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째깍, 시곗바늘이 오후 5시를 가리킨다. 7시부터 언덕훈련을 10개 정도 하려면 지금쯤 에너지섭취를 해야 하는데.. 사무실 주변을 둘러보니 어제 비전워크숍 때 사둔 마이구미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좀 전에 복지관에 한 아이가 울길래 초코하임과 쿠크다스를 줬는데, 괜히 줬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윙윙, 핸드폰의 알람이 울린다. 우리 복지관은 5시 30분에 청소를 시작하고 6시에 퇴근을 한다. 앞마당의 쓰레기를 주으며, "오늘 날씨는 바람이 별로 불지 않아서 좋군.. 저번 첫눈이 내릴 때도 제법 재밌었어"라고 중얼거리며 기대를 해본다.
카톡카톡, 핸드폰이 한번 더 울린다. 6시 정각이다. 1년 전부터 나를 따라 달리기를 시작한 재능충 아내의 카톡이다. "출발???" 고수는 긴말을 하지 않는다. 핵심만 짧고 명료하다. 초딩 애들 학원이 7시 30분이 끝나니 집에서 유부초밥 도시락을 싸와 먹이고 달리기를 하는 집념이 대단하다.
달리기에 진심인 아내의 카톡
훈련시작
퇴근길, 차에 올라타고 훈련장소인 목포 부주산에 가기 위한 최단 경로를 생각한다. 백년로는 막히니, 터미널방향으로 우회를 하자. 엑셀레이터를 밟으니 웅~하는 내연기관 엔진소리와 함께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따뜻한 장갑, 목토시, 모자, 레깅스, 마라톤양말, 민망함을 가려줄 반바지에 바람막이까지 종류도 많다. 겨울이 되니, 하루에 한 번씩 많을 때는 두 번씩 꼭 세탁기를 돌리게 된다. 건조기가 없는 세상은 아찔하다.
일주일 전부터, 우리 집에는 역병이 돌고 있었다. 두 초딩들은 B형 독감에, 아내는 코로나에, 나도 여수마라톤을 뛰기 전부터 감기기운이 있었다. 지금은 약을 먹고 있지만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 나와 뛰려는 나의 모습을 보니 "나는 왜 그토록달리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축구장 한 바퀴를 몇 바퀴를 돌아 워밍업을 마친다. 윤코치님께서 요즘 밀고 있는 드릴 & 스킵 운동으로 뛰기 전 관절의 가동성을 높이고, 근육을 깨워준다.
3열횡대는 모르지만 열심히 몸풀기
본래, 기록향상보다는 펀런을 추구해서 그런지 기록 향상이 되지 않았지만 작년 6개월간 체계적인 훈련을 함께 하며 뛰다 보니,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되었다.
S조 10km 38분 주자
A조 10km 40분 주자
B조 10km 45분 주자
C조 10km 50분 주자
그리고 비둘기 호까지 각자의 기량에 맞게 훈련을 시작한다.
오늘 B조의 훈련 스케줄은 250m 언덕(해발 38m) 질주 85초 / 휴식 85초
250m의 언덕이 10개임을 알 수있는 고도표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1바퀴부터 숨이 차오른다. 원래 첫 바퀴 이후에는 5초를 더해서 10개를 해야 완주가 가능하지만, 신규로 가입한 젊은이들이 질주 시간을 더 앞당긴다.
MPRS 팀원들과 언덕을 오르고 있다.
3바퀴 87초 4바퀴 89초 5바퀴 84초
6바퀴 77초 7바퀴 78초....ㅁㅊ
머리가 지끈거려, 모자를 잔디밭에 던져 버린다. 그리고 다시 또 오른다. "쿵쾅쿵쾅" 심장이 요동친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함께 뛰는 동료들이 있기에 발꿈치만 쳐다보며 뒤 따라 올라간다.
드디어.. 10바퀴.. 도착했다. 터질듯한 허벅지를 부여잡고 잠시 허리를 숙인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이 피맛?을 맛보며 언덕훈련을 마무리한다.
집에 돌아와 허기를 채우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내용을 다시, 상기시켜본다. "나는 왜 그토록 달리는가?" 달리기에 집중하다 보면 회색소음 속, 조용한 침묵을 만나게 된다. 마약을 했다면 이런 느낌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 침묵이 좋다.
또한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린 스트레스를 깊은 호흡을 토하듯 쏟아내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