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
설 연휴를 이용해 장인어른, 장모님을 모시고 홍콩과 마카오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홍콩에서 마카오로 넘어가기 위해 새로운 가이드를 만났다. 처음에는 가이드가 하는 말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말투에서 친절함이 묻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은 확실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가이드는 입국 심사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저기 끝에 2번 보이세요?"
아들, 딸과 함께 온 여자분께서 대답했다.
"2번이요? 음… 아니요, 안 보여요."
그러자 가이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안 보인다고요? 저게 왜 안 보여요. 저기 있잖아요."
나에게 한 말은 아니지만 불쾌함이 확 올라왔다.
물론 그 사람 입장에서는 크게 적혀 있는데 안 보인다고 하니 답답함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는 것이지, 가이드가 가리키는 손가락만으로 단번에 위치를 찾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가이드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군인 시절 81mm 박격포병이었다.
우리 부대는 신병이 오면 포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물론 신병들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선임급 병사 한 명이 함께 동행해야 했다. 내가 말년 병장 시절 휴가 복귀를 하고 있는데 하사 분대장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의 착오로 내가 신병들과 포사격 훈련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년 병장은 포사격 훈련 명단에서 열외되는 것이 불문율이나 다름없었고, 휴가 복귀 중에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모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다음 날 포사격 훈련장에 갔다.
하지만 편히 누워 있어도 귀찮은 말년 병장이 포사격을 가는 걸음은 짜증으로 뒤덮여 있었다.
훈련장에 도착해 신병들에게 다른 소대에서 선임급으로 온 병사들과 포사격 시범을 보였다.
이어서 신병들의 차례였다. 내가 박격포를 조작하면 신병들의 역할은 탄약수와 부포수로, 겨냥대 설치와 포구 장전 및 발사를 하는 것이다.
겨냥대 설치는 특별히 위험하지 않으나 포구 장전 및 발사는 상당히 위험하다.
부포수는 박격포 포구에 폭탄을 넣은 상태로 대기하다가 발사 명령이 떨어지면 고폭탄을 손에서 놓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고폭탄을 놓음과 동시에 손을 아래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손이 위로 올라가게 되면 박격포 포구 방향으로 손이 지나간다.
그렇게 되면 부포수의 손은 그대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때문에 이 순간은 교관들이나 병사들이나 상당히 예민해진다.
우선 안전사고를 대비해 실제로 폭발하지 않는 나무 모형탄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박격포 건드려서 편사각 다 깨져도 괜찮은데 발사할 때 손은 무조건 아래로 내려."
신병에게 이야기했다.
"네 알겠습니다."
"포구 장전… 발사!"
"누가 손을 위로 쳐들어!!!"
내가 조작하던 포 옆에서 중사가 소리를 질렀다.
신병이 긴장을 심하게 했는지 실수를 한 것이다.
중사는 포수 역할을 하던 나에게도 폭풍 갈굼을 시작했다.
이해는 한다. 실제 포사격 때 같은 실수가 나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긴장감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짧고 굵은 갈굼이 끝나고 다음 포사격까지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 소대 신병 2명과 옆 소대 신병 1명이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위험한 훈련인 만큼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긴장은 실수를 유발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처음 하는 일을 할 때 옆에서 과하게 긴장감을 부여하면 실수한다.
"처음하는데 어떻게 잘해. 말도 안 돼. 대신 이따 실사격 때는 절대 손 올리면 안 돼. 실수할 것 같으면 그냥 네 총구만 잡아. 존나 쉽지? ㅋㅋ"
신병들의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웃으며 편한 말투로 이야기해 줬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 또한 신병 시절이 있었기에 신병의 눈으로 상황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 알겠습니다."
다행히 그 이후부터는 실수 없이 실사격도 무사히 마쳤다.
시간이 지나 나는 전역했다.
전역 후 맞은 첫 생일날 그 신병에게 페북 메신저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포사격 때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에 중사에게 혼나고 스스로 느낄정도로 주눅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혼날까 봐 더 긴장된 상태였는데 내 말 덕분에 긴장도 풀리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이 일을 잊지 않고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더 고마웠다.
사실 당시에는 저 말이 그 친구에게 그 정도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끝내면 내 미담을 내가 이야기하는 꼴이라 낯부끄럽다.
앞써 이야기했던 여행 가이드의 말투를 지적하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실수를 할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언젠가 스케줄에 늦어 마음 졸이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이제 우회전만 하면 지각을 면하는데 내 앞 차량이 파란불인데도 빌빌거리고 있었다.
극도로 예민해진 나는 크락션을 한 번 울리고 추월했다.
그런데 내 눈앞에 보인 광경은 차 안에서조차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장면이었다.
내 앞 차량 앞에는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물론 앞에 할아버지가 있는 것을 알았다면 크락션을 울리거나 앞차에 짜증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내 시선에서는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나 역시 가이드와 마찬가지로 나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본 것이다.
이렇듯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일은 참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보지 못한 곳에도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나와 가이드처럼 타인을 섣불리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