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서브젝트'
다큐멘터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큐멘터리는 언제나 '사실'을 전제로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권위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늘 옳은가? 다큐멘터리는 언제나 진짜인가? 꽤나 불편하고 곤란한 질문이다. 다큐멘터리 <서브젝트>가 남긴 질문이다. 밖으로 향해 있던 다큐멘터리의 카메라 방향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다큐멘터리가 다큐멘터리를 들여다본다.
주요 출연자들은 모두 다큐멘터리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크게 성공했던 다큐영화의 주인공들이 많이 나온다. <계단:아내가 죽었다>, <후프 드림스>, <더 울프팩>, <프리드먼가 사람들 포착하기>, <더 스퀘어> 등이다. 누군가는 다큐 출연이 긍정적 변화의 기점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는 회복이 어려운 심리적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게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그 다큐가 그들의 인생을 바꿔놨다는 것.
사람들은 왜 다큐에 출연할까? 왜 카메라 앞에 자신을 '노출'할까?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이유는 다 다르다.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고, 오해를 풀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기도 한다. 카메라 자체가 무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저항의 현장에서 카메라의 권위는 총의 무게만큼이나 크고 결정적이다. 출연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다큐는 때때로 치명적 누명을 벗기기도 하고 법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결과는 해피엔딩?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실제의 삶을 사는 '진짜 사람'을 다룬다는 것, 모든 위험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다큐멘터리의 힘은 진짜 사람이 움직이는 '진짜 이야기'라는 그 직접성에서 나오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힘은 언제든지 출연자 자신을 찌르는 송곳이 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인생의 어느 지점을 잘라 한 편의 스토리로 엮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봤던 다큐 속의 스토리 안에서 출연자의 인생을 바라보고 그의 삶을 규정한다. 스토리 밖의 인생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없는' 사실이 된다. 삶은 그렇게 스토리 속에 박제된다. 물론 실제의 인생은 영화 '밖에서'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그 스토리 속에 멈춰있다. 무서운 일이다. 스토리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
말미에 한 출연자가 말한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다는 것은 에덴동산의 사과를 먹는 것과 같았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경험은 달콤하다. 그 사과가 결국 문제를 일으킬 것을 예감하지만, 결국은 먹게 된다. 선택을 했으니 대가도 따른다? 그 선택의 문제마저도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다큐의 출연자는 취약한 조건에 처한 경우가 많다. 출연자가 카메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카메라가 출연자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카메라는 포식자처럼 생각하도록 훈련돼 있다." 한 출연자의 지적이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외에도 짤막짤막하게 여러 문제가 언급된다. 카메라의 식민지성, 감독과 출연자의 관계 설정 문제, 스토리텔링의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의 문제 등등. 다큐 출연자의 출연료 문제도 언급된다. '사람들이 왜 자신의 이야기로 돈을 벌면 안 되는가?' 와 '돈을 목표로 출연하는 사람을 찍고 싶지는 않다'는 쪽, 꽤나 팽팽하다. 어느 것 하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다큐를 만드는 쪽도 다큐를 소비하는 쪽도 다 해당되는 얘기다. 다큐 한편이 지닌 무게와 무서움이 이와 같거늘.