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과 죽게 내버려 둠의 윤리학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그때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방관하는 것이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가담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면 나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으며,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죽이는 것과 죽게 내버려 둠은 다른 것일까?
적극적 행위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부작위(不作爲)가 있다. 부작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행위와 부작위의 구분은 생명을 죽일 때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서 논란거리가 된다. 행위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고, 부작위는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상식으로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죽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훨씬 그르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죽임과 죽게 내버려 둠이 다른 것인지, 같다면 왜 같은지에 대한 이유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명한 트롤리 사고 실험에서는 죽임과 죽게 내버려 둠을 비교한다. 이 실험에서는 상상의 레일에 기차가 달리고 있으며, 그 위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놓여 있다. 이들은 여러 이유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며, 기차는 그들이 있는 레일로 향하고 있다.
실험 대상자는 트롤리(전차)의 조종사로 가정된다. 그 앞에는 다른 레일로 향한 스위치가 있다. 실험 대상자는 스위치를 끌어서 트롤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스위치를 끌 경우, 트롤리는 다른 레일로 방향을 바꾸게 되고, 그 위에는 한 명의 사람이 놓여 있게 된다. 이 경우 실험 대상자는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다른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게 된다.
스위치를 당기지 않을 경우, 트롤리는 원래 레일로 계속 진행하게 되고, 그 위의 다섯 명 모두 목숨을 잃게 된다. 이 경우 실험 대상자는 다섯 명 모두의 목숨을 잃게 되는 결과를 방관하게 된다. 이 실험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위치를 끌 경우, 실험 대상자는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스위치를 당기지 않을 경우, 실험 대상자는 방관으로 인해 다른 다섯 명의 목숨을 잃게 된다.
우리의 상식에서, 어떤 상황에서는 죽음에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과는 다르다고 여긴다. 즉, 우리의 상식은 죽음의 앞에 서면서도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해치지 않는 한 내버려 두는 행위를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의무론적 윤리학에서는 행동의 원인에 근거하여 판단한다. 여러 도덕 규칙 중에서도 "살인하지 말라."는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규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가 이에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서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모든 경우에 도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어려운 문제로 여겨진다. 이는 종교적 맥락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성인적인 성인이나 슈퍼히어로처럼 완벽한 도덕적 행동을 기대하는 것은 실제로 적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죽임과 죽게 내버려 둠은 다른 책임을 요한다.
반면, 결과론적 윤리학에서는 도덕적 판단을 행동의 결과에 근거하여 진행한다. 이 관점에서는 행동의 결과가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른지를 평가하며, 때로는 행동과 결과 간의 윤리적 차이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다른 사람을 직접 죽음으로 이끌거나, 혹은 죽게 내버려 두는 행위 모두 결과론적으로는 비슷하게 평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극물을 투여하거나 치료를 거부하는 행위 모두 그 결과로써 환자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책임을 진다.
우리의 도덕적 판단은 복잡하고 모순된 상황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상식적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는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지만, 의무론과 결과론이라는 두 가지 윤리적 접근법은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요구한다.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를 죽게 내버려 두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