 나 스스로 피곤하게 사는 방법을 선택했다.


  대상관계론은 어린 시절 주양육자와의 관계가 어른이 된 나의 사회관계 속에서도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현재의 나를 과거의 틀에서 해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그런 환경 속에 영향을 받았겠구나 그래서 그럴 수 있지라고 내가 가진 현재의 불안을 알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언젠가 나를 돌아보며 나의  어머니는 나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키운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된 나도 아이들에게 그러고 있다.

그냥 오늘은 결석해도 되는 날이는데.


 아무튼 모든 게 다 이놈의 '눈'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하자. 너 때문인 걸로.

 '천안'의 지명은 하늘 아래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 있건만 요즘 영 아니다. 요즘 너무 위험해...

아이들을 기다리다 차창 밖을 찍고 싶었다. 내가 급하지 않은 지금은 창문 밖 눈 내리는 모습이 또 힐링이 된다.

결국, 내가 문제였구먼. 눈은 죄가 없었다.

잠시 멈춘 내가 보는 눈 내리는 모습은 편안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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