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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다가온 무거운 장례

by 혜진 Mar 07. 2025

혼자 나와 카페에서 글이라도 끄적거리다 보면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대화에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주로 글쓰기 장소로 이용하는 동네는 판교 주변 스타벅스나 투썸플레이스. 지역의 특성상 IT업계 사람들의 대화를 주로 듣게 된다. 업계를 은퇴하고 새로 차린 스타트업의 CEO가 된 나이 지긋한 한 어떤 분은 소송건 때문에 변호사와 함께 치밀하게 전략을 짜는 중이거나, 개발자와 비개발자의 연봉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야 하는 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기획자나 아트 쪽 젊은 직장인들의 대화가 들린다.  그리고 능력 없이 나이만 먹고 있는 개발자들이 팀 내에서 얼마나 불편한 존재인지에 대해 평가하는 또 다른 개발자들이 있는 가 하면, 너도 나도 태블릿 피씨 하나씩 꺼내서 현우진 강의를 듣거나, 못 풀었던 문제를 마저 푸는 세 명의 고등학생들의 대화를 반자의 적으로 듣고 있으면 저절로 ‘라테’ 드립을 하고 싶은 심정이 든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입는지, 훤칠한 키에 교복도 핏 하게 맞춰 입은 것이 크게 입고, 물려 입던 내 시절과는 참 많이 다르다.


오늘은 특별히 판교에 있는 백화점의 한 샐러드 카페에서 조용히 점심을 먹고 있다가 옆 테이블에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네 분이 옹기종기 앉아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에 걸맞은 주제랄까? 얼마 전 치른 누군가의 장례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신들도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그들도 누군가의 며느리였고, 딸이었기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수의를 돌아가시기도 한참 전에 미리 맞춰 놓았었다는 이야기, 수의를 굳이 좋은 거로, 비싼 거로 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각자의 의견들, 화장을 한 후, 남은 재에서 발견된 금의 양과 그것의 처리 방법, 그리고 자연스럽게 금값이 요새 얼마나 올랐는지에 대한 공감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각자가 가진 질병에 관한 호소, 그리고 어느 병원, 어느 의사가 좋은 지, 보험이 있는지 없는지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죽음에 관한 이슈로 끝난다. 특이한 건,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막연함이 아닌 직면한 현실이었고, 담담하게 말하는 태도가 나를 더욱더 숨 막히게 했다.


장례의식이 내 것일 때와 내 가족의 것일 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달라질 듯하다. 내 것이 될 때를 미리 상상하기엔, 아직 먼 이야기라 생각하고 싶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기엔 지금의 내 인생을 너무 설렁설렁 살고 있다. 언젠가 나 진짜 열심히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때는 내 장례에 대한 상상 혹은 계획을 감히 그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각종 질병과 싸우며 혼돈의 40대를 보내고 있는 나로선, 아직 장례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불편하다. 외할머니의 장례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더욱 힘든 이유일 수도 있겠고, 손녀가 아닌 자식으로서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님을 매우 잘 알기에 그럴 수도 있고,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의 장례식이 더 빨리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더욱이 백화점에서 혼자 점심으로 먹으며 엿듣기에 불편한 주제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에 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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