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소재
*글 마지막에 있는 음악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버스 정류장 - 릴러말즈, 미노이)
오랜만에 소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소재’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특히 패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이다. 옷, 가방, 신발 등 패션 아이템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 ‘디자인’을 통해 만들어진다. 디자이너는 브랜드, 테마 등에 따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디자인이라는 과정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디자인 과정 중 공통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들이 있기는 하지만 디자인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디자이너의 개성이나 스타일에 따라 모두 달랐다. 그러한 복잡한 디자인 과정 중에서도 나는 소재를 선정하는 일을 제일 힘들어했다.
소재 선정
소재는 패션 아이템을 구성하는 재료를 말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재로는 면, 가죽, 울 등이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초반 과정에서 소재를 선정하고는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재에 따라 옷의 실루엣이나 컬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패션 디자인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예전에 나는 소재를 생각지도 않은 채 먼저 스케치를 하고 옷을 만들려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옷은 절대로 내가 그린 그림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내가 원하던 실루엣도 색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로는 디자인 작업 시 소재를 생각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잘못 선정된 소재는 원하는 실루엣도 색상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만큼 디자인 과정에서 소재를 선정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인생의 소재들
옷의 실루엣이나 색을 결정하는 여러 소재들처럼 우리 인생도 여러 소재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우리 인생의 소재들은 패션에서 사용되는 소재들보다 더 복잡하다. 누구에게는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또 문장이나 음악이 인생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 만나는 여러 요소들은 소재가 되어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변화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 좋은 소재를 선정하려 늘 노력하는 것 같다. 마치 예쁜 옷을 만들기 위해 예쁜 소재를 선택하는 디자이너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패션과는 달랐다. 내가 원하는 소재를 선정했던 패션과는 달리 인생에서는 원하는 소재만을 선정할 수는 없었다. 가끔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소재들이 선정되기도 했고 또 가끔은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나는 내가 상상한 디자인이 현실이 되는 패션이 좋았다. 그렇기에 대부분 상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던 인생은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고 미웠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인생은 여전히 어렵고 가끔은 밉기도 하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이지만 조금은 인생의 소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 같아 혹시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글을 쓴다.
조금 살아보니 인생은 원하는 소재만을 선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좋고 싫고를 떠나서 모든 소재들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켰다. 내가 생각하던 모습으로 변화하고 성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시간은 그런 나의 모습마저도 좋아하게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런 나의 모습마저 좋아한다면 인생에서 만나는 다양한 소재들은 좋든 싫든 그저 나를 성장시키는 거름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1nzRjTvOR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