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진학 문제로 공업계 고등학교가 있는 이곳, 남자의 고향인 이곳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이곳에는 90세가 넘은 시어머니와 작은 숙모님 두 분과 작은 아버지 한 분, 위로 형님 한 분과 세 누나, 아래로 동생 하나, 그리고 조카들과 사촌 형제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곳이었다
아침에 내가 기침을 하면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내 귀로 되돌아오는 아주 무서운 곳이었다
나에게 이곳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같은 곳이었다
남자와 나는 주말부부였는데 이사를 하면서 함께 살게 되었다
경산까지 출퇴근하던 남자는 이사를 하고 한 달이 안 돼서 회사를 그만두면서 모든 화와 스트레스를 나에게 쏟아부었다
내가 빠져나올 곳은 없었고 나를 구해줄 사람도 없었다
남자는 이곳에 모든 공간을 지배했고 우리는 남자의 노예가 되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아들 역시 남자가 없는 틈에 집을 나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학교를 가지 않아 찾아다녀야 하는 반복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사를 하고 조금 지나서 집 옆에 카페를 새로 짓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곳에 정이 없던 나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카페는 지어졌고 나는 실망스럽게 지어진 카페를 보고 허탈했다
옛날 역전 다방 같은 곳이었다
나의 상상 속 아름답고 깨끗하고 이 지역만의 특징이나 카페만의 특징은 없었고 그냥 높은 천장으로 이루어진 창고 같은 카페였다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서 지은 카페는 남자의 상상대로라면 많은 손님이 와야 했다
그러나 손님은 없었다
사람 구경을 할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일은 자꾸만 커져갔고 빛은 늘어만 갔다
동네에서 외떨어진 이곳은 차가 없으면 오기 힘든 곳이었고 특별하게 볼만한 경치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집 주변은 논과 밭뿐이었고 작고 큰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는 그런 곳이었다
카페를 누군가에게 소개하거나 자랑을 하고 싶은 그 어떠한 내세울 만한 특별함은 없었다
전기세와 물세도 감당할 수 없었다
남자는 손님이 없을수록 더 난폭해져 갔고
욕설은 일반화되어 갔다
나는 날마다 소화제를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모든 경제권은 남자가 가지고 있었고 나는 전혀 돈이 없었다 가게에 천 원부터 십 원짜리까지 남자가 모두 관리했다
가게, 집, 밭농사, 마당의 풀은 날마다 자라서 뽑아야 했고 일들은 넘쳐흘렀다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삶이 아니라 자연의 노예가 된 삶이었다
시력이 나쁜 나는 모든 면에서 느렸다
느린 행동까지도 남자는 트집을 잡으며 나를 힘들게 했다
처음 해본 농사일은 내 손목을 병들게 했다
밤이면 퉁퉁 부어올랐고 칼도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돈이 없었기에 남자가 없는 날 손님이 오면 시골이라 카드 사용이 안 된다 하면서 현금을 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으면 검은 봉지에 둘둘 말아서 가게 깊숙한 곳에 숨겼다
그날도 팔목이 너무 아파 한의원에 갔다
피도 뽑고 침도 맞고 물리치료를 받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집에 돌아와 보니 남자의 큰 누나가 가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누나는 내가 사용하는 양념 통들을 자기식대로 바꾸었고 설탕이나 조미료 같은 것은 검은 비닐로 둘둘 말아서 냉동실 안에 찾기도 힘들게 넣어두었다
0.01에 교정시력을 가진 나는 내 머릿속에 저장된 곳에 물건이 있어야 했는데 온통 뒤죽박죽으로 내 머릿속을 헤쳐놓아 버렸다
누나는 거의 매일 와서 나에게 훈계를 했고 가르쳤다
누나라는 사람은 남자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었다
올 때마다 가게 부엌을 마치 자기의 영역처럼 사용하면서 자기의 위치를 내세웠다
더러운 성격인 것을 알기에 될 수 있는 한 말을 걸지 않았던 나는 남자에게 누나 좀 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남자는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화를 낸다면서 오히려 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남자의 얼굴은 포악하게 변했고 귀신한테 홀린듯한 격한 반응으로 그날 밤도 역시나 나는 두들겨 맞아야 했다
그러고는 커피, 음료를 만드는 시럽
캐러멜 시럽, 바닐라 시럽 같은 유리병을 가게 바닥에 던져버렸다
혹 떼려다가 혹을 수십 개는 더 붙어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가게 청소를 해야만 했다
바닥에 뿌려진 시럽을 청소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잠을 자려는데 오른쪽 귀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소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보통은 북소리같이 '둥둥' 거리기도 하고
소달구지가 굴러가는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듯한 소리
쇠가 부딪히는 소리 '찌지 직 찌지 직'
쥐가 나무토막을 갉아먹는 소리 '찍찍'
벌레가 귀안에 들어있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
악마가 귓속에서 소리치는듯한 소리
남자의 발자국 소리까지 '쿵쾅쿵쾅'
귀에서 나는 소리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밤마다 응급실을 찾아야만 했다
극심한 불안 증세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갈수록 말도 잃어갔고 앞도 보이지 않았고 귀에서는 여전히 비명 같은 소리가 흘러나와서 살아있음도 살지 않은 그런 날들의 반복된 삶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